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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의 유적지를 찾아 떠나는 보길도 여행길

 

6·25전쟁을 여섯, 일곱 살 때 겪은 나의 초등학생(초등학교 동창생)들은 1학년 때 만나 6학년 졸업 때까지 줄곧 같은 반 같은 학년으로 졸업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는 리(里) 단위 마을에 떨어져 살았지만 조금 과장해 말하면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를 다 알 정도로 절친한 불알 친구 사이 동창생들이다.

 

그랬던 동창들이 성인이 되어 35년 전부터 동창모임을 이끌어 오던 중 벌써 몇몇 친구들은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남은 친구들 몇은 그렇지 않아도 아까운 인생인데 노인티 내느라 더러는 골골거리는 친구도 생기고 또 한 부류의 친구들은 벌써 자신을 위한 여가 문화생활을 포기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가운데 나머지 7명의 친구가 꾸준히 만남을 유지하며 회비를 모아 해마다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갔다 오곤 했다. 올해는 꼭 외국여행을 떠나자고 주문들을 하지만 총무인 내가 시간이 여의치 않아 외국여행을 떠나지 못할 입장이 되었다. 나빼고 너희끼리 다녀오라 하니 아니 모임의 일꾼인 총무를 빼고 무슨 국외냐면서 국내 여행지를 알아봐 아예 예약을 하라고 나에게 책임을 맡긴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켰지만, 청나라에 설욕 당하고만 윤선도 선생께서 세상을 개탄하며 평생 초야에 머물기로 작정하고 제주도로 먼 길을 떠났으나 풍랑을 만나 우연히 크고 아름다운 섬에 내리셨는데 그곳이 보길도이다.

 

▲ 남해 보길도 여행 60년지기 초딩 부부들이 1박 2일간으로 남해안 여행길에 나서 보길도에서 "고산 윤선도"가 세심정이란 정자를 짓고 글을 쓰며 풍류를 읊으며 왕의 부름을 기다리던 세심정을 돌아본 사진과 동영상이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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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개인적으로 내가 윤가이기 때문에 늘 마음 속으로 "고산 윤선도의 원림"이 위치한 보길도에 가보고 싶어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것이다. 그래서 초딩들에게 (2011.4.9) 오전 7시 20분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KTX 열차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라는 연락을 했다. 일행들을 만나니 7팀 부부 14명 중 3명이 유고가 생겨 빼고 11명의 회원이 KTX 특급 열차를 이용하여 나주를 향하여 달려간다.

 

그런데 대전까지는 고속철이 되어 1시간여 만에 도착하였는데 대전에서 나주까지는 국철 선로에 KTX 차량만 지나게 되어 대전에서 2시간이나 걸려 나주역에 하차한다. 나주역에 하차하여 "홍익여행사"가 제공한 전세버스를 타고 땅끝마을을 향하여 달려간다. 아직 수도권에는 벚꽃도 목련도 진달래도 개화가 얼마 더 남았는데 이미 남쪽 나라에는 모든 꽃이 만발하여 여행하는 우리 일행들 마음에 봄바람을 부추긴다.

 

그러다 보니 일행들 다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 "도영이 할망"은 얼굴이 붉으스레 복사꽃 얼굴을 하고 달린다. 서울에서 나주 거쳐 땅끝 선착장에 정오 다 된 시간에 도착하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얼큰한 남도 매운탕찌개"로 점심을 마치고 12시 30분 땅끝 선착장을 출발한 우리 일행을 싫은 유람선은 보길도를 향하여 달려간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초딩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다 육지 촌놈들이다 보니 언제 제대로 바다구경을 해보지 못했다. 망망대해를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유람선도 신기하고 넓은 바다 곳곳에 섬들이 있고 그곳에 양식장이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데다 이날 따라 날씨도 청명 온화하고 그야말로 모처럼의 60년지기 초딩 부부들의 남도 여행을 축하해주는 듯한 분위기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 일행을 실은 유람선은 보길도 항에 도착했다. 우리와 함께 유람선을 타고 온 버스를 타고 시인의 꿈 꾸는 낙원! 보길도 관광이 시작됐다. 보길도 동백꽃 거리를 돌아보는데 우리를 안내해 주신 홍익여행사 임 소장께서 동백꽃을 따 빨아보면 달콤한 꿀이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이 동백꽃을 따 꿀 맛을 본다. 그 바람에 사람 손이 닿는 동백나무는 아픈 모습으로 엉엉 울고 있는 듯하다.

 

이어서 우리는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 세연정을 돌아봤다. 그 옛날 어떻게 무슨 기술로 그 거대 아름다운 기암괴석을 운반하여 분위기 그럴듯한 아름다운 정원을 꾸려놓았을까. 또 어떻게 그곳에 전국의 풍류객을 불러모아 시를 읊으시며 많은 명시를 남기셨는지 새삼 "고산 윤선도"의 지혜에 놀라게 된다.  

 

윤 위가 <보길도지>에 쓰기를 "예부터 동방의 명승지로는 금강산 삼일포와 보길도가 있다"고 했다. 그 정도로 보길도가 아름답다는 이야긴데 구름에 달 가듯 바쁜 일정으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여행을 하다 보니 그 좋은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강대강 휘둘러만 보고 제대로 된 감상을 하지 못함이 마냥 아쉽고 한이 된다.

 

그런데도 평소 다리가 아프니 관절이 안 좋으니 하던 친구들은 그야말로 눈요기에 굶주린 여행을 온 것인지 세심하게 돌아봐야 할 명소들은 하나같이 그냥 지나치고 앞서가며 나더러 빨리 오라고 성화를 한다. 아니 자기들이 걷기를 아니면 등산을 하기로 한다면 감히 나를 따르기나 하지도 못하는 친구들이 왜 모처럼 일정으로 찾아온 보길도의 아쉬운 시간을 재촉하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번 돌아본 세심정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생각을 한다. 이곳에서

명문(名文) (어부사시사)를 남긴 윤선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엿보며 "고산 윤선도"의 이상향의 낙원이었던 보길도의 애증의 세월을 그려보며 머리를 숙인다. 병자호란으로 세상을 등졌으니 보길도가 남달리 보였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보길도는 고산에게 낙원이 아니라 평생 숨어 산 은둔자였을지도 모른다.

 

일생 정치적인 야심을 버리지 못한 "고산 윤선도"에게 보길도는 도피와 쾌락의 은둔 공간이었다. 그는 자신이 기거하는 낙서재를 북향으로 지어 왕이 있는 한양을 매일같이 바라보았고 세연지 연못가에 제갈량의 사당을 짓고 싶다고 노래했다. 하지만, 그는 제갈량과는 달리 끝내 왕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정치적 반대파들의 방해로 빈번히 좌절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마다 고산은 세연정과 공천석실에서 위로를 받았다. 고 세연정 안내문에 적고 있다.

 

이렇게 "고산 윤선도"의 세연정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전세버스를 타고 보길도 예송리 몽돌해수욕장 "상록수림 천연기념물 40호"로 이동했다. 바닷물에 마치 쌀 씻듯 밀려왔다 오가기를 반복하여 으깨진 돌들. 동글동글해진 몽돌 해변에 신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20여 분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다. 다시 유람선을 타고 땅끝마을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마을 관광에 나섰다. 고지를 향하여 오르는 모노레일을 타고 "땅끝 전망대"에 도착하여 조망을 즐기고 일행들을 먼저 내려 보냈다. 나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갈라진 땅끝마을 "전망대"에서 남해 일몰 풍경을 조망하며 사진을 찍고 다시 발길을 서둘러 "땅끝 탑" 촬영을 마쳤다. 일행들을 만나 다시 전세 버스를 타고 완도로 이동하여 숙소 배정을 받았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첫째는 물론 구경이 우선이지만 두 번 째는 뭐니뭐니해도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고 흥미다. 그래 우리는 "홍익여행사"임 소장께 적당한 먹을거리 장소 추천을 의뢰했다. 외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현지에서 싸고 맛좋은 음식을 이용할 수 있는 시장을 안내해 주며 우리 일행을 "완도 바닷속 이야기 해산물 장터"까지 태워다 준다.

 

우리는 임 소장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일행들과 함께 "완도 바닷속 이야기 해산물 장터" 시장으로 들어서니 각처에서 오신 여행객들이 수많은 좌판 횟집에서 흥정하느라 입체 여지가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입구 [25호 미주네] 아주머니께 돌아다녀 봐야 값은 같을 것이니 아주머니 집에서 11명이 먹을 수 있는 회를 주문하겠으니 대신에 서비스나 많이 주라고 부탁을 하며 (우럭, 도미, 광어) 6킬로그램을 12만 원을 내고 샀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께서는 덤으로 팔뚝만 한 숭어 큰 것 두 마리에 해삼 멍게 등을 주어 회를 떠 3개의 커다란 접시에 푸짐하게 듬뿍 담은 회 양(量)을 보고 일행들 너도나도 회를 시식하기도 전부터 싱글벙글 입가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2층 "완도 싱싱 나라 횟집"에 1인당 5,000원씩의 비용 지급하고 (식사, 야채, 각종 푸짐한 반찬, 찌개) 장소를 받아 모처럼 떠난 60년 지기 초딩 친구들의 첫날 여행 뒤풀이를 푸지고 걸판지게 마쳤다.

 

 

 

♣ 漁父四時詞 (어부사시사) / 윤선도 ♣

 

봄노래

동풍이 건듯부니 물결이 고이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돛을 달아라

동호를 돌아보며 서호로 가자스라

지국총 어사와 지국총 어사와

앞뫼는 지나고 뒷뫼는 나아온다

앞뫼는 지나고 뒷뫼는 나아온다

 

여름노래

연잎에 밥싸두고 반찬을랑 장만 마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청약립은 써있노라 녹사의(綠蓑衣) 가져오느냐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어사와

무심한 백구는 내 좇는가 제 좇는가

 

가을노래

수국의 가을이 오니 고기마다 살져있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만경징파(萬頃澄波) 슬카지 용여하라

지국총 지국총 어야디야 어야디야

인간을 돌아보니 멀도록 더욱 좋다

 

겨울노래

간밤에 눈갠후에 경물(景物)이 달랐고야

이어라 이어라 이어라 이어라

앞에는 만경유리 뒤에는 천첩옥산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사와

선계(仙界)인가 불계(佛界)인가 인간이 아니로다

선계인가 불계인가 인간이 아니로다

 

♣ 五友歌 /고산 윤선도 ♣

 

나의 벗이 몇인가 헤아려 보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로다.

나머지는 그냥 두어라. 이 다섯 외에 더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구름의 빛깔이 깨끗하다고 하지만 자주 검어지네.

바람 소리가 맑다지만, 그칠 때가 많도다.

깨끗하고도 그칠 때가 없는 것은 물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까닭에 피자마자 쉬이 져 버리고,

풀은 또 어찌하여 푸른 듯하다가 이내 누른 빛을 띠는가?

아마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따뜻해지면 꽃이 피고, 추워지면 잎이 떨어지는데,

소나무야, 너는 어찌하여 눈서리를 모르고 살아가는가?

깊은 땅 속(혹은 저승)까지 뿌리가 곧게 뻗은 것을 그것으로 하여 알겠노라.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시켰으며,

또 속은 어찌하여 비어 있는가?

저렇고도사철 늘 푸르니,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다 바추니

한밤중에 광명이 너보다 더한 것이 또 있겠느냐?

보고도 말을 하지 않으니 나의 벗인가 하노라

 

 


태그:#보길도 , #고산 윤선도, #해당화 , #세심정 , #땅끝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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