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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회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이 굳은 표정으로 한-EU FTA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듣고 있다.
 15일 국회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이 굳은 표정으로 한-EU FTA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듣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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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15일 오후 2시 22분]

"저는 기권입니다."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은 이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15일 오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들이 한-EU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고성을 주고받는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해 버린 결정적 한마디였다.

홍 의원이 자리를 떠나자, 기습처리를 시도했던 법안심사소위원장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 의원의 팔을 붙잡고 의사봉을 뺏었던 김동철 민주당 의원은 의사봉을 다시 그에게 돌려줬다. 곧이어 김 의원은 "찬성 3명·기권 1명·반대 2명이니 부결된 것이다, 이런 한나라당의 의사진행에 협조할 수 없다"며 회의장을 떠났다.

김 의원은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은 비준안 처리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진 않는다"며 "피해대책이 선행돼야 하는 만큼 6월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소위 부결로 보고됐는데 전체회의에서 가결 처리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이번 4월 국회에서 한-EU FTA 비준안 처리는 사실상 물건너갔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EU FTA를 4월 국회에서 종결짓고자 했던 한나라당의 전략은 이날 기습처리 실패로 더욱 꼬여 버렸다.

원내사령탑 작전명령 거부한 초선의원의 소신

홍 의원의 결정은 여당 의원으로서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원내사령탑이 4월 국회 내 처리를 요구하는데 초선인 홍 의원이 찬물을 끼얹어 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정부에서 가져온 대안이 비록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합리적 방안이라면 오늘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당 소속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들은 한-EU FTA가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애국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홍 의원은 폭력국회 근절을 목표로 발족된 '국회 바로세우기' 모임에 소속돼 있다. 홍 의원은 당시 '국회 바로세우기' 모임 발족 기자회견에서 "향후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이 동원되는 의사진행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이를 어길 경우 다음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약속에 따르면, 그는 이날 상황에서 '기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김동철 의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홍 의원과 '국회 바로세우기' 모임에서 같이 활동 중인데 홍 의원이 어제(14일)도 '민주당이 물리적 저지를 하고, 강행처리를 하는 상황이 오면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고 말했다.

소신과 조직 사이에서 그가 느꼈을 고뇌는 이날 기권표를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났다. 유 의원이 기습처리를 시도하면서 소회의실이 아수라장이 되자, 그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선택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한두 달 빨리 한·EU FTA 사인하는 것보다 의미있는 건..."

지난 2010년 12월 16일 오후 국회에서 수도권 소장파들이 중심이 된 '한나라당 국회 바로세우기를 다짐하는 국회의원 일동' 소속 의원들이 '자성과 결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 "우리는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지키지 못할 때에는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 앞에 약속드린다"고 밝히고 있다. 오른쪽부터 황영철, 김성태, 홍정욱, 김성식 구상찬 의원.

이날 성명에는 4선의 황우여·남경필 의원, 3선의 이한구·권영세 정병국 의원, 재선의 신상진·임해규·진영 의원, 초선의 구상찬·권영진·김선동·김성식·김성태·김세연·김장수·성윤환·윤석용·정태근·주광덕·현기환·홍정욱·황영철 의원 등 22명이 동참했다.
 지난 2010년 12월 16일 오후 국회에서 수도권 소장파들이 중심이 된 '한나라당 국회 바로세우기를 다짐하는 국회의원 일동' 소속 의원들이 '자성과 결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 "우리는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지키지 못할 때에는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 앞에 약속드린다"고 밝히고 있다. 오른쪽부터 황영철, 김성태, 홍정욱, 김성식 구상찬 의원. 이날 성명에는 4선의 황우여·남경필 의원, 3선의 이한구·권영세 정병국 의원, 재선의 신상진·임해규·진영 의원, 초선의 구상찬·권영진·김선동·김성식·김성태·김세연·김장수·성윤환·윤석용·정태근·주광덕·현기환·홍정욱·황영철 의원 등 22명이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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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여당 의원으로서 한-EU FTA에 적극 찬성하지만 법안심사소위에서 기습 처리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며 "물리력을 동원한 의사진행에는 협조하지 않겠다고 지난해 12월 밝힌 바 있다"고 기권표 행사 이유를 밝혔다.

또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의 강행처리 시도가 있을 경우에도 "야당이 한-EU FTA에 동의하면 모르겠지만, 물리력을 동원할 경우 소위에서처럼 기권할 것"이라며 "강행처리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물리력을 동원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단 건 국민들께 드린 약속이었다"며 "한-EU FTA를 한두 달 빨리 사인하는 것보다 폭력국회를 뿌리 뽑는 게 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홍 의원은 여야가 서로 충분히 협의할 여지가 있었다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홍 의원은 "정부가 한-EU FTA 비준안 통과에 따른, 축산농가 피해를 위해 충분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생각했다"며 "조금만 더 협의했다면 야당 의원들도 충분히 설득 가능했는데 그런 과정이 없이 기습처리가 시도돼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홍 의원의 기권표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인 김충환 의원은 "'통과됐습니다'라고 말한 뒤 홍 의원이 기권 의사를 표시했다"며 "회의진행상 시간이 늦으면 기권 표시가 안 된다, 부결이 확실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속기록을 보면, 김 의원의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다. 유 의원이 "찬성하는 위원님들, 기립해 달라"며 표결을 진행했을 때 홍 의원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김동철 의원도 이를 지적하며 "찬성이 세 명밖에 안 된다"고 현장에서 반박했다.


태그:#홍정욱, #한EU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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