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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8월 25일 KBS이사회에서 정연주 전 사장의 후임 사장 후보 면접이 진행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방송장악 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재천 이사장을 비롯해 여당 추천이사인 강성철 권혁부 박만 방석호 이춘호 이사 등을 '방송 6적'으로 규정하고 방송장악 음모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08년 8월 25일 KBS이사회에서 정연주 전 사장의 후임 사장 후보 면접이 진행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방송장악 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재천 이사장을 비롯해 여당 추천이사인 강성철 권혁부 박만 방석호 이춘호 이사 등을 '방송 6적'으로 규정하고 방송장악 음모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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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자 <한겨레>에 '2기 방통심의위원장에 공안검사 출신 박만씨'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2기 위원장에 공안검사 출신인 박만(60·사진) 위원이 9일 선출됐다. 방통심의위는 이날 2기 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9명 위원의 호선으로 박만 위원을 위원장으로 뽑았다. 부위원장에는 권혁부(65·전 <한국방송> 이사) 위원이, 야당 몫의 상임위원에는 김택곤(61·전 <전주방송> 사장) 위원이 선출됐다. 임기는 3년이다.

박 위원장은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장과 대검 공안기획관, <한국방송>(KBS) 이사 등을 지냈다. 그는 이날 "방송·통신의 공정성 보장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공안검사 출신 인사의 방통심의위원장 선출 강행에 언론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표현의 자유가 더 침해되고 방송사의 자기검열이 더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공영방송 KBS를 유린한 책임져야 할 것"

이 기사에 등장하는 박만 위원장과 권혁부 부위원장의 이름을 보니 문득 2008년 8월 8일 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 KBS 이사회는 본관 건물에 난입한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나를 '해임 제청'했다. 당시 '해임 제청'에 동의한 KBS 이사가 6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두 명이 바로 박만·권혁부 이사였다. 그날 나는 'KBS 이사 6명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입니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오늘 대한민국 공영방송 KBS는 일부 이사들에 의해 그 독립성이 짓밟히고, 유재천 이사장의 요청으로 회사 안으로 진입한 경찰의 폭압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했습니다. 유재천 이사장을 포함한 6명의 이사들은 이제 역사 앞에 죄인이 되었으며,  공영방송 KBS를 유린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경찰은 오늘 아침 일찍, 수천 명의 병력과 1백여 대에 이르는 경찰 버스를 동원하여 KBS 건물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전, 이들 중 일부가 기다렸다는 듯이 회사 안으로 난입했으며, 회사를 점거하다시피 한 뒤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는 사원들을 폭압적으로 끌어냈습니다.

심지어 사장실과 임원실이 있는 본관 6층까지 진출하는 등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공영방송 KBS를 침탈하고 유린하였습니다. KBS 역사뿐 아니라 군사 독재시대 계엄령 아래서도 볼 수 없었던 폭거입니다. 이런 폭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듯 이사회가 진행됐고, 거짓과 왜곡 투성이의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저에 대한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지난 2008년 8월 8일 오전 정연주 사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여의도 KBS본관에 사복경찰 수백명이 노조원들을 밀어내며 투입되고 있다.
 지난 2008년 8월 8일 오전 정연주 사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여의도 KBS본관에 사복경찰 수백명이 노조원들을 밀어내며 투입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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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KBS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분노와 슬픔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공영방송의 독립을 지키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 서야 할 KBS 이사회가 스스로 이를 파괴하는 행위를 한 데 대해서는 역사가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오늘 저에 대한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킨 유재천, 권혁부, 방석호, 이춘호, 박만, 강성철 등 6명의 이사는 공영방송 KBS의 역사에, 그리고 대한민국 언론사에 영원한 죄인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오늘은 공영방송 KBS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KBS 구성원들의 자존심이 무참하게 짓밟힌 참으로 통탄스럽고 슬픈 날입니다.

한나라당 몫으로 들어온 KBS 이사들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지목했던 6명의 KBS 이사 가운데 두 명인 박만, 권혁부씨는 2007년 1월 중순 한나라당 몫으로 KBS 이사가 되었다. 원래 KBS 이사회는 2006년 8월 말, 11명의 이사로 새롭게 구성되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한나라당 추천으로 KBS 이사가 된 추광영(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방석호(홍익대 법학과 교수), 이춘호(전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등 세 명의 이사가 그해 11월 말, KBS 사장 선임 투표가 있은 뒤 사의를 표했다.

당시 KBS 사장 선거에서 나는 김인규 후보와 최종 결선을 벌였는데, 결선 투표에서 내가 6표, 김인규씨가 3표, 기권이 2표가 나왔다.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한나라당 몫의 KBS 이사 3명은 사장 선출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며 항의의 뜻으로 사의를 표했다. 두 달 가까이 지난 뒤 이춘호 이사는 이사회에 복귀했으나 추광영, 방석호 두 이사는 끝내 사퇴했다. 그러자 그 자리를 박만, 권혁부씨가 2007년 1월, 한나라당 몫으로 채웠다.

그리고 방석호 교수는 이명박 정권 출범 뒤인 2008년 봄, 조아무개 이사가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하자, KBS 이사로 다시 돌아와 그 해 8월에 나의 '해임 제청'에 참가했다. 그리고 나서 한 달 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이 되면서 KBS 이사직을 다시 사퇴했다. 불과 2년 사이에 임기 3년짜리 KBS 이사 자리를 두 번이나 들락날락 한 셈이었다. 당시 <연합뉴스>는 그의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임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도했다.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10일 이사회를 열어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신임 원장에 방석호 홍익대 법과대학 교수를 선임했다. 방 교수는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객원연구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한국정보법학회 공동회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방 교수는 친여 성향 인사로 분류돼 국책연구기관장 보은인사 논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방 교수는 작년 11월 KBS 정연주 전 사장의 재선임에 반대하며 사퇴했으나 올해 4월 방송통신위원회 추천으로 KBS 이사로 다시 임명됐고, 정연주 전 사장 퇴진과 이병순 신임 사장 취임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박만·권혁부 이사 반대 성명 발표

2008년 10월 13일 KBS에 대한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성오 전 이사회 사무국장, 송대갑 언론노조 EBS지부장, 양승동 사원행동 대표, 이철성 영등포서장, 박만 이사(왼쪽부터)가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2008년 10월 13일 KBS에 대한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성오 전 이사회 사무국장, 송대갑 언론노조 EBS지부장, 양승동 사원행동 대표, 이철성 영등포서장, 박만 이사(왼쪽부터)가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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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박만·권혁부씨가 KBS 이사로 선임되자 한국기자협회는 '방송위원회와 한나라당은 권혁부, 박만씨의 KBS 이사 추천을 재고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1월 22일 발표했다. 

방송위원회는 지난 15일 추광영, 방석호씨의 사의표명으로 공석이 된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에 한나라당이 추천한 권혁부(61·전 KBS 보도위원)씨와 박만(56·변호사)씨를 추천키로 결정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러한 방송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이번에 추천된 권혁부씨는 비록 방송 전문성을 갖추었다고는 하지만, 이른바 '윤태식 게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식 게이트'의 주인공인 윤태식씨는 '수지 김 사건'의 핵심인물이며, 벤처기업이었던 '패스21'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언론계에 막대한 뇌물을 뿌린 인물이다.

…또 박만 변호사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송두율 교수의 구속을 직접 지휘하는 등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알려져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그의 KBS 이사 추천에 대해 '한나라당이 향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KBS를 공안검사의 수중에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은 그의 이력 등을 감안할 때 당연한 귀결이다.

한국 기자협회 성명서에 나오는 권혁부씨의 '윤태식 게이트' 연루설은 검찰 수사 결과 무혐의로 처리되었지만, 그의 이력에 늘 붙어다녔다. 어쨌든 KBS 이사가 되었을 때 한국기자협회가 성명까지 발표하면서 반대했던 그 두 인물이 이번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에 나란히 취임했다.

박만씨는 이번에 방통심의위원에 임명되었지만, 권혁부씨는 지난해 5월 손태규 위원이 그만두자 7월에 보궐 위원이 되었고, 이번에 3년 임기의 방통심의위원으로 다시 위촉되었다. 지난해 7월 그가 방통심의위원이 되었을 때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 (미디어행동)은 그의 보궐 위원 위촉이 '보은인사'라며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권의 방송 장악 하수인'에 대한 '보은인사'

권혁부 전 KBS 이사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궐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하수인에 대한 또 한 번의 보은인사다.

권혁부가 누구인가? 2008년 8월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 시나리오에 따라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불법으로 해임한 '공영방송 파괴 6적' 중 한 명이다. 그 중에서도 권혁부씨는 정연주 축출을 강행하기 위해 공영방송 KBS에 경찰병력 투입을 요청한 장본인이다.

그것 뿐인가? KBS 이사 시절 'KBS는 (정권과) 허니문이 없는가'라는 식의 발언으로 보도와 편성에 간섭하는가 하면, '<시사 투나잇>을 정리해야 한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며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짓밟은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KBS를 망가뜨린 주범이다. 이런 인사가 방송의 공정성을 다루는 방통심의위원이 되었다고 하니 또 얼마나 방송 저널리즘을 망칠지 걱정부터 앞선다.

비단 권혁부씨뿐만이 아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을 쫓아내는데 앞장섰던 인물들이 줄줄이 권력으로부터 보답을 받았다. 권력에 눈이 멀어 학자의 양심을 팔아넘긴 유재천 전 이사장은 상지대 총장, 방석호 전 이사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에 진출했다. 이춘호, 강성철 씨 역시 정연주 전 사장을 해임시킨 대가로 EBS 이사장과 이사 자리를 차지했다.

정연주 전 KBS사장의 해임이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지만, 불법을 저지른 장본인들은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승승장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니 국민들 사이에서 양심도 없는 정권이란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인사문제로 그렇게 곤욕을 치르고도 하나도 바뀐 게 없는 정권이다.

공화당 정당특채로 KBS 기자가 된 권혁부씨

권혁부 방통심의위 부위원장
 권혁부 방통심의위 부위원장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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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부씨는 KBS 기자 출신의 KBS 이사였다. 내가 2008년 8월 강제로 해임된 뒤 KBS 내의 젊은 사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약칭 '사원행동'. 후에 KBS 새 노조의 기틀이 되었음)은 2008년 8월 15일 'KBS 6적(敵)을 잡아라'는 제목의 대국민 특보 제6호를 발행했는데, 이 특보 2면에는 <'공영방송 KBS 파괴 이사회 6적' '그들은 누구인가>가 실려있다. 권혁부 이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했다.
공채 2기로 KBS에 입사해 권력의 나팔수 역할과 땡전 뉴스를 충실히 했다.  … 줄곧 권력의 양지를 좇아오면서 검은 세력과의 연대는 그의 숙명. 이제는 그가 자신을 키워주고 길러준 공영방송 KBS를 힘센 이명박 정권에 헌납하겠다고 나섰다. 아는 놈이 더 무섭다고 이사 6적 중에서도 최고 강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 특보가 나간 뒤 닷새 만에 다시 나온 '사원행동 특보' 7호에는 정정보도'가 하나 실렸다.

KBS 사원행동은 특보 제6호 2면 <'공영방송 KBS 파괴 이사회 6적' 그들은 누구인가?> 기사에서 권혁부 이사와 관련된 내용이 사실과 달라 이를 바로 잡습니다. 권혁부 이사는 KBS 공채 2기가 아니라 1974년 당시 공화당 정당 특채로 KBS에 입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기사로 인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KBS 공채 2기 선배들게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의 밑기둥이었던 공화당의 사무처 직원으로 있다가 KBS 기자로 특채된 사례였음을 '사원행동'은 뒤늦게 알고 이를 밝혔던 것이다. 당시 KBS 이사들의 여러 얼굴 모양이 이 하나의 해프닝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태그:#정연주, #KBS, #박만, #권혁부, #사원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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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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