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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언니 내 또래의 아이들까지 모두 학교에 가고 새로 이사를 온 이곳에서도 심심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 엄마가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내게 그 중 괜찮은 옷으로 갈아 입혀 주었습니다.

 

"엄마 어디가?"

"태옥이 엄마네 집에 간다. 근처니까 이사도 왔고 한번 인사차 다녀 와야지."

 

나는 신이 났습니다. '태옥이 엄마'네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어디론가 한참을 걸어 가면서 '태옥이 엄마'네 집을 상상했습니다. 드디어 그 집 앞까지 왔는데 집은 보이지 않고 큰 대문 바로 옆에 경비실이 있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엄마, 집은 어딨어?"

"대문을 통과해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경비실에서 연락을 취한 뒤 엄마와 나를 대문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자니 다리가 아팠습니다. 그러나 아프다는 것도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그 집으로 향하는 길목은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멀리 왼 쪽으로 수영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수영 풀장이 보였고 오른 쪽 옆으로 온실이 보였습니다. 엄마가 "집안을 장식하는 꽃이며 이 곳의 잔디밭과 나무를 관리하는 곳"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자 한옥처럼 생긴 집이 나타났습니다. '저 집인가?'하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그 집도 그냥 지나쳐 올라갔습니다. 그때 엄마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 집이 아마 몇 만평이라고 했든가 몇 천평이라고 했든가?"

 

몇 천평이고 몇 만평이고 이렇게 큰 동네같은 곳에 달랑 '태옥이 엄마'네 집만 있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길어서 집인지 산 속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습니다.  나는 방 한 칸과 부엌 한칸만 있는 집에서 살아 본 경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큰 집은 상상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태옥이엄마'가 살고 있는 집 앞에 도달 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건 집이 아니고 내 눈에는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성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와아 성이다! 공주님이 사는 성이야 엄마."

"여기가 태옥이 엄마가 사는 집이다. 들어가자."

 

 

 

커다란 나무로 짜여진 현관 문을 열자 넓은 거실이 한 눈에 들어 왔고 거실 창 밖으로는 들판처럼 잔디가 넓디넓게 펼쳐진 게 장관이었습니다. 나는 처음 온 집인데도 불구하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도대체 방이 몇 개나 되는 걸까요, 아래층에는 역시 넓은 부엌이 있었고 부엌 옆에 고풍스럽게 꾸며진 식당, 그리고 그 옆에 한식으로 꾸며진 방 몇 개가 더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었습니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계단 참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이 집 회장할아버지가 머무는 방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올라가자 '태옥이 엄마'가 머무는 방이랑 아이들 셋이 머무는 방이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태옥이 엄마 방문 앞에 놓여진 구두였습니다. 백 켤레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유리구두였습니다. 얇은 유리로 된 신발 가장자리에는 금테가 둘러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 구두가 신고 싶어 몰래 꺼내 신고 '달가닥'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거 당장 벗지 못해!"

 

어디선가 앙칼진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내 발에서 유리구두를 확 벗겨 낚아챘습니다. 이집 식모였습니다. 이집에는 운전사, 정원 관리사, 식모 두 명을 관리하는 집사아줌마 등이 있었습니다. 식모는 내가 가난한 집 아이였기 때문에 마음 놓고 구박을 했지만 이 집 아이들은 나를 대대적으로 환영해주었습니다. 아무래도 자기네 하고 다른 아이가 오니까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그날 태옥이 친구도 놀러왔는데 그 아이는 자기가 입을 잠옷과 책 등을 챙겨 운전사가 모셔다주고 간 아이였습니다. 태옥이 밑으로는 두 동생이 있었는데 우리는 백설공주 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학현아 네가 백설공주 해. 난 왕비할거구 넌 왕자..."

 

이렇게 태옥이가 일일이 배역을 정해주고 자기 옷장에서 진짜 흰 색으로 된 드레스를 꺼내서 입혀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순간 마법에 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 동화책에서만 보아왔던 일이 이 집에서는 모든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집에서 쓰는 물건도 모두 외국 제품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컬러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았는데 태옥이네 집에는 커다란 컬러텔레비전에서 외국말이 '쏼라쏼라' 흘러나왔습니다. 외국에서 들여와 한국 방송은 나오지 않는 이상한 텔레비전이었고 심지어 인형의 등에 달려 있는 줄을 잡아 당기면 인형의 입이 움직이면서 역시 '쏼라 쏼라' 하며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설공주 놀이가 끝나고 가정교사가 오자 아이들이 모두 공부방으로 몰려가고 나는 엄마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태옥이 엄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방에는 커다란 침대가 두 대 놓여 있었고 나는 처음 보는 침대에 누워 엄마랑 태옥이 엄마가 나누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래도 학현이 엄마는 아이들하고 먹고 사느라고 바빠서 나처럼 쓸쓸한 겨를이 없잖아요. 저 침대가 텅 비어 있는 게 미칠 것 같아요."

 

태옥이 아버지가 얼마 전 사고를 당해 죽었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태옥이 엄마는 엄마처럼 과부가 된 것입니다.

 

"아이들하고 먹고 사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에요. 시간이 가면 모든 걸 해결해 줄거에요."

 

위로를 하는 엄마와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쓸쓸하고 살맛이 나지 않는다는 태옥이 엄마가 비교되었습니다. 둘 다 똑같이 남편이 없고 아이들이 있는데 말이지요. 엄마는 또 말을 잇습니다.

 

"나는 아이들 하나 믿고 살고 있어요."

"그래요 아이들이 똑똑하니까 학현이 엄마는 나중에 잘 될거에요."

 

이번에는 태옥이 엄마가 엄마를 위로했습니다.

 

태옥이 공부 시간이 끝나자 우리는 모두 밖으로 뛰어나가 초원처럼 보이는 잔디밭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몰라 지켜만 보고 있는데 엄마가 밀가루 한 포대를 이고 나와 나를 불렀습니다.

 

"학현아 그만 가자."

"싫어! 나 여기서 살래!"

"학현아 빨리 가자니까."

 

엄마의 재촉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멀리 있는 태옥이에게 손을 흔들고 마지 못해 엄마를 따라 그 긴 길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밀가루 한 포대를 이고 가는 가녀린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습니다.

 

집으로 돌아 와서도 나는 엄마한테 그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보다 못한 오빠가 내 종아리를 회초리로 후려치고 나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도 우리집은 아니야. 너 혼자 그집에 가서 살래? 아니면 엄마랑 오빠 언니랑 살래?"

 

나는 울먹이면서 말했습니다.

 

"엄마랑 오빠랑 언니랑....살래."

 

오빠는 눈물을 흘리며 나를 껴안아 주고 회초리로 때린 종아리도 살펴보았습니다. 매를 맞은 나는 알지 못할 설움에 울었는데 오빠는 왜 울었을까요.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겠지요.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태그:#마법의 성, #성장에피소드, #연재동화, #학현이,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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