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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청강
 백청강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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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서 영 주장이 없다!"

<위대한 탄생> 방송 초기, 등장하자마자 훈남으로 등극하며 수많은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데이비드 오에 대해 연변에서 온 청년 백청강이 그렇게 말했다. 데이비드 오가 나왔던 미국 편을 보고 청년 백청강은 이미 그를 심각하게 견제하고 있는 터였다. 데이비드 오가 제일 신경 쓰였다는 백청강에게 제작진이 짓궂게 물었다. 데이비드 오가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고 나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청년 백청강이 솔직하게 말했다. 남자가 주장이 없다! 뜻은 통하나 일상적인 표현이 아니어서 신선했던 이 표현 하나로 키 작은 연변 청년 백청강은 사람들에게 그 소박한 존재감을 알렸다. 작은 체구에 소년 같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남자다웠던' 이 말 한마디로 백청강은 그 가슴 안에 강렬한 불꽃이 숨어 있음을 알렸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그 불꽃이 얼마나 활활 타오르고 있는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김태원, 백청강에게 손 들었다

그 불꽃을 알아본 것은 멘토 김태원이었다. 그러나 김태원은 망설였다. 처절한 것으로 치면 백청강은 다른 멘티들인 이태권과 손진영, 양정모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백청강은 연변에서 왔고 11살 때부터 돈 벌러 나간 부모와 떨어져 혼자 살았더랬다. 하지만 백청강의 목소리는 다른 가수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것이 신경 쓰였던 김태원은 갈등했다.

"친구는 집에 갔죠? 계속 연락하나요?"

선택의 순간에, 김태원은 선택과는 아무 상관없는 질문을 던졌다. "네"라는 짧은 대답이 이어졌다. 선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들이 오가면서 오히려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김태원은 다른 멘토들을 보았다. 다른 누군가가 백청강을 구제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김태원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목소리가 누군가와 비슷한데 바꿀 자신 있습니까?"

백청강이 대답했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누구보다 단호하게. "바꿀 자신 있습니다."

김태원이 마침내 손을 들었다. 위탄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고기부터 사 먹이라는' 이은미의 축하말을 들으며 백청강이 김태원 뒤에 마련된 멘토석의 맨 뒷자리에 앉았다. 마지막 남은 자리였다. 백청강은 김태원 외에 다른 누구도 자신을 선택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런 김태원의 멘토석에 단 하나 남아 있던 자리. 그 자리에 앉으며 불과 몇 초 전에 아주 '주장 있게' 말했던 백청강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연변 청년 백청강의 합류로 김태원 사단이 명실상부한 외인구단이 되자, 위탄에서도 이들의 존재감을 드러내주기 시작했다. 한쪽 눈을 가린 헤어스타일로, 웬만해선 외모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김태원조차 그를 보자마자 80년대 까치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을 바꾸라고 조언했을 만큼 어두운 이미지였던 백청강도 조금씩 밝은 모습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백청강이 다시 한 번 눈에 띈 것도 그즈음이다.

멘토 스쿨 파이널 테스트 무대를 앞두고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는 아버지를 찾아간 백청강은 삼겹살을 구우며 천진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부자는 심각한 격려나 눈물 대신 '박칼린을 실제로 본 신기한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부모와 함께 산 기간이 모두 합해 1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백청강이 그럼에도 아주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라는 것을 그 아무렇지 않은 대화가 오간 삼겹살 식당 장면이 증명해 주었다. 놀랍게도 이 장면에서 백청강은 연변 사투리의 귀여운 매력까지 보여주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박칼린을 앙까?(압니까?의 연변 사투리) 앙까? 어떻게 앙까?

김태원의 선택 이후 백청강은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노래 실력 좋기로 소문난 김태원의 멘티 중에서도 박칼린은 백청강에게 1등을 주었고 선택된 12명의 첫 생방송에서도 백청강은 무난히 1등을 차지했다. 그런데 복병은 의외의 순간에 숨어 있었다. 영어였다. 영어, 영어라니! 요즘 같은 세상에 영어라니.

유명한 팝송을 부르는 미션 앞에서 노래 잘하는 백청강이 기가 죽었다. "팝송은 불러본 적이 없어서......" 요즘 같은 세상에 영어 때문에 팝송 부르기를 두려워하다니.

노래'만' 잘하는, 노래'까지' 잘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위탄의 도전자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노래'밖에' 잘하는 것이 없는 도전자들과 노래'까지' 잘하는 도전자들. 그 중간은 별로 없다. 지원자들의 면면을 보라. 모두 평균 이상의 스펙을 소유한, 중산층 출신들이다. 와세다 대학생 백새은, 재미교포 데이비드 오, 영국에서 4년 살았다는 연대생 조형우 등등. 이들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은 평균적인 가정에서 온 평균적인 아이들까지 포함해 이른바 '외인구단'으로 불리고 있다.

'외인구단'이라는, 다분히 '예능적'인 용어로 유머스럽게 포장되어 있지만 그 안에 숨은 현실은 사실 얼마나 냉정한 것인가. 연변 청년 백청강은 그 외인구단 중에서도 가난하기로는, 절박하기로는 가장 '남부럽지(?) 않다.' 노래'까지' 잘하는 엄친아라고 해서 꿈이 소중하지 않겠느냐마는 이들의 절박함이 백청강의 절박함에 비할까?

그런데 노래 잘하는 백청강이 고작 '영어' 앞에서 풀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결국 백청강의 지지자가 되고 말았다. 발음을 감추기 위해 다소 일부러 뭉개버리는 듯한 영어 발음을 들으면서, 그리고 뭉개진 영어의 자리를 노래로 채우는 백청강을 보면서 도저히 지지자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편파적이란 오명 안 쓰게 끝까지 최고이기를

나는 진심으로 백청강이 1등을 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상금을 백청강이 차지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래서 수십 년째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아온 백청강의 아버지가, 아들 덕분에 한국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국 나들이를 하고 있는 아버지가, 아들이 멋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심사위원들에게 호평을 받아도 벅찬 가슴을 애써 누른 채 묵묵히 보고만 있는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뛸 듯이 기뻐하는 순간을 보고 싶다.

이런 바람을 담아 백청강에게 한 표를 던진다면, 이것은 공정한 오디션의 룰을 깨뜨리는 편파적인 행위인가? 그러나 이미 백청강에게 주어진 세상이란 얼마나 불공정한 것인가? 백청강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와 데이비드 오와 조형우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는 얼마나 불공정한가? 말하지 않을 뿐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는데 백청강에게 다가온 몇 안 되는 기회를 살려준다고 해서 이를 편파적인 행위라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연변 청년 백청강이 1등을 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예능 프로그램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드라마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의 존재 기반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이런 바람을 담아 백청강에게 던지는 한 표가 부디 편파적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도록 백청강이 끝까지 최고로 노래를 잘해주기를 바란다.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들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이미 엿보인다. 연변의 각종 무대에서 백청강은 이미 넘치는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위탄에서 이미 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백청강은 아직 너무 감추고 있는 것이 많다.  


태그:#위대한 탄생 , #백청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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