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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다."

 

필자는 제목을 보았을 때, 분개하였다. 살기위해 죽으리라. 반어법과 역설법도 정도가 있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싶었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지, 어떻게 나는 너일 수 있는가. 가끔 '너는 나다'라는 상투적 표현은 본 적은 있어도 '나는 너'라는 것은 보지 못하였다.

 

16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명품 연극시리즈 2 "나는 너다-살기위해 죽으리라"의 프레스 리허설에서 필자의 분개는 무너졌다. '나는 너다'라는 것은 곧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 안중근이 아들 안준생에게 하는 말이다. 2010년에 안중근 서거 100주년 기념으로 국립극장 내 KB청소년극장에서 초연된 이번 연극을 올해는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더욱 집중된 모습으로 공연된다.

 

극은 아들 안준생의 시점에서 아버지에 대한 절규와 분노 연민을, 또 민족영웅 안중근의 일대기와 순국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 안중근과 둘째 아들 안준생의 1인 2역을 맡은 송일국은 민족영웅과 그러한 아버지 때문에 친일파로 그늘진 한평생을 살아왔던 아들 역할을 잘 소화해내었다.

 

극의 첫 장면은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박정자 역)와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준생의 대화이다.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이지만 결코 다정하지 않다. 손자는 아버지와 민족에 대하여 고통받고 있고, 할머니는 아들은 민족의 아들로 그러해야 했노라고 다그친다. 극 전반적으로 웅변조의 말투는 고대 희랍의 원형경기장에서 그리스 로마 서사시를 보는 듯 하다.

 

무대는 흰색, 파란색, 빨간색, 등의 뚜렷한 조명과 직사각형, 정사각형 대형 스크린과 영상의 다양한 조합인 하이퍼 파사드로 만주 벌판과 하얼빈 거리 등등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민족열사들이 독립운동에 결의할 때에는 화면 가득 붉은색의 손바닥 자국이 결사적인 독립의지를 형상화하였다.

 

 

음악은 북소리음향과 한국적 음악배경이 좋았다. 또한 군무로 연극 처음과 끝의 절규하는 남자 나체의 뒷모습, 결투에의 의지를 다지며 무술연마하는 장면 등은 항일 운동에의 의지적인 군상들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한 가지, 고종황제가 정사각형 스크린 전면에 등장하여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민족의 울분을 잘 표현하였지만, 순간 당황한 것은 배우 강신일이 워낙 코믹이미지로 많이 출연하였기 때문에 무대 전체에 첨단 입체영상 기술인 하이퍼 파사드 가득 강신일의 얼굴이 확대되고 축소되어 나올 땐 순간 웃음이 나올 뻔 하였다.

 

 

영웅의 아들도 영웅이어야 하는가

 

필자 생각으로는 송일국에게 오히려 아들역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영웅을 못 봐서인지, 늠름하고 멀끔한 제복과 흰 한복의 안중근 역할보다는, 누덕누덕 회색 넝마에 벙거지 머리에 찢어진 비닐을 어깨에 걸친, 흡사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와도 같은 안준생 느낌이 그에게 잘 맞아보였다. 프레스 리허설 후 인터뷰에서 본인이 왕, 장수 역할을 많이 하여서 안중근 역은 쉬운 반면 고뇌하는 아들 안준생 역은 어려웠다고 하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준비한 만큼 더 적합한 아들역할로 빚어진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곧 아들이다. 아들아 얼마나 힘들었느냐. 본인도 장군의 손자이니 영웅 역할이나 그 아들, 손자 역할에 앞으로 더욱 많은 자기 연민을 가지고 몰입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충분히 다른 역할도 잘 어울리는데 계속 영웅 역할만 해야하는지는 의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영웅 역할 잘 하는데 말이다. 물론 송일국의 외모와 풍채는 당연히 늠름하고 멋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나는 너다...

아버지는 왜 이토를 쏘셨습니까?

너를 위해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는 일본군 최고 사령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항소하지 않았다. 어머니 조마리아의 권유도 있었고. 이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가. 핏덩이를 옆에 끼고서. 

 

정복근 작, 윤석화 연출, 송일국, 박정자, 배해선, 한명구 출연의 연극 "나는 너다"는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5월 17일부터 6월 6일까지 공연된다.


태그:#나는 너다, #안중근, #안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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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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