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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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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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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창수 열사 20주기 추모위원회가 5월 2일부터 13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선포했다. 추모위원회는 이 기간 동안 열사와 관련된 선전전, 추모 영화제, 추모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2일 오전 11시 경기도 안양시 안양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밝혔다.

오는 4일(수) 오전 11시에는 안양역에서 대대적인 선전전이 열린다. 이어 11일(수) 오후 7시에는 추모 영화제가 경기도 군포시 군포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이날 상영되는 영화는 <죽음을 넘어 해방으로>다.

영화 상영에 이어 민주노동당 정성희 최고위원과 박 열사 사망 당시 상황실장이던 염춘필 씨가 긴박했던 그때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추모대회는 마지막 날인 13일(금) 오후 5시부터 열린다. 이날 5시 30분경 안양역에서 선전마당이 펼쳐지고, 6시 30분경부터 안양역에서 샘병원(구 안양병원)까지 행진이 이루어진다. 이어 7시부터 박창수 열사 20주기 추모대회가 샘병원 앞에서 열린다.

양동규 전 금속노조 경기지부장은 2일 기자회견에서 "박 열사는 나이 서른을 갓 넘어서 노조 위원장이 되어 치열하게 투쟁했고 희생당했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했나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탄압, 고용불안은 여전하고 노동자들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박 열사의 투쟁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유현목 민주노동당 안양시위원회 위원장, 이민호 진보신당 안양시위원회 위원장, 송무호 안양희망연대 대표, 군포 나눔교회 이대수 목사와 민주노총 경기중부협의회 조합원들이 참여했다.

추모위원회에 따르면, 고 박창수 열사는 지난 1991년 5월 6일 새벽 4시 45분께 안양병원 마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한다. 안기부 요원이 교도관 눈을 피해 박 열사를 데리고 나간 뒤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일 이었다. 그 당시 박 열사는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다. 구치소 내에서 고 강경대 열사 타살사건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하던 중 원인 모를 부상을 당해 안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이었다.

박 열사가 구속된 이유는 1991년 2월 대우조선 노조 파업 지원을 논의했다는 이유다. 당시 안기부는 전노협(전국노동자협의회)을 탈퇴하라고 열사를 협박했다고 한다. 박 열사는 안기부 협박에 "전노협이 나고 내가 전노협인데 어떻게 전노협을 탈퇴할 수 있단 말이냐"며 끝까지 저항했다고 추모위원회는 전한다. 구속될 당시 박 열사는 부산 대한조선공사(현 한진 중공업) 노조 위원장이었다.

박 열사는 1960년에 부산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대한조선공사에 배관공으로 입사, 1990년 9월에 부산지역노동조합총연합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91년 2월 대우조선투쟁지원연대회의 사건으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후 3개월 만에 안양병원 마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박 열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경찰은 시신을 탈취하기 위해 5월 7일 시신이 안치된 안양병원에 백골단과 전경 22개 중대를 투입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퍼부으며 영안실 벽을 부수고 들어와 열사의 주검을 빼앗아갔다. 경찰은 강제로 부검을 실시한 뒤, 박 열사가 18미터 높이 병실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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