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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가 다녔던 불교귀농학교의 회향식에 다녀왔다. 20여 명의 수료생들은 저마다 귀농에 대한 그림을 그렸거나 그리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 사람을 먹여 살리는 생산은 없이 파괴적인 소비만 일삼는 도시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귀농학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단순 소박한 삶'이다.

나는 귀농을 결심한 지 10년이 넘도록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아직도 귀농을 실행하지 못하고 도시 언저리에서 텃밭농사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먼저 인생의 항로를 바꾼 귀농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고는 한다. 단순 소박한 삶을 실천하는 이들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보고 내가 가야 할 삶의 이정표를 그들에게서 배우고 있다.

촌놈,쉽표를 찍다 - 삶이 보이는 창 -
 촌놈,쉽표를 찍다 - 삶이 보이는 창 -
ⓒ 삶이보이는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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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함께 돈 버느라 행복할 시간이 없어서 덜 벌고 덜 쓰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10여 년 전에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소작농사와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는 농부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를 담은 책을 냈다.

그를 작년에 한 번 만난 적은 있지만 길게 이야기를 나눌 만한 시간은 갖지 못했다. 그가 새로 정착한 전남 고흥의 집터에 마련한 도서관에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을 보내주고 전화통화를 한 번 한 것이 그와 인연의 전부였다. 하나 더 붙이자면 처음 그를 알게된 것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사는이야기에 재밌게 감동을 먹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그가 낸 책 <촌놈, 쉼표를 찍다>는 처음 정착을 했던 충남 공주에 살면서 써낸 글들의 모음이다. 그를 웃게 만들었던 일과 화나게 했던 일, 그리고 절망스러웠던 일들이 그와 마주 앉아 듣는것처럼 생생하게 풀어내고 있다. 귀농인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의 하나인 자식들의 교육관도 그가 선택한 삶과 일맥상통한다.

"백점과 빵점은 별 차이가 없다, 혹여 빵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백 점보다 오히려 빵점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백 점은 더 이상 갈 곳 없어 힘든 것이고, 빵점은 언제 어느 때고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여느 농촌처럼 그의 집에도 기르는 개와 고양이 닭이 있다. 제 밥그릇을 탐하는 녀석들을 모른척 하거나 참아주는 갑돌이와 마당에 풀어놓은 병아리들에게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세우지 않는 착한 야옹이가 이렇게 된 데에는 약자를 배려하라는 그의 반복된 주입식(?) 교육의 효과라고 하는데 동물들도 주인의 성품을 그대로 빼닮은 것 같다.

평화롭고 행복한 시골살이에도 때로는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게 하는 일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이웃일 수도 있고 외지인의 횡포일 때도 있으며, 국가의 폭력일 때도 있다. 내게도 오래 전에 귀농한 가까운 친구가 있다. 집 뒷산에 뿌려둔 장뇌삼의 수확시기(6년)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을 노리는 발자국들을 막느라 애를 쓰기도 했지만 상당한 양을 도둑맞은 일이 있었다.

그의 집 뒷산에는 야생오가피나무가 있었다. 땅주인이 따로 있는지라 법적인 권리는 없었지만 정성스럽게 관리하면서 적당할 때 가지치기를 해서 찻물로 끓여내고는 했다. 그런데 그것을 뿌리째 몽땅 캐내는 주민에게 항의하자 돌아온 말은 귀농인들이 얼마든지 들을수 있는 말이다.

"여기서 몇 년 사셨어?"
"6년유."
"우리는 이 동네서 60년 넘게 살아왔으니께, 우리가 캐가도 상관읎어."
(중략)..
"그럼 그걸 다 캐 가시겠다는 거유?"
"우리 집에다 옮겨 심으려고 그려."
"옮겨 심으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오가피는요, 잎하고 줄기만 끊어 먹어도 좋다는데, 여기 그대루 놓고 같이 먹으면 되잖유."

하지만 그는 마지막 뿌리까지 뽑혀나가는 것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고, 시골 인심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참담한 기분을 느껴야 했지만, 그를 더 절망스럽게 한 것은 시골살이 9년 만에 일어났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그의 집 주변의 산을 사들여 무너뜨린 후, 먹튀하려는 투기꾼으로 짐작되는 이들을 고발하려는 마음을 먹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집과 주변의 산은 호남고속철도가 지나가는 예정부지가 되어 있었다. 그 전에 몇 년에 걸친 신경전을 벌여가며 산을 무너뜨리고 있던 것을 멈추게 했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투기꾼들은 그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정작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적당한 형식을 갖춘 주민설명회 한 번으로 국가는 슬그머니 빠지고 토건족과 투기꾼들의 농간에 휘둘려 삶터를 통째로 내줘야 하는 참담함을 겪으며 새터를 찾아나서게 된다.

"걱정 말어."
"그려, 까짓거. 그냥 어디 빈집 찾아가 수리해서 살믄 되겠지 뭐."
"우리 돈 있어."
"무슨 돈?"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있어."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의 아내는 시골로 내려와 10년 넘게 아이들의 그림지도를 하면서 한 달에 이삼십 만원씩 몰래 저축을 해서 모은 수천만 원의 돈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용기를 주려는 아내에게 마음과는 다른 말을 꺼내서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고집불통 남편을 따라온 시골생활이 결코 녹록치 않았음을 티격태격하는 부부싸움을 통해서 엿볼수 있다.

3년을 헤맨 끝에 작년 전남 고흥의 바닷가 옆에 새터를 마련한 이들 부부는 빚을 내어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짓는 사고를 쳤고, 전국각지에서 보내준 책으로 빈 서재를 채우게 된다. 그가 2003년 냈던 수필집 <거봐, 비우니까 채워지잖아>의 제목처럼 비워야 채워지는 평범한 진리를 엿보게 된다.

올해, 그의 큰아들 인효는 충남 홍성의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입학하여 농부의 길을 걷고 있다. 저자 역시 부엽토와 쌀겨를 버무린 '섞어 띄움 비료'를 만들어서 땅을 살리고 있다. 또 기계와 화학약품의 사용을 거부하는 자연농업을 하는 농부의 삶을 진리처럼 받아들이며, 조작된 씨앗을 만들어낸 다국적 자본주의 농업기업에 맞서 쭉정이만 키워내는 일회용 배추씨앗을 해마다 뿌려가며 본래의 씨앗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수 년째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단순소박한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촌놈, 쉼표를 찍다 -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명랑 가족 시트콤

송성영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11)


태그:#송성영, #촌놈, #삶, #귀농, #풀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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