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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에는 전설이 참 많다. 대웅보전을 지은 청민선사의 이야기부터 관음조가 그린 단청까지 기이하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인데 인간의 의심과 이해타산을 경계하고 진리에 대한 참구야말로 지극한 불교 혹은 종교의 길임을 말하고 있다.

일주문 현판에 '능가산래소사'라는 말에서 이 사찰이 '능엄경'의 신통으로 여기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다시 소생하는 원력을 담고 있는 듯했다. 마침 내가 간 날(5월 21일)은 비가 오락가락했는데 나의 간절한 소망이 통했는지 내소사에 있는 내내 비는 오지 않았다. 

능가산래소사 현판이 보이는 일주문
▲ 일주문 능가산래소사 현판이 보이는 일주문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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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형식은 주변의 지세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호남은 평야지역이라 주로 평지사찰이 많다. 내소사도 평지에 있는 평지사찰이라 볼 수 있다. 산지사찰은 금당으로부터 일주문 앞 풍경을 시원하게 굽어볼 수 있도록 조성한 것에 비해 평지 사찰은 금당 뒤쪽으로 높은 산이 두어 전체 가람과 조화를 이루도록 조성돼 있다.

내소사 뒤에 있는 능가산은 암벽과 숲이 어우러져 그 모습이 매우 장엄한데, 내가 간 그날은 비가 잠시 멈춘 터라 한 폭의 신비한 진경산수화 같은 능가산을 배경으로 금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평지사찰은 모두 진입로가 아름답다. 내소사 일주문에서 천왕문 사이에 쭉 뻗은 전나무들이 길 옆에 협시보살처럼 서 있어, 방문객에게 사바세계의 뜨거운 빛을 막아주는 그늘과 청정한 숲의 향기로, 먼저 속세의 번뇌를 씻어주는 듯했다. 바닥은 알맞게 굵은 모래와 흙으로 다져진 땅이라 걷기에 참 좋은 길이었다.

비 그친 뒤 능가산 풍경
▲ 능가산 비 그친 뒤 능가산 풍경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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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의 숲길
▲ 진입로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의 숲길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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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을 지나면 오색연등이 걸려있어 이즈음 사찰의 풍경을 말해주고 있었다. 종교와 자본의 오랜 친분이 일 년 내내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고 있지만 이 절은 그래도 그 규모가 작아서 이해할 만했다. 천왕문과 금당사이 넓은 공터에 아름드리 큰 고목이 서 있고 그 고목의 둘레는 금줄이 둘려 있었다. 흔히 우리의 전통마을 앞에서 볼 수 있는 당산나무가 사찰 깊숙이 그것도 금당 바로 아래 공터에 자리 잡고 있는 풍경은 불교라는 종교가 가지는 원융과 통섭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라 짐작해 본다.

일년 내내 불을 밝히는 부처님 오신날 연등
▲ 부처님 오신날 연등 일년 내내 불을 밝히는 부처님 오신날 연등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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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나이의 커다란 당산나무
▲ 금당 밑 당산나무 1000년 나이의 커다란 당산나무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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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을 오르는 계단 바로 앞에 기역으로 꺾인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그 모양과 위치가 금당에 계시는 부처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라 하지만 이야기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그저 특이한 소나무 한 그루가 금당 앞에 서 있었다.

금당 앞 기역자로 꺾인 소나무
▲ 금당 앞 기역자 소나무 금당 앞 기역자로 꺾인 소나무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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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 앞에 서 있는 탑은 본래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아니면 후대에 거기 옮겨 놓았는지 알 수 없지만 위치나 탑의 크기로 보아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금당 중앙에 있으면 일 탑 일 금당이 되고, 오른쪽이나 왼쪽에 있으면 이 탑 일 금당이 되는데 이 탑은 왼쪽으로 치우친 데다 오른쪽에 있어야 할 탑이 없으니 전문가가 아닌 나의 소견으로도 본래 여기 없는 탑을 옮겨 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탑은 거기 있으니 또 그런대로 금당과 어울려 보이기는 했다.
 
금당 앞 3층 석탑
▲ 탑 금당 앞 3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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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금당에 가까이 가보니 외부 단청은 오래되어 나뭇결이 그대로 보였다. 사실 최근에  단청이 입혀진 사찰 건물에서는 종교적 위엄은 고사하고 조금은 천박해 보이기까지 한 것은 나만의 느낌인가? 이런 생각을 털고 금당 문살을 보니 금당 문창살의 살과 살이 교차하는 곳마다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문살에 핀 화엄이었다. 그 정성도 정성이지만 처음 이 생각을 하게 된 과정과, 처음 생각을 해낸 그 누군가를 생각해 보니 위대한 '창의력'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문마다 조금씩 다른 꽃모양이 주는 느낌은 참으로 각별하여 이 건물을 짓고 이 문을 만들어 단 옛날 목수의 작업을 지금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법계연기와 사사무애의 화엄정신과 밀교적 영향의 능엄주가 녹아있는 문살의 꽃은, 어지러워질 만큼 어지러워진 오늘날의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문살에 새긴 꽃모양
▲ 문살에 핀 화엄 문살에 새긴 꽃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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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살에 피어난 화엄
▲ 문살에 핀 화엄 문살에 피어난 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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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의 가운데 큰 문은 그 절의 주지스님이나 법문을 설할 수 있는 스님이 다니는 통로인데 관광지라 대중이 함부로 드나드는 관계로 다른 절에는 엄중한 경고문을 붙여 놓아 마음을 살짝 상하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문을 닫아 두었는데 내소사에는 문을 열어 놓아 부처의 적광이 천지에 퍼지도록하고, 단지 물에 부란을 띄어 만든 돌 화분을 놓고 옆으로 가세요라고 써 놓아 거기로 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부드럽게 말하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배려라고 생각되었다. 

금당 가운데 문 앞에 놓인 작은 배려
▲ 금당 중앙 수반 금당 가운데 문 앞에 놓인 작은 배려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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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 밖의 이것저것을 살펴보느라 금당 안 단청은 눈여겨보지 못했지만 금당 밖이 화엄이요 능엄이라면 금당 안은 보지 않아도 용화세계일 것이 분명했다.  

금당 계단 밑에는 제법 큰 수반에 이제 막 피어난 연꽃이 있어 사바세계에 피어난 부처를 보는 듯했고 비 온 뒤 잎에 여린 물방울은 화두 그 이상이었다. 

금당 밑, 커다란 단지에 핀 연꽃
▲ 연꽃 금당 밑, 커다란 단지에 핀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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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뒤 잎사귀에 어린 물방울
▲ 잎에 맺힌 물방울 비 그친 뒤 잎사귀에 어린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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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옆에 서 있는 큰 이팝나무
▲ 이팝나무 천왕문 옆에 서 있는 큰 이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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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 뒤로 보이는 능가산 바위 봉우리에 내려앉은 구름이 나의 번뇌인 듯 변화무쌍했지만 그 풍광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제 시선을 돌려 금당에서 천왕문 쪽을 바라보니 천왕문 곁에 피어난 이팝나무 하얀 꽃이 무량하고 뛰어난 법문을 소리 없이 설하고 있었다.


태그:#능가산, #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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