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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현빈
 영화배우 현빈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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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했던 영화는 물론,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조차도 본 적 없지만, 현빈은 안다. 그를 모른다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다. 지난달 7일 입대 후부터 지금까지 신문과 방송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의 군대생활을 '생중계'해오고 있으며, 그는 여전히 '장안의 화제'다.

얼마 전 몇몇 지인들과 함께 한 점심시간 때조차 화제는 단 하나, 현빈이었다. 그가 백령도에 있는 해병대 6여단에 배치되었고, 일반 전투병으로 근무하게 됐다는 사실에서부터 불과 한 달여 만에 핼쑥해졌다거나 피부가 어느새 까무잡잡해졌다는 등의 온통 시답잖은 이야기들뿐이었다.

다른 화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최근 동향을 모르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특히 몇몇 여성들의 경우에는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했는데, 키나 몸무게 등 그의 체격조건은 물론이고 그가 거쳐 간 부대의 위치, 병과와 훈련 내용에 대해 줄줄 꿰고 있었다. 예비역인 나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귀신 잡는 해병'은 현빈만 따라다니나?

그가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군에, 그것도 '귀신 잡는' 해병에 입대한다고 했을 때, 누군지는 잘 몰라도 '개념 찬' 연예인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몇몇 연예인들이 병역 기피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을 때였기에 그는 더욱 돋보였다.

기실 정치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병역 기피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런 그들을 수없이 보고도 속으로 삭여야만 하는 힘없는 서민들에게는 그의 너무도 '당연한' 병역 의무 이행조차 남다른 실천인양 여겨졌던 것이다. 더욱이 입대한 곳이 아무나 갈 수 없다는 해병대였으니 순간 영웅적인 행위로 부각된 셈이다.

그가 입대한 날 해병대 신병훈련소가 위치한 경북 포항시의 경기가 들썩일 만큼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날로부터 그는 대한민국 해병대의 살아 움직이는 마스코트가 됐고, 해병이 그인지 그가 해병인지 헛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신 잡는 해병'이었다지만, 요새는 '현빈의 해병'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인터넷 검색엔진에 '해병'을 치면 현빈 관련 기사가 대부분이고, '현빈'을 치면 맨 먼저 해병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말하자면 '현빈의, 현빈에 의한, 현빈을 위한' 해병이 됐다.

한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국방부 장관이 언론사 초청 국방정책설명회 자리에 나와서 현빈의 근무 여건을 언급할 정도라면, 그 말이 결코 지나치다 할 수 없다. 그것이 설마 중요한 국방정책의 일환이라 여긴 것은 아닐 테고,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신참 병사'에 대한 국방부 장관의 자상한 배려쯤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될까.

철통 보안 해병, 현빈은 예외인가

해병대에 입대한 배우 현빈의 모습
 해병대에 입대한 배우 현빈의 모습
ⓒ 날아라 마린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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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유명 연예인들이 군에 입대하거나 전역을 하는 경우, 당일 잠시나마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번처럼 병영 안팎을 오가며 밀착 취재해 연일 보도해 주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저 그의 인기가 남달랐기 때문일까.

우선 이해할 수 없는 건 국방부다. 국가 안보를 담당하는 부처 특성상 정부 내에서 '대외비'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데도, 여느 때와는 사뭇 달리 보란 듯이 '문호'를 개방했다. 군부대의 위치는 내비게이션에 표시를 제한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면서 '현빈의 해병대'에게는 예외였던 모양이다.

몇 해 전 해병대를 전역한 조카의 경우, 아직도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탓인지 자신의 군대생활에 대해서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제대한 지 오래인데도 고참 기수가 지나가면 깍듯하게 예를 표하며 해병대 근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이지만, 부대 내 생활 등 자세한 내용은 '보안상'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고 할 정도다. 그는 지금도 전화를 받을 때 가끔 무심결에 '군사 보안'이라고 말할 때도 있다.

그런데, 듣자니까 현빈이 근무하는 해병대를 소재로 한국방송(KBS)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촬영해 조만간 전국에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그가 없었다면 애초 기획 자체가 되지 않았겠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아무리 컸다고 한들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군부대가 그렇게 쉽게 결정할 사안은 분명 아니다.

국방부 측에서야 병역 기피와 내무반 폭력 등 부정적인 인상을 해소하고 기존의 딱딱한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해달라고 하겠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해병대가 무슨 현빈이 출연하는 드라마나 광고 촬영 세트장이냐는 조롱과 함께, 현빈이 해병대에 소속된 군인이지, 해병대 광고 모델이냐는 수군거림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개념남' 현빈을 그냥 냅둬라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행태다. 현빈의 군대생활 '생중계'가 국민들의 알 권리 차원으로 여기는 걸까. TV나 신문도 잘 보지 않고, 연예인에 별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전파 낭비고 지면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가십거리 기사를 모든 언론들이 앞다퉈 쏟아내는 건 오로지 그의 '상품성' 때문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으로 국방부조차 '합세'했으니 언론사들은 부대를 제 집 드나들 듯이 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이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점심 식탁 화젯거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언론들이 앞장서 떠들어대고 그에 장단 맞춰 사람들의 일상에서 그의 이름이 회자되는 동안 그는, 솔직히 말해서, 군대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해병대에서 '체험 삶의 현장'을 촬영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인터넷 검색어 순위 1, 2위를 넘나드는 그에게 병역의 의무란 고작 이런 것이었을까.

입대 전 못지않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는 현빈. 무엇보다 그가 그런 세간의 주목을 과연 행복해할까 궁금하다. 부디 이제 그를 연예인이 아닌 이 땅의 평범한 '군인'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자. 당분간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잠시 접어둘 수는 없을까.


태그:#현빈,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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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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