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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국수 한 그릇 환영'


대구 경상감영공원 입구의 어느 국수집에서 내건 문구다. 이 가게가 자리한 향촌동은 일명 '노인거리'라 불리는 곳이기에 진종일 앉아있어도 젊은 사람 구경하기가 힘든 곳이다. 노년들이 매일 오전에 출근하듯 집을 나와서 성인텍, 콜라텍이라는,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공간에서 천 원 남짓 입장료를 내고 그들끼리 데이트를 즐기고, 인근의 경상감영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향촌동에선 흔히 볼 수 있다. 지금은 시든 꽃 같은 곳이지만 8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향촌동은 멋과 낭만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한다.


일제시대에는 단무지와 오뎅을 파는 일본인들의 식료품점이 즐비했고, 기모노에 게다를 신은 여자들이 교태스런 몸짓으로 양산을 받쳐들고 지나던 곳, 일본 상인들이 세운 아치형 네온의 터널과 식민지 시절의 삿포로 맥주 간판이 휘황찬란하게 밤거리를 밝히던 곳이 바로 향촌동이었다. 한국전쟁 중, 미국 일간지는 '전장에서 바흐의 음악이 들린다'고 인용할 만큼 페허지에서도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던 곳. 이후 80년대에는 대학생들의 막걸리 문화를 통해 낭만적인 향촌동의 명맥을 이어왔다.


이후 대구의 도심이 향촌동에서 건너편의 동성로로 옮겨가자 젊음의 거리와 실버의 거리로 양분되기에 이른다. 그러니 향촌동의 모든 가게들은 노인 상대로 장사를 할 수 밖에 없고, 특히 향촌동의 전성기와 쇠락기를 묵묵히 지켜봐 온 음식점 주인들은 주머니 사정 빤한 노인들에게 그냥저냥 대접한다는 심정으로 싼 가격의 음식을 내놓고 있다. 돈 없는 노인들이 국수 한그릇을 시켜서 둘이서 같이 먹는 경우도 많기에 아예 친절히 '두 분이 국수 한 그릇 환영'이란 문구도 걸어놓고 장사하는 것이다.


메뉴도 단출하다. 옛날 국수 2천 원. 고명이라고 해봐야 얼갈이 배추 푹 삶아서 무쳐 얹고 깨소금 뿌린 게 전부. 큼직한 파가 숭숭 얹어진 간장만 끼얹었을 뿐인데 국물도 제법 진하다. 육수를 푹 우려내서 묵직하게 끓인 정성이 느껴진다. 한그릇 듬뿍 말아주고도 겨우 2천원.

 

"모자라면 얘기하이소. 더 주꾸마"하며 배 큰 남자 손님들에겐 사전 통보도 한다. 물론 추추가 사리는 공짜다. 

 

향촌동은 예로부터 연탄불에 구운 돼지불고기가 유명한데, 질이 좀 떨어지는 돼지 부위를 설탕과 간장으로 달짝지근하게 양념해서 연탄불에 구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먹고 나면 한 사나흘은 연탄가스 첸 것 처럼 속이 울렁하고 목이 콱콱거리기도 하지만 고기에서 풍기는 연탄 불맛과 지글지글 굽는 정겨움 때문에 주문이 끊이지 않는 메뉴기도 하다.

 

또 있다. 얼갈이 배추 대충 삶고, 집에 있는 나물 두어 가지 쓱쓱 비녀낸 것 같은 옛날 비빔밥. 말 그대로 장년층들이 어린 시절 고픈 배 안고 집에 달려와선, 찬장을 막 뒤져서 비벼먹던, 그런 분위기의 음식이다.

 

이러고도 남는 게 있을까 싶지만 싸고 먹을 만한 음식 내는 집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뭔가 뭉클한 얘깃거리가 있다거나 주인 마음이 넉넉하다거나. 그래서 손님이 알아서 입소문 내고 다닌다. 가격이 싼 대신 모든 것은 셀프 서비스. 심지어 거스름돈 계산도 알아서 척척 해 간다.

 

"돈 통에서 8천 원 꺼내 가이소."

국수 삶던 아줌마는 가족한테 하듯 척척 시킨다.

 

제법 눈이 퀭한 예술가 타입의 아저씨가 육개장 국수를 후루룩 마시는 곳, 노년들끼리 수줍게 데이트 즐기며 슬며시 손을 맞잡아도 부끄럽지 않은곳. 그들은 젊은 시절의 영화를 그리워하며 오늘도 가벼운 주머니를 하고 향촌동으로 몰려오고 있다. 어쩌면 그런 나날들이 모여서 이 골목의 이야기가 되고 훗날에는 역사가 놓치고 간 하나의 흔적들이 될 터이다.


 


태그:#대구 향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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