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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종횡무진 한국경제' 강의를 하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종횡무진 한국경제' 강의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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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법치주의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질서를 확립하는 등의 구자유주의적 과제는 원래 보수가 맡아야 하는 부분이지만 한국의 보수들은 그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진보진영은 일을 두 배로 해야 합니다. 진보진영이 진보적인 과제뿐만 아니라 구자유주의적인 개혁과제들도 함께 챙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진단한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경제의 문제점은 '구자유주의가 결핍된 상태에서 온 신자유주의의 과잉'이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는 경제위기이면서 동시에 정치위기"라며 "다음 대선에서 진보·개혁 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된다고 해도 이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다면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5일과 12일, 두 번에 걸쳐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경제-신자유주의와 한국경제'라는 주제로 강의를 가졌다. 그는 이날 강의에서 중상주의 이래로 약 500년간의 서구의 경제사 및 경제사상사를 설명하며 "구자유주의와 포디즘의 중간단계를 생략하고 중상주의에서 바로 신자유주의로 건너뛴 한국의 특성을 알아야 한국경제를 개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경험하지 못한 구자유주의와 포디즘의 유산

중세 이후, 서구의 경제사는 크게 4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시간 순서대로 절대군주의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체제였던 '중상주의'와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로 대표되는 근대 시민사회의 '고전적 자유주의(구자유주의)', 케인스적 복지국가체제를 만들었던 '포디즘'(대량생산, 대량소비), 그리고 그 후의 '신자유주의'다. 김 교수는 이들 경제 체제들을 설명하며 "각각의 경제 체계들은 이전 시대의 경제 체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담 스미스가 극복하고자 했던 상대는 중상주의였습니다. 국가의 부를 화폐의 양으로 간주했던 중상주의와는 달리 아담 스미스는 화폐가 아니라 상품의 양이 부강한 국가를 만든다고 보았지요. 그래서 생산성을 늘릴 수 있는 분업을 강조했고, 늘어난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을 자유롭게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유명한 개념이 나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시장에서 이기심에 따라 움직이면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시장이 조화로운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죠."

'보이지 않는 손'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김 교수는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핵심을 '역지사지(sympathy)'라고 썼다"고 설명했다.

"아담 스미스가 말했던 'sympathy'는 주체와 객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것이죠. 이기심과 역지사지를 조화시키는 아담 스미스의 구자유주의 경제사상은 이렇게 모순적입니다. 개인에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을 위한 자기절제도 요구하는 것이거든요. 내가 나의 자유를 아무런 제약없이 행사하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구자유주의에서는 권력교체와 규제, 법이 발달했습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산실인 시카고대학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또 다른 영역이 법학입니다. 법경제학이라는 영역이 시카고대학에서 만들어졌지요."

20세기 초, 구자유주의의 자유방임적 경제질서를 대체하기 위해 포디즘의 특징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있었다. 대량생산은 생산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했지만 이것이 대량소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상품을 살 사람이 필요했다. 김 교수는 "대량소비를 가능하게 한 것은 노사협상을 통한 지속적인 임금 상승과 국가 재정을 통한 사회보장제도의 확대였다"고 설명했다.

"포디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노동자와 자본가 계급의 계급 타협이 이뤄졌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헨리 포드의 공장은 미국 평균보다 1.7배 많은 임금을 지급했습니다. 자본가는 더 많은 임금을 주고, 노동자는 이 임금으로 자본가의 상품을 소비했습니다. 이러한 계급타협에 의해 자본주의는 성장과 안정이 동시에 달성되는 황금기를 약 30년 동안 누리게 됩니다."

"신자유주의는 형평성을 깨는 체계"

1970년 이후 생산성의 증가가 정체되고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소비를 원하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포디즘 체제는 위기를 맞는다. 여기에 케인스 경제학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1차 오일쇼크가 겹쳐 몇 년동안 물가만 올라가고 경제는 나아지지 않는 스테크플레이션이 지속됐다. 김 교수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고 당연히 그 내용은 포디즘의 모든 약속을 뒤집어 엎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노동의 유연화, 사회보장제도의 축소, 감세,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 개방화 등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극대화시키는 것. 김 교수는 "자본주의를 움직여가는 힘은 시장과 국가"라며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은 시장에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맡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을 보면 노동력과 화폐를 특수한 상품으로 놓고 그 의미를 분석합니다. 이 두가지 상품이 특이한 이유는 시장에서 자동적으로 재생산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기능에만 맡겨놓으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는다는 얘기지요.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특수한 두 가지 상품의 재생산 과정을 시장에 맡겨버렸다는 겁니다. 지난 30년 동안 그 때문에 수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를 끝으로 이제는 신자유주의가 더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국 상위 10%의 소득점유율 추이 :1917-2006
 미국 상위 10%의 소득점유율 추이 :1917-2006
ⓒ Saez(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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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형평성을 깨는 체계"라고 정의하며 1917년부터 2006년 사이 미국 상위 10%의 소득점유율 추이자료를 제시했다. 그는 "경제를 시장에 맡긴 시기에는 공통적으로 극심한 소득불균형이 나타난다"며 "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은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소득불균형 역시 가장 심한시기였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만 해결하려 해서는 한국사회 발전 어려워"

서구 경제는 중상주의에서 구자유주의, 포디즘과 신자유주의의 과정을 거쳐 성장했다. 그렇다면 압축적 성장으로 유명한 한국 경제는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김 교수는 "거칠게 서구 자본주의 역사에 비유하자면 박정희식 개발독재 중상주의에서 바로 신자유주의로 건너 뛴 것"이라며 "한국 경제의 많은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중상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구자유주의와 포디즘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구의 다른 나라들이 그 두 가지 체제를 거치며 가지게 된 사회적 인프라들이 한국사회는 없어요.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나 자신에게 시민으로서의 사회권이 있다는 인식은 구자유주의와 포디즘 하의 사회적인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거든요. 이런 게 없으니까 '한국에서는 법 혼자 지키면 바보다', '애들한테 점심 공짜로 주면 망국병이다, 포퓰리즘이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21세기 한국 경제가 바람직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특히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의 극복뿐만 아니라 구자유주의의 확립 역시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각한 양극화와 지나친 노동유연성 등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바로 잡는 것과 우리 사회가 경험해보지 못한 구자유주의적 과제와 포디즘적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진보 진영에서 한국 경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신자유주의를 거론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완벽한 답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저는 장하준 교수의 한국 경제 해결책에 100% 동의하지 않습니다. 장 교수의 해법은 영국에서 사는 경제학자가 영국의 환경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것이거든요. 영국은 한국과는 달리 구자유주의적 과제와 포디즘적 과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 두 가지도 함께 고려해야 하지요. 이는 장하준 교수의 책에 대해 호평하는 경제학자가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 교수는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긴다는 점"이라며 현재 한국경제에 대핸 기본적인 해결법이 국가와 시장의 힘의 비율을 적정 수준에서 조절하는데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 시대 경제학의 과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라는 케인스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의 과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주주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태그:#김상조, #종횡무진 한국경제,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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