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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앙~~앙 앙 앙~~. 푸름이 너 물어내~!! 내 방에 절대 들어오지 말랬잖아! 흑흑흑. 김푸름 너 100대 맞아야 해! 으앙~~~~~"

 

여름이가 갑자기 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앙칼지게 푸름이를 야단치며 제 분을 삭이지 못해 난리가 났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년 후에 '딸랑딸랑' 소리 들으려고 했는데..."

 

"여름아! 왜? 무슨 일이니?"

"엄마! 김푸름이 내 달걀을 깨뜨렸어요. 흑흑흑"

"뭐라고?"

"으앙~~~ 내 달걀 깨뜨렸다고요!"

 

이런, 낭패다. 그 달걀은 지난 주 여름이가 글쓰기 교실에서 선생님께 받아온 것이다.  부활절을 기념해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한 개씩 나눠 주신 모양이다. 달걀을 나눠 주시면서 고이 간직하고 있으면 일 년 후에 달걀을 흔들었을 때 '딸랑딸랑'하는 소리가 난다고 하셨단다. 여름이는 일 년을 보관할 요량으로 달걀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대에 차서 나에게 '딸랑딸랑' 소리를 들려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여름이가 책상 위에 놓아 둔 달걀을 푸름이가 가지고 나온 일이 있었다.  그것을 본 여름이는 화들짝 놀라며 갖은 아양을 떨어 푸름이를 달래 푸름이 손에 있던 달걀을 아주 소중하게 건네받았었다. 그리고 깨뜨리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도 했었다. 더 깊숙하게 숨겨 둔다고 했었는데 푸름이가 어떻게 여름이가 숨겨둔 깊숙한 곳을 찾아내 달걀을 깨뜨린 걸까.

 

그때, 여름이는 제 방문 앞에 경고문까지 붙여 놓았었다. 그 경고문에는 푸름이가 들어와서 제 물건을 만지면 '100대 맞는다'라고 빨간 글씨로 써 있었다. 사실 푸름이가 여름이 물건을 만지고 어지럽히고 고장 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참다참다 못해 여름이는 경고문을 써서 붙여 놓았던 것이다.

 

 
"여름이가 얼마나 속상할지 엄마도 알아"

 

나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상처 난 여름이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일이 우선이었다. 여름이에게 얼마나 소중한 달걀인지 알고 있는 내 마음도 여름이처럼 아팠다. 여름이가 얼마나 속상할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너무 화가 난 여름이는 내 말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푸름이를 원망하면서 울고 있었다.

 

일단 나는 푸름이를 피해 여름이를 데리고 여름이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가 정신없다. 요즘 푸름이는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이런저런 말썽을 일으킨다. 여름이가 제 책상 위 한켠에 놓아 둔 머리핀 서랍에 달걀을 담아 두었는데 푸름이가 거기까지 뒤진 모양이다.  누나 의자를 딛고 책상 위까지 올라가 머리핀 서랍 속의 달걀을 꺼내 떨어뜨린 것이다.

 

"여름아! 울지 말고 엄마 말을 좀 들어봐. 여름이가 얼마나 속상할지 엄마도 알아. 엄마한테 일 년 후에 '딸랑딸랑'소리도 들려준다고 했었잖니. 그런데 여름아, 푸름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여름이가 그렇게 화를 내도 자기가 잘못한 걸 잘 몰라. 여름이 마음이 속상하겠지만, 여름이가 푸름이를 좀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여름이는 대답이 없다. 나는 다시 한번 간곡하게 여름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여름아, 엄마가 선생님께 혹시 나눠 주시고 남은 달걀이 있는지 여쭤볼게. 있으시다면 엄마가 사정을 말씀드리고 한 개 달라고 부탁드려볼게. 그러니까 화 좀 풀어라~"

"엄마, 달걀이 있을까?"

"글쎄, 그건 모르지만 여쭤보기는 할게. 음... 만약 남아 있는 달걀이 없으면 엄마가 똑같이 만들어줄게."

"그림은 어떻게 하구?"

"아직 깨진 달걀이 있으니까 그거 보고 똑같이 엄마가 그려줄게"

"엄마, 그럼 꼭 달걀 구해줘야 해"

"그래, 알았어"

 

엄마도 6살 터울 남매와 함께 자랍니다

 

그제야 여름이는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달걀을 구해보겠다는 내 말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금방 푸름이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푸름이는 저 혼자 신이나 놀고 있다. 그런 푸름이 옆으로 가더니 여름이가 푸름이를 안고 이야기를 한다.

 

"푸름아, 누나가 미안해. 아까 누나가 너무 화가 나서 너한테 말을 막해서 너도 기분이 나쁘지? 나도 너가 내 물건을 망가뜨리면 기분이 나뻐. 다음부터는 누나도 말 막 안 할테니까 너도 누나꺼 함부로 만지지 말아줘, 알았지?"

 

누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푸름이는 여전히 제 놀이에 빠져 있고, 동생이 알아 들었는지 못알아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여름이도 그런 푸름이 옆에서 놀이를 거든다. 그렇게 금세 화해를 한 남매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일상이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고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여름이를 낳았을 때, 아이는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 했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내다가 그 마음이 바뀌어 6년이나 터울 지는 푸름이를 낳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둘 낳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옹골차게 잘 키우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늘 갖고 있던 소신과 원칙이 그저 이론이 될 뿐, 정작  아이 앞에선 무너지기도 한다. 그 무너진 소신과 원칙을 새로 세우기를 반복 하면서 나도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자라는 것 같다.  

 

내일은 잊지 말고 글쓰기 선생님을 뵙고 꼭 여쭈어 봐야겠다. 그리고 구할 수 없으면 여름이에게 한 약속을 지켜 내가 직접 만들어 줄 생각이다. 거실 가운데 나란히 앉아 남매임을 자랑하고 있는 사랑스런 두 아이와 함께 여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덧붙이는 글 | 선생님께 여쭤봐야 알겠지만, 정말 삶은 달걀을 일 년 묵히면 안에서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걸까요?  정작 그것이 너무 궁금하네요 ^^


태그:#여름, #푸름, #동생,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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