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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사태' 언론 보도, 기자에게 영혼이 없다 - CBS 변상욱 기자 (5월 25일)

 

충남아산에 위치한 자동차엔진 부품업체인 유성기업 아산공장(이하 유성기업) 파업사태를 놓고 각계 각층에서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요. 그 중 권력과 재벌, 일부 보수언론이 어떻게 연대하고 여론을 만드는지, 지역 언론의 어중간한 위치가 스스로 존재감을 무안하게 하는지를 꼼꼼하게 진단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충남 아산, 어떻게 보면 대구지역과는 별반 상관이 없는 동네이고, 노사간 갈등으로 파업-연대투쟁-공권력투입-해산 등등의 사이클이 노동운동진영의 일상적 현상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구경북권 언론이 이 문제에 관심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지역 산업구조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 공장의 파업이라는 점, 최근 동남권신공항, 과학벨트 등 연달아 쓴 잔을 마시며 '약자의 설움'을 토로한 지역언론이 강자와 약자간의 대립인 노사갈등에서 자신의 말을 실천할 수 있는지, 언행일치 정도를 파악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겠죠. 

 

CBS 변상욱의 기자수첩, '기자에게 영혼은 없다'

 

유성기업 사태와 관련된 언론의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트위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소문나고 있는 칼럼은 5월 25일 <CBS 변상욱의 기자수첩, '기자에게 영혼은 없다'>입니다.

 

변상욱 기자 해당 칼럼에서 △ 파업 이후 유성기업 주가가 오른 이유 △ 노조 파업, 사측의 신속한 직장폐쇄, 용역과 경찰병력 투입 등의 혼란이 빚어진 이유 △ 노동자 평균임금 7천만원에 대한 시시비비 △유성기업이 자동차 부품 시장의 70~80%독점할 수 있었던 이유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이 칼럼에서 제시한 문제의 핵심은 다수의 영향력 있는 언론은 강자인 기업에서 발표한 보도자료를 검증없이 그대로 받아쓰고, 그것이 잘못된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오보를 낸 데 대해 사과하지 않고, 유성기업사태의 본질, 노조 측에서 왜 파업하고 있는지 약자인 그들의 입장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비슷한 사례는 권력층에서도 나타납니다. 기업이 자신에게만 유리한 자료를 제공하고, 언론은 '친절하게' 받아쓰고, 권력층의 최고봉 대통령은 KBS라디오 연설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연봉 7000만원 근로자들의 불법파업 안타까운 일이다'(5월 30일)라며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죠.

 

그나마 전국언론노조 KBS본부가 30일 '사실 왜곡하는 주례연설, 즉각 폐지'라며 대통령 연설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미디어오늘> <경향신문> <한겨레> <CBS> 등에서 유성기업사태의 본질, 사측의 행동 원인, 원청인 현대기아차와 하청업체와 관계 등을 분석하는 기사를 연일 보도하면서 자칫 '연봉 7000만원 귀족노조의 파업'이라고 매도될 뻔했던 사실이 빛을 보게 된 것인데요.

 

<프레시안> "주야교대로 인한 수면장애, 업무상 질병"

 

노동조합 측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부 전문가 그룹도 나섰습니다.

 

다수의 언론이 보도한 유성기업 사태의 본질은 '야간 근로를 하지 않도록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것'인데요. 현재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주간과 야간으로 번갈아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야간 근무는 밤에 10시에 출근해서 아침 8시에 퇴근하게 되는데요. 이런 야간 근무가 지속되면 피로가 누적되고 업무효율도 떨어지고 산업재해의 위험도 있으니 '주간 연속 2교대' 즉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2시까지 일을 하자는 요구였습니다.

 

유성기업 노사는 이 문제를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업무체계가 변경되면서 임금 및 기존의 근무배치를 조정하는 가운데서 사측은 '난 모르는 일'이라며 입을 닫아버리고, 노측은 '협상을 계속 하자'라면서 파업, 그러자 사측은 직장폐쇄, 공권력 투입 등의 사태가 벌어진 것인데요.

 

사실, 초등학교때도 배웠던 것처럼, 밤에 제대로 잠을 자야 신체리듬이 정상으로 회복되고, 야간노동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겠죠.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이 점을 감안해서 '근무형태 조정, 임금조정' 등을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이게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프레시안> 5월 30일 "법의 눈으로 본 유성기업 사태(2) | 살기위해 죽어가는 야간노동"편을 보면 한국산업안전공단, 최근 법원의 판결 등에서 '수면 장애가 업무상 질병'임을 명시하고, 특별조치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정명아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공인노무사는 "한국산업안전공단은 2008년에 야간 작업자에 대한 관리지침으로 '교대작업자의 보건관리지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지침에 따르면 ① 야간작업은 연속하여 3일을 넘기지 않도록 할 것 ② 교대작업자, 특히 야간작업자는 주간작업자 보다 연간 쉬는 날이 더 많도록 할 것 ③ 야간 근무 후 다음 근무 전 최소한 24시간 이상 휴식을 취하도록 할 것 등 사용주로 하여금 적어도 9가지에 대한 지침을 준수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야간근로 시에 조도, 휴식공간의 마련, 적절한 음식의 제공 등에 관한 사항을 특별히 조치하도록 하고 있다고 하구요.

 

현재 유성기업은 이 지침도 준수하지 않은 것이구요.

 

또한 최근 법원 판결도 제시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 법원은(서울행정법원 2010. 12. 22. 2010구단4400 판결) 12년 간 주야간 맞교대 근로를 한 근로자가 제기한 수면-각성장애의 업무상 질병 인정 사건에서, 수면장애 상병이 주야간 교대제로 인한 생리적 반응의 결과라는 의학적 기전을 인정하여 수면장애가 교대제 근무로 인한 업무상 질병임을 최초로 인정"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기업 측 보도자료만 '받아쓰기'했던 다수의 언론, 그들의 주장만 '앵무새처럼 따라 읽기'만 했던 권력층이 제시한 정보량과는 전혀 색다른, 정말 중요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사실들을 이들 언론이 취재하고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진보성향 언론이 제시한 문제, 해법 등은 사이버공간을 통해서 속도감있게 무수히 퍼지면서 '기업-일부 보수언론-정치권'이 만들려고 했던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독과점'동맹을 깨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영남>, '노동청·대구시·업계 관계자'...노동자는?

 

5월 한 달간 유성기업 사태와 관련, <매일신문><영남일보>보도를 찾아봤더니 재미있는 현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기사제목만 봐도, 기업주 입장에서 편집된 기사임을 알 수 있고, 기사내용을 보더라도 '약자'인 노동자의 입장을 청취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사에서 인용된 대부분의 정보원은 '현대기아차 관계자', '자동차 업체 관계자'일 뿐입니다.

 

 

국책사업에서 쓴 잔을 마시며, 중앙정치권과 수도권 언론에게 그토록 외쳤던 '약자에게 귀기울여라, 지역의 목소리도 들어 달라'던 이들 <매일신문> <영남일보> 등 지역 언론의 목소리는 그냥 '외침'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주장은 주장일 뿐 따라하지 말자'는 원칙에 충실한 것일까요? 약자의 설움을 톡톡히 맛봤다면, 또다른 약자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는데, 지역언론의 고민은 거기까지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매일신문> <영남일보> 보도가 더 얄미운(?) 것은 유성기업 파업으로 인한 떡고물(?)을 지역에서 나누겠다고(자동차 부품생산 영역을 분산시키자) 착실하게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신문><노사분규 무풍지대 대구경북서 배워라>, <영남일보>의 <유성기업 파업 "지역엔 반사이익" 완성차업체 주문쇄도에 표정관리> 등의 기사가 그 예일텐데요.

 

자동차 부품생산 영역을 분산시켰으면 좋겠다는 요구는 유성기업의 사업구조(원청과 하청간의 불평등 거래관행, 밤잠 없는 야간노동으로 업무상 질병,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그대로 지역사회로 가지고 오겠다는 것인데요. 이 상황을 지역사회에서 동의할까요? 도대체 누구의 주장을 되풀이 하는 것입니까?

 

유신 쿠테타 50주년, 내년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박정희 정권의 유산 즉 재벌-토건-경제관료의 3각 성장동맹을 깨고 중소기업-자영업자-노동자-농민을 포괄하는 복지동맥을 구축해야 한다는 맥락으로 미래사회구상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전 여기에 하다 더 보태고자 합니다. 재벌-토건-경제관료-수도권 보수언론으로 대변되는 4각 성장동맹을 깨고, 중소기업-자영업자-노동자-농민-건강한 지역언론을 포괄하는 4각 복지동맹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매일신문>, <영남일보> 관계자 여러분, 당신들은 어디에 서 계실 건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오늘, 평화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글쓴이는 참언론대구시민연대(www.chammal.org) 사무국장입니다.


태그:#유성파업, #연봉7천, #변상욱, #대통령 라디오연설, #매일신문, 영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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