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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로댕의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을 상설전시하면서 '로댕갤러리'로 불렸다가 이번에 '플라토'란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미술관입구
 1999년 로댕의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을 상설전시하면서 '로댕갤러리'로 불렸다가 이번에 '플라토'란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미술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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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로댕은 도심의 문화 오아시스라 불릴 정도로 좋은 위치에서 10여 년간 운영해오다가 '삼성특검'으로 3년간 문 닫았다. 이번에 '플라토(Plateau)'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플라토는 들뢰즈의 책 <천개의 고원>에서 차용한 것으로 '예술의 고지(高地) 혹은 예술의 지층(퇴적층)'을 뜻한다

이번 개관 전에는 김수자 작가를 비롯하여 구동회, 김도균, 김무준, 김민애, 김인숙, 노재운, 박준범, 안규철, 이불, 장성은, 정소영, 정재호, Sasa[44]가 참여한다. 38점이 출품되었고 7월10일까지 열린다. 그 장르도 설치, 조각,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하다.

플라토는 전시'장소'인가? 창조'공간'인가?

장성은 I '플라토 2(Plateau Two)' Light jet print 140×93cm 2011. 장성은 작가의 공간법칙은 몸을 전제로 한다
 장성은 I '플라토 2(Plateau Two)' Light jet print 140×93cm 2011. 장성은 작가의 공간법칙은 몸을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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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름을 바꾼 삼성미술관 플라토는 개막전을 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 중이다. 그래서 주제도 '공간연구(Space study)'다. 이곳이 '전시하는 장소'인가 아니면 문화예술을 '창조하는 공간'인가를 아니면 장소와 공간의 개념을 다 포함하는 것인가를 묻고 있다.

보부르(Beaubourg) 고지에 세워진 퐁피두센터가 일찍이 전시 '장소'만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 관객과 함께 문화를 논하고 예술을 즐기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봤듯, 예술의 고원인 플라토도 문화예술을 전반적으로 조망하며 그냥 익숙한 '장소'에서 낯설게 보이나 새로움을 주는 '공간'이 되려는 것인가.

어떤 '장소'를 점유하지 않고 모든 걸 포괄하는 '공간'

김수자 I '제로지대(Lotus Zone of Zero)' 연꽃(384개) 티베트, 그레고리, 이슬람찬가 2011
 김수자 I '제로지대(Lotus Zone of Zero)' 연꽃(384개) 티베트, 그레고리, 이슬람찬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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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퍼포먼스로 세계적 스타가 된 김수자 작가는 원효가 말하는 '원융합일'을 시각화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없음으로 돌아가는 '제로지대' 즉 다시 말해 "'공간'을 점유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장소'를 포괄하는 조화로운 세상"을 뜻하리라. 그런 세상을 억겁을 상징하는 연꽃으로 천장에 붙여 우리들 존재의 근원을 통찰하게 한다.

플라토미술관이 갑자기 욕망과 과속과 소음이 가득 찬 도심의 한 복판에서 명상과 사유와 성찰을 도모하는 가상사원이 된 것 같다. 게다가 티베트불교 찬가와 가톨릭 그레고리안 성가와 이슬람 성가를 한 공간에 같이 들려줘 종파라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편견에 가득 찬 것이며 무의미한가를 깨우치게 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도 넘어서게 한다.

문화전방위자가 본 세기말 1999년 숫자그림

사사(Sasa 44) I '107가지의 수와 4단어' adhesive vinyl and paint on wall 1500×390cm 2011
 사사(Sasa 44) I '107가지의 수와 4단어' adhesive vinyl and paint on wall 1500×390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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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Sasa)' 작가는 거의 매일 영화를 보는 열광적 팬에다 기록물 등을 열심히 수집하는 오타쿠(만화, 게임, PC, 비디오 등에 마니아보다 깊이 빠진 사람)적 작가다. 그는 다양한 지식, 정보, 자료를 축적하여 이를 재구성하는데 능하다. 글자, 숫자, 기호 등을 전 방위로 소비하면서 연대기와 역사적 사건에 등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기록하고 메모하여 작업에 재활용한다.

작가의 이름이 자체가 숫자 '44'이니 작품을 숫자로 했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107가지의 수와 4단어'는 금요일로 시작하는 1999년 일어난 107건 사건과 4개의 신조어를 선택하여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세기말이라 죽음, 전쟁, 테러 등 비극적 사건과 관련된 숫자가 많다. [참고] http://www.specterpress.com/wp/?p=275

현실 뛰어넘는 가능성의 식물세계 동경

안규철 I '식물의 시간' 나무가 되기 퍼포먼스 비디오 스틸(video still) 2011
 안규철 I '식물의 시간' 나무가 되기 퍼포먼스 비디오 스틸(video still) 2011
ⓒ 플라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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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작가는 미술계의 중심과 주류보다는 외곽에 진을 치고 있는 작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대중적이지는 않다. 중심은 그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기는 하나 진정한 창조가 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가는 세상의 평가보다는 자신의 본능과 직관을 믿는다.

그는 또한 예측불허의 인간으로 애매모호하기도 하고 분명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거짓말은 없다. 화끈하거나 확실한 것을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하지만 그런 것은 인류의 역사 속에 수많은 전쟁과 학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히틀러가 그랬고 독재자들이 그랬다.

작품명 '식물의 시간'은 문명의 시간이 아닌 자연(낙원)의 시간이다. 그것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느림의 미학이다. 그도 "결핍과 상실을 모르고 겉만 번드르르한 과잉과 과다의 세태를 뒤집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과잉노동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게으름의 찬양'이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와 비슷한 맥락이다.

기존의 체계화된 '장소'해체와 '공간'재구성

정재호 I '대변모(Metamorphosis)' Digital Print collage on wall 780×1100cm 2011
 정재호 I '대변모(Metamorphosis)' Digital Print collage on wall 780×1100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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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작가는 과거의 기억 속에 담겨져 있는 로댕갤러리를 뒤집어엎었다. 기억 속에 잠재하고 있었던 체계화된 '장소'를 해체하고 '공간'을 재구성하고 재조합한 것이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갑자기 어떤 영감이 떠오르면서 공간의 무궁무진한 생산과 창출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원래 독창적인 것은 무질서한 데서 나온다. 이런 장면을 보면 잠자고 있던 어떤 창조력과 상상력이 발동한다. 피카소가 형태를 해체하고 3차원의 회화인 입체파를 연 것처럼 로댕갤러리가 플라토미술관이 되는 진통과 산고의 과정을 통해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개관을 축하라도 하듯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울려퍼지는 것 같다

현대문명의 '공간' 속에서 매몰되는 인간군상

김인숙 I '토요일 밤' C-print on diasec 300×340cm 2007
 김인숙 I '토요일 밤' C-print on diasec 300×340cm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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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작가는 독일의 세계적 사진가 토마스 루프(Thomas Ruff)에서 공부했다. 그의 사진철학은 보이는 대상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생각하는 생각을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현대사회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여성의 성 상품화와 대중의 우상화도 그 주제에 속한다. 이런 작업도 결국에는 작가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 '토요일 밤'은10년 간 독일신문에 실렸던 기사 중 중요이슈를 골라 한 편의 영화처럼 66개의 방에 배치하여 연출한 작품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여기 등장인물이 다 자원봉사라니 이 작가의 역량도 대단하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빈곤을 낳는 황폐한 문명과 거기에서 현대인이 맛보는 고독과 소외감을 노출시킨다.

그러면서 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 관음증사회의 일면도 꼬집는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사회가 몰래카메라 등으로 감시사회에 길들여가고 있다. 푸코가 언급한 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소수의 감시자가 대다수의 수용자를 일목요원하게 감시하는 감옥건축인 '파놉티콘(Panopticon)' 같은 양식에 포로가 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보편적 자유와 해방 '공간'을 염원하는 거대서사

이불 I '무제(벽면)' 발광물질 나무 종합합성수지 형광램프 158×118×13cm 2008
 이불 I '무제(벽면)' 발광물질 나무 종합합성수지 형광램프 158×118×13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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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은 2005년 이후 '나의 거대서사(Mon grand récit)'라는 프로젝트를 시도해 왔다. 그는 집단적 경험을 총체적으로 사유화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조감한다. 누구는 '거대한 서사'가 불가능해진 이 찌든 시대에 저런 배짱은 어디서 왔을까 질문을 던진다.

이런 배경에는 이불의 슬픈 가족사가 있다. 그의 부모가 연좌제로 투옥되는 등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가 유토피아를 꿈꾸는 건 그의 삶이 평탄치 않음을 암시한다. 어려서부터 현실에 만족해하지 않고 세상을 거꾸로 보는 관점이 농후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의 작품 중에는 박정희의 일본식이름도 들어간 것도 이런 사건에서 연유한다.

위 작품은 이중거울과 형광등을 이용해 라이트박스를 만들고 그 안에 파편화된 근대도시의 건축풍경을 배치하여 끝없는 무한대의 '공간'을 창출한다. 이는 마치 유토피아를 염원하는 근대화기획 같아 보이나 작가는 이것이 허구임을 강변한다. 작가가 진정 바라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자유와 해방이다.

이밖에 항상 도시의 사각공간을 비디오로 독창적 관점으로 조망한 구동희 작가를 비롯하여 김도균, 김무준, 김민애, 노재운, 정소영 작가 등은 지면상 소개를 다음으로 미룬다.

서울도심에 상상력의 발전소, 창조력의 플랫폼 되길

오귀스트 로댕 I '칼레의 시민(Les Bourgeois de Calais)' 플라토 1층. 에디션(12) 1894. 조국애를 주제로 한 이런 예술품을 보면 뭔가 영감이 떠오르지 않겠는가.
 오귀스트 로댕 I '칼레의 시민(Les Bourgeois de Calais)' 플라토 1층. 에디션(12) 1894. 조국애를 주제로 한 이런 예술품을 보면 뭔가 영감이 떠오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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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런 말을 해보고 싶다. 우리가 세계일류기업의 기술을 모방해 1등을 할 수 있지만 자체적 창조력이 없다면 1등을 유지할 수는 없다. 우리의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은 미술관이나 박물관뿐이다. 미술관은 창조적 상상력이 제일 먼저 생산되는 곳이고 박물관은 과거의 지혜가 축적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기업은 문화 관련사업과 예술가를 지원해야 큰 이득을 볼 수 있고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플라토미술관이 바로 창작자나 애호가나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보다 창조적이고 행복한 시민의 삶도 향유하게 하는 중간지점으로서 상상력의 발전소, 창조력의 플랫폼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플라토미술관(관장 홍라희)] 전시기간 : 2011.05.05(목)-07.10(일)(월요일 휴관) I 문의: 02)1577-7595 www.plateau.or.kr I 작가와의 만남: 5/14,28,6/18(삼성미술관 플라토) I 10분 토크 :매주 수 12:40(인근 직장인대상) I 전시설명: 매일 2시, 4시, 주말 11시 추가 [작가와의 만남] 1차:5월14일(토) 14:00 김인숙, Sasa[44] 2차:5월28일(토) 14:00 안규철, 장성은 3차:6월18일(토) 14:00 노재운, 정소영. 장소: 삼성미술관 플라토 [입장료] 일반 3,000원(단체 2,000원) 초중고생 2,000원(단체 1,000원) 월요일 휴관



태그:#플라토미술관, #김수자, #SASA[44], #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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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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