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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과 돌탑(왕건이 숨어 있었던 왕굴로 가는 길 도중에 있다)
▲ 안일암 야경과 돌탑(왕건이 숨어 있었던 왕굴로 가는 길 도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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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하나이다. 불쑥불쑥 솟은 봉우리가 여럿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평지까지 내려가지 못한 채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산은 오로지 하나이다.

도덕산처럼 봉우리가 하나밖에 없는 작은 산은 그 이름도 '도덕산'이 되고 말지만, 산맥을 형성할 정도로 덩치가 커져 봉우리를 여럿 거느리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예를 들면 팔공산 같은 경우이다. 비로봉, 동봉, 서봉, 염불봉, 관봉, 초계봉 등 허다한 봉우리들을 안고 있지만 우리는 그 모두 통칭하여 '팔공산'이라 부른다.

작은 산이 감히 팔공산처럼 호기를 부리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이 바로 대구의 앞산이다. 앞산은 오르는 출발점이 어디냐에 따라 그 봉우리가 대덕산도 되고, 산성산도 되고, 청룡산도 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 호칭들은 잘못된 것이다. 봉우리들이 불쑥불쑥 솟았지만 각각 분명한 경계선을 가지고 독립을 하지는 못했으니 모두들 봉우리라 불러야 옳다. (그런 뜻에서, 앞산은 '앞산'이다. 더러 앞산의 명칭을 '대덕산'으로 고집하는 이도 있으나, 아니다. 대덕산은 월드컵 경기장 뒷산의 이름이다.)

앞산은 남쪽의 비슬산, 북쪽의 팔공산과 더불어 시민들이 즐겨찾는 대구의 3대 등산지이다. 그외 시민들이 많이 오르는 곳은 수성구 지산동의 용지봉, 달서구 용산동의 와룡산, 북구 칠곡의 함지산 등이다. 그러나 그 세 곳은 '구민의 산' 수준이지 '시민의 산'이라고 격상하여 말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앞산은 비슬산이나 팔공산에 견주면 얕은 야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민들의 선호도와 찾는 빈도수로 치면 결코 비슬산이나 팔공산에 뒤지 않는다. 거리가 가깝기도 하지만,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으니 그만하면 '시민의 산'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동수대전에서 대패한 왕건이 도망쳐 와 숨어 있었던 곳이다
▲ 왕굴 동수대전에서 대패한 왕건이 도망쳐 와 숨어 있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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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이 앞산도 대구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꽤 '높은' 산이었다. 그것을 증명해주는 자료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남산, 또 다른 하나는 왕건이다.

서울에 남산이 있고, 경주에도 남산이 있듯이, 대구에도 남산이 있다. 그런데 서울과 경주의 남산은 거주지에 인접해 있는 앞산이지만, 대구에는 남산과 앞산이 서로 거리를 둔 채 별도로 존재한다. 남향 집을 짓고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남(南)산은 곧 앞[前]산의 한자식 이름인데, 대구에는 서울이나 경주와 달리 앞산과 남산이 따로 있는 것이다.

동성로, 서문시장, 남문시장, 북성로 같은 지명을 보면 대구의 성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 대구 읍내 사람들이 보기에는 읍성의 남쪽에 있는 산, 즉 최제우가 처형당한 아미산에서부터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로 이어지는 구릉 지대가 바로 (서울과 경주의 그것과 같은) 남산이었다.

도시가 광역화한 바람에 지금은 앞산이 주택가와 붙어 있지만, 당시로서는 몇 시간을 걸어가야 닿을 수 있는, 남산 넘어 먼 곳에 있는 높은 산이었다. 대덕산, 산성산, 청룡산 등등 봉우리마다 이름을 다르게 붙여야 할 정도로 그 산은 멀고 높아보였다는 말이다. 그래서 왕건이 거기에 숨어 지냈다. 읍내에 붙어 있는 지근거리의 얕은 산이라면 어찌 왕건이 거기로 숨어들었을 것인가. 

이곳도 왕건의 유적이다.
▲ 은적사 이곳도 왕건의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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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에 왕건의 유적이 많은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동수대전에서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앞산으로 숨어들어 안(安)전하고 편하게[逸] 지냈던 암자가 안일암이고, 뒷날 왕(王)이 되는 왕건이 숨어 있었던 동굴(窟)이 왕굴이다. 그렇게 왕건이 숨어 지냈던 곳이 안일암이니, 그 안일암에서 뒷날 대구의 청년들이 처음으로 독립운동을 모의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이다.

왕건이 숨었던[隱] 흔적(跡)은 또 있다. 은적사이다. 은적사에도 왕굴이 있다. 그러나 이 왕굴은 안일암의 것에 비해 훨씬 신뢰성이 떨어진다. 안일암의 왕굴은 절과 거리가 상당하고, 아래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은신처로 제격이지만, 은적사의 것은 대웅전 바로 옆에 있을 뿐더러 깊이도 2m 정도밖에 되지 않아 과연 숨어지낼 만한 곳인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왕건이 이곳에 먼저 은신하였다가 안일암의 왕굴로 옮겨갔을 수도 있기는 하다.

왕건과 관련된 또 다른 유적은 안일암과 왕굴을 거쳐 앞산 정상을 넘으면 나오는 임휴사이다. 임휴사는 왕건이 머물며[臨] 쉰[休] 절[寺]이라는 뜻이다. 왕건은 앞산에서 견훤군을 피해 숨어지내다가 자신을 지지하는 성주 쪽으로 피신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니, 임휴사에 잠시 머물렀다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일 법하다.

이곳 역시 왕건 유적이다.
▲ 임휴사 이곳 역시 왕건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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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에서 놓칠 수 없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답사지는 고산골에 있는 공룡발자국이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서문시장 일대마저 커다란 늪지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쉽게 이해를 하겠지만, 대구는 아득한 옛날 거대한 호수 지대였다. 그것도 공룡들이 우글거리며 돌아다니는 그런 곳이었다. 그 흔적이 지금 고산골에 있다. 그러므로 고산골은 자녀와 함께라면 꼭 가보아야 할 답사지인 것이다.

대구는 본래 거대 호수였고, 공룡들의 놀이터였다. 지금부터 80년 전만 해도 서문시장이 늪지대였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 고산골 공룡발자국 대구는 본래 거대 호수였고, 공룡들의 놀이터였다. 지금부터 80년 전만 해도 서문시장이 늪지대였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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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에서 놓치면 안 될 답사지를 한 곳 더 말해보자. 구석기 유적으로 추정되는 파동 바위그늘이다. 원시인들이 비바람과 맹수를 피해 경사진 거대바위 아래에 숨어살았던 곳을 바위그늘[岩陰]이라 하는데, 고산골에서 파동 방면으로 신천을 따라 가면 볼 수 있다. 용두골 입구 바로 가까이에 갔을 때, 아무런 안내판도 없지만, 인근에 바위그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온 사람은 직감으로 '아, 여기구나'하고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어 있다. 모양새가 듣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특히 바위그늘 안으로 들어가 파동 쪽을 내다보면 그대로 원시인의 기분을 느낄 수가 있으니, 어찌 가보지 않고 베길 것인가.

구석기 유적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사진은 암음(바위그늘) 안에서 내다본 파동쪽 풍경.
▲ 파동 암음 구석기 유적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사진은 암음(바위그늘) 안에서 내다본 파동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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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답사는 여정을 정해놓고 다녀야 한다. 산이 크게 높지는 않지만 유적이 산 이편저편 골골에 박혀 있어 찾아다니기가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작정 답사를 하여 등산과 하산을 되풀이하게 되면 너무 힘이 든다. 앞산을 답사하는 가장 좋은 길은 과연 어떤 순서로 다니는 것일까. 걸어서 주파한다고 가정하고 계획을 세워보자.

임휴사(출발)- (원기사 옆길로 등산하여) 왕굴(로 하산)- 안일암- (도로까지 곧장 내려오지 말고 중간쯤 지점의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책로를 걸어) 은적사- (다시 내려와 산을 타고 오른쪽으로 난 도로의 보도를 걸어) 공룡발자국, 이렇게 순차적으로 답사하는 것이 좋다. 이 길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번만에 앞산의 왕건 유적과 공룡발자국을 모두 답사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다만 이 여정은 파동암음이 제외된다는 흠을 지닌다. 하지만 파동암음은 산비탈을 뭉개고 낸 고가도로 때문에 걸어서 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 고가도로는 시내버스가 다니는 길도 아니다. 뒷날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상동교를 건너가 파동행 버스를 타고 대자연아파트에서 하차한 다음, 다시 보를 이용해 신천을 건너야 한다. 본의 아니게도 원시인들은 우리에게 '그 정도 수고는 해야 마땅하다'며 강요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 바위그늘 아래에서 비바람과 맹수를 두려워하며 평생을 떨었는데, 너희들이 그 정도의 수고도 없이 우리 집을 엿보겠다는 거냐?'


태그:#앞산, #공룡,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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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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