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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리비아 군사개입: 서방의 명분과 내홍

지난 3월 19일 유엔의 비호 아래 시작된 리비아에 대한 다국적군의 군사개입으로 그동안 '현상유지'를 근간으로 했던 서방의 중동정책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번 군사작전을 주도하고 있는 서방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카다피 축출과 체제전복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카다피 정권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호관계를 쌓아왔던 서방국가들이 일순간 태도를 바꾸어 카다피 축출을 향해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무력개입에 나선 것에는 많은 의문이 뒤따른다.

우선 3월 17일에 채택된 UN안보리 결의안의 목표와 어긋난다.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정당화한 유엔결의안 1973호는 국민보호 책임 원칙에 의거해 카다피 정부군의 민간인 학살 중단을 궁극적인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지난 2월 튀니지에서 시작한 아랍권 민주화 시민혁명에 대해 서방국가들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것과도 대조적이다. 또한 현재 지속되고 있는 예멘, 바레인, 시리아의 유혈진압 사태에 서방국가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리비아를 제외한다면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도미노처럼 번지는 제4의 민주화 물결에 대해 적극적 불개입 원칙이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현재 공습에 직접 가담하고 있는 국가는 6개 나라에 불과하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습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캐나다가 분담하고 있다. 군사행동 초기 영국과 프랑스와 함께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미국은 군사작전 지휘권을 나토에게 이양한 이후 스스로 뒷전으로 물러났으며 대다수 유럽연합과 나토회원국들은 소극적인 지원 수준에서 개입을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고, 유엔 결의안 채택에서 기권 표를 던진 독일은 처음부터 군사개입을 반대하고 있다. 지리멸렬한 카다피 반군에 대한 무기지원 문제에 있어서도 나토회원국들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고 한 달이 넘는 군사작전은 교착상태에 빠져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사실상 침략행위에 해당하는 공습작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동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리비아 군사개입은 성공여부가 불투명한 소수 유럽국가의 돌출적 행위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있다. 과거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이번 리비아 사태는 외세의 군사개입을 통한 독재정권 축출 시도가 갖는 딜레마와 한계를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있다.  
    
Ⅱ. 리비아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의미 

이번 리비아 군사개입은 미국이 아닌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지난 3월 17일 유엔 결의안 채택과 즉각적인 군사행동은 프랑스와 영국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 결의안 협상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다른 국가가 군사행동을 주도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이 있을 경우에만 군사행동에 참여한다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카다피 축출을 주장하면서도 군사작전 수행에는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무대를 프랑스와 영국에게 넘겨준 상태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머지 나토 및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대응은 각양각색이다. 유럽은 북아프리카 지역의 전략적, 지정학적 중요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별로 리비아의 의미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다르고 국내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이해득실 계산에 따라 서로 다른 행동반경이 결정된다. 리비아 사태에 대한 유럽 내부의 불협화음과 동상이몽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리비아에 대한 유럽의 이해관계에는 석유자원 확보와 테러 확산 방지라는 두 가지 축이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는 1969년 아랍민족주의 혁명의 기치를 내걸은 카다피가 친서방 왕정체제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한 이후 대립과 화해를 반복해 온 리비아와 서방의 관계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카다피의 노골적인 반제국주의, 반이스라엘 노선에도 불구하고 서방세계가 리비아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석유 때문이다.

카다피에게도 서방과의 원만한 관계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석유개발에 서방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서방과의 관계악화는 치명적인 경제적 손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1980년대 세계의 "깡패국가"로 낙인이 찍혔던 리비아가 1990년대 들어 서방과의 극단적 대결을 포기하고 타협을 선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카다피와 서방 사이에 적대적 대립의 시발점은 미국이 리비아의 테러지원 의혹을 제기하면서 1979년 외교단절을 선언한 것이었다. 카다피가 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민족해방투쟁을 지원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1986년 미국이 전면적인 경제제재 조치를 선언하고 1990년대 초 유엔 차원의 경제제재로 확대된 이후 리비아의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리비아가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새로운 석유수출 시장을 찾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미국의 해상봉쇄를 피해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경제적 비용을 감당해야 했고 서방의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유전개발 사업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시련을 견디지 못한 카다피는 서방세계와의 화해를 시도했다. 카다피가 비록 서방이 제기하는 테러사태 배후 의혹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테러 용의자를 서방측에 넘겨주고 피해자 보상을 단행했다. 2001년 9.11사태 이후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자 대량살상무기 계획을 포기했다. 그 대가로 리비아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고 서방국가와 외교관계를 회복하며 2004년 국제사회에 정상국가로 복귀했다.

그와 함께 1986년 리비아를 떠났던 서방의 다국적 석유회사들의 리비아 진출이 다시 본격화되었다. 가다피 측에서도 당시 리비아 석유생산량의 두 배에 해당하는 하루 3백만 배럴을 목표로 유전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해외 석유회사들의 리비아 유전개발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한 것은 유럽의 석유회사들이었다. 1986년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리비아에서 완전 철수한 것과는 달리 프랑스의 토탈과 스페인의 렙솔과 같은 유럽의 일부 석유회사들은 유엔의 경제제재를 우회하여 리비아에서 유전개발 사업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리한 조건에게 출발한 유럽의 석유회사들은 유전개발권 획득을 위해 카다피에게 엄청난 양보를 해야만 했다. 카다피가 서방의 석유회사들이 가져가는 몫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무리한 조건을 들고 나온 것이다. 뒤늦게 합류한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머뭇거리는 동안 유럽의 석유회사들은 요구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리비아 진출에 열을 올렸다.  

리비아와의 불편한 거래조건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리비아 석유에 매달리는 이유는 리비아가 유황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경질유(light sweet crude)생산 세계 1위국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과 미국에서 생산되는 중질유와는 달리 리비아산 경질유는 별도의 탈황 시설을 거치지 않고도 휘발유, 디젤유, 항공유로 정제가 용이하고 상대적으로 환경 친화적인 고품질 원유로 인정을 받고 있다. 미국의 정유사들의 경우 경질유와 중질유 정제가 모두 가능하지만 아시아와 유럽 정유사들은 중질유 정제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유황 경질유를 취급한다.

그에 더해 지중해 건너편 이웃국가라는 지리적 근접성의 이점이 있다. 리비아 석유의 최대 수출시장은 유럽이다. 유럽이 리비아 석유 수출의 85%, 미국 5%, 아시아가 나머지 10%를 차지하고 있다. 리비아 석유 의존도가 높은 나라의 대부분도 유럽 국가들이다. 리비아 석유 의존도를 살펴보면 2010년 기준으로 아일랜드가 23.3%로 가장 높고 이탈리아 22%, 오스트리아 21.2%, 스위스 18.7% 순이었다. 다른 유럽 주요국들의 리비아 석유 의존도는 그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프랑스 15.7%, 그리스 14.6%, 영국 8.5%, 독일 7.7%였으며 미국의 경우는 0.5%에 불과했다.

Ⅲ. 유럽 국가들의 리비아 셈법

경질유를 소비하는 유럽 국가들이 리비아를 대체할 다른 수입선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리비아 내전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유럽이 받는 타격은 미국에 비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전혀 예상치 못한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로 촉발된 이번 사태로 유럽의 리비아 유전개발 사업은 또다시 일시적 중단위기를 맞고 있다. 리비아에 대한 군사행동이 카다피 축출로 이어질 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카다피의 정치적 운명과는 상관없이 유럽이 리비아의 석유를 포기할 수 없다.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하는 군사개입을 통해 리비아 유전개발 이권 경쟁의 새판 짜기가 가능해졌고 이는 유럽에게 새로운 기회임이 분명하다. 리비아 석유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리비아 유전개발권 경쟁의 후발주자로서 영국은 미래를 기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오래전부터 리비아 유전개발 사업에 깊이 발을 들여놓고 있는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지켜야 할 것이 많다. 게다가 리비아는 프랑스 무기 수출의 주요고객에 속한다.

리비아 석유를 둘러싼 프랑스와 영국의 속셈이 서로 다르지만 대외전략에서 두 나라를 하나로 엮어주는 끈이 존재한다. 두 나라는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며 유럽 전체 방위비 지출의 50%를 차지하는 군사강국에 속한다. 유럽 경제통합의 진전과 함께 프랑스는 군사안보 및 대외전략에서 유럽의 독자노선을 주장해왔다. 미국의 패권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경제적 통합을 넘어 정치적, 군사적 영역에서도 초국가적 연합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프랑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원대한 계획은 다른 국가들로부터 늘 외면을 받아왔다. 미국을 겨냥한 프랑스의 대외전략적 지향에 가장 큰 걸림돌은 유럽연합의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다. 양대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었던 독일은 45년 이후 군사외교적 저자세를 생존전략으로 채택했다. 현재까지도 독일의 대외정책에는 세계 패권경쟁의 전략적 마인드가 부재하다. 유럽의 대외정책은 여전히 철저히 자국이익을 우선시하는 개별국가의 영역으로 파편화되어 있고 개별국가의 이기주의를 넘어선 유럽차원의 단일한 대외전략은 요원한 숙제이다.

이러한 현실적 장벽에도 군사안보전략에서 유럽의 독자노선을 향한 프랑스의 노력은 계속되어 왔고 1998년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공동으로 추진한 '세인트 말로 이니셔티브'(St. Malo Initiative)에서 일정한 결실을 보았다. '세인트 말로 이니셔티브'는 미국이 개입의지를 보이지 않는 국제분쟁에 유럽연합의 독자적 군사행동을 정당화하고 지금까지 나토의 지휘권에 전적으로 귀속되었던 개별국가의 군사자원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유럽연합 공동방위정책의 기반이 되었다.

'세인트 말로 이니셔티브'를 주도했던 프랑스와 영국은 작년 11월 양국 간 군사협력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방위협정을 체결하고 군사자원의 공동이용, 영국군과 프랑스군으로 이루어진 합동파견군 창설, 핵무기 기술개발 협력, 공동 핵실험 등의 포괄적인 협력방안에 합의를 보았다. 이번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활약은 작년에 체결된 양국 간 방위협정의 첫 실험무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사방위 영역에서 하나의 유럽을 추구하는 프랑스와 영국의 시도는 갈 길이 멀다. 대외정책 영역에서 유럽 내부의 불협화음은 근본적으로 개별국가의 국내정치적 요인에서 기인한다. 프랑스와 영국의 리비아에 대한 적극적 군사개입은 튀니지와 이집트의 민주화 시민혁명으로 촉발된 아랍권의 급격한 정세변화에 속수무책으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정치적 무능을 만회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이웃국가와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리비아 반군을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나토의 군사지휘권을 반대하며 유럽의 내분을 부추겼던 사르코지 대통령의 독단적 행동에는 국내정치적 위기를 국제무대에서 강력한 리더십과 '전시 대통령'의 이미지로 돌파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것이다.

처음부터 군사개입에 반대한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국제사회의 승인 여부나 명분의 정당성과 상관없이 독일국민의 대다수가 독일군의 해외파병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있고 연방의회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독일 국내정치의 핵심쟁점이 되어왔다. 다국적군의 리비아 군사개입에 즈음해 이루어진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8%가 독일의 군사개입에 반대했고 찬성은 8%에 불과했다. 독일국민의 반전 반핵 정서를 무시하고 독일정부가 프랑스와 영국의 군사노선을 쫓아간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군사개입을 지지하면서도 직접적 군사행동에 나서지 않는 나머지 유럽 회원국들의 경우 석유자원을 노린 제국주의적 군사적 모험이라는 대내외적 비난을 모면하고 아프리카와 아랍지역에 우호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자국이익에 충실한 개별국가의 동상이몽에 리비아 사태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이 애초부터 아랍권의 민주화와는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2011/04/19)

덧붙이는 글 | * 조혜경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이 집필한 코리아연구원 특별기획 34-3호입니다.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원문 및 다양한 정책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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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리비아, #다국적군, #코리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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