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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월 13일) 저녁 '9시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40년 전 군 복무시절이 떠올랐다. 보도의 제목은 "군납 유류 빼돌린 유조차 기사"인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군부대 납품 경유를 빼돌리던 유조차 운전기사와 이를 사들인 주유소 업자 수십 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군납 유류를 일반 주유소로 빼돌린 혐의(절도)로 유조차 운전기사 정 아무개(47)씨와 이를 사들인 주유소 대표 안 아무개(47) 씨 등 2명을 구속하고, 4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 등은 2009년 7월 23일부터 지난달 14일까지 군부대 납품 유류를 운송하면서 운반 도중 차고지에 들러 봉인된 탱크로리의 유류구를 조작해 수백 회에 걸쳐 88만 리터, 시가 15억4천만 원 어치 경유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훔친 경유 가운데 43만 리터는 인천. 부천 소재 주유소에 팔고, 나머지 45만 리터는 자신의 차량에 넣은 뒤, 허위 카드결재로 유가보조금 1억5천만 원까지 챙겼다. 이들은 이렇게 번 돈으로 외제 승용차까지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취사병의 하소연

전방 보병 소대장시절의 필자
 전방 보병 소대장시절의 필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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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전방 보병 00사단 00연대 제1대대 3중대에서 소총소대장 및 부중대장으로 근무했다.

1970년 봄, 내가 소속한 중대는 서부전선 심학산 밑 부대에 주둔하면서 대간첩 경계 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때 나는 부중대장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부대 보급 및 행정반 관리가 나의 주된 업무였다.

어느 날 저녁 일일결산 때 취사병들과 행정반원들의 애로사항을 들었더니, 상급부대에서 각종 보급품이 규정대로, 또는 정량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취사병들의 불만은 사단에서 내려보낸 취사용 경유드럼통의 두껑을 열어보면 정량에서 20~30퍼센트가 비어 있기에 보급관에게 여러 차례 항의했더니 다음부터는 가득 채워주는데 드럼통 밑 20~30퍼센트가 물로 채워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정량을 보내지 않으려면 차라리 부족한 채로 보낸 게 낫지, 물을 채워 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취사병들은 물이 섞인 경유는 잘 연소도 되지 않을 뿐더러, 버너고장도 잦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현장을 확인하자 취사병 말 그대로였다. 인사계(선임하사관)에게 얘기하자 그 정도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면서, 대한민국 군대가 언제 말단 부대에까지 제대로 정량 보급품이 나왔느냐고, 오히려 나에게 ROTC 출신이라 군대의 생리를 잘 모른다고 한 마디 했다.

그런 일이 우리 중대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른 중대도 마찬가지였다. 그 얼마 후 사단 지휘관 회의에 다녀온 중대장의 얘기를 들었더니, 지휘관 회의 마지막에 사단장이 애로사항을 묻기에 한 정의감 있는, 용감한 이웃 중대장이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보고한 모양이었다.

사단장은 배석한 군수참모에게 즉각 시정하라고 지시한 모양인데,  그날 회의가 끝난 뒤 그 중대장은 연대장에게 불려가 조인트(군화발로 정강이를 차는 체벌)를 당했다고 한다.

"너 이 새끼, 군대생활 하루 이틀 했어. 그런 일이 있으면 지휘계통을 밟아 보고해야 되잖아."

연대장은 사건 본질보다 다른 꼬투리를 잡아 부정을 고발한 부하를 닦달하더라고 전했다. 사실 지난날 우리 군대는 부정부패의 온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 역사의 어두운 한 단면

오죽하면 한국전쟁 중 국민방위군사건으로 굶어죽거나 얼어 죽은 병사가 수만 명에 이르렀을까? 군 고위층들이 병들에게 돌아갈 주부식을, 피복을 가로챘기 때문이었다.

나라가 남의 집 귀한 자식 데려다가 굶기고, 두들겨 패고,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니까 병역을 기피하려고 별의 별 짓을 다한 게 지난 우리 역사의 어두운 한 단면이었다. 그래도 내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5·16 후로 군의 부정부패와 비리가 많이 개선된 때인데도 그랬다.

한번은 부식 보급에 부정을 없애겠다고 사단장이 특명으로, 부식 수송차량 선임 탑승을 보급하사관 대신 각 중대 소대장들이 돌아가면서 탑승케 하여, 나도 두어 번 보급관으로 선임 탑승해본 적이 있었다. 부식차량 운전병 말에 따르면, 쇠고기나 닭고기가 나오는 날이면 검문소 헌병들이 요구하고, 연대에 가면 연대장 당번병이, 대대에 가면 대대장 당번병이 손을 내밀기에, 그들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특식으로 나온 부식을 떼어 주고나면, 그 정량을 채우기 위해 보급하사관이 주사바늘을 가지고 다니며 호젓한 곳에서 닭고기는 항문으로 물을 넣고, 쇠고기는 육질에다 주사바늘로 물을 넣어 무게를 늘린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한때 우리 사회 물 먹인 쇠고기의 원조는 아마도 군에서 출발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군대에서 고기 한 점 없는 쇠고기국을 '황우 도강탕(黃牛 渡江湯)'이라고 한 모양이었다.

요즘 나는 뒤늦게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역사책을 넘기면서 울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나라가 망한 가장 큰 원인은 우리 내부의 부정부패였다는 점이고, 일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썩지 않은 곳이 없다

부정부패의 온상은 대한민국 군대만이 아니었다. 내가 33년간 몸담았던 교육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평생 목회를 하고 있는 한 친구는 대한민국 교회도 말할 수 없이 썩었다고 개탄했다. 가장 신성하고 깨끗해야 할 종교계와 교육계가 얼룩투성이이니까, 다른 곳은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그날 또 다른 뉴스는 마늘밭에서 일 백억 원이 넘는 현찰뭉치가 나왔다는 '믿거나 말거나'에 나옴직한 보도다. 이 보도에 얼마나 많이 사람이 허탈했을까? 밭에다 돈을 묻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말로 병든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러면 부정부패의 몸통은 누구이며 이를 척결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우리 근현대사에서 살펴보니까 부정부패의 몸통은 거의 최상층이요, 그 척결 방안은 백성들의 의식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나라 지도자는 백성들의 수준과 같기 때문이다.

직권으로 수천억 원을 횡령한 전직 고위층이 "내 배 째라" 하는 세상에, 온통 때묻은 자가 고위층으로 거들먹거리고 있는 현실에, 유조차 운전기사가 자기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기는커녕, 자기는 재수 없이 걸렸다고, 힘이 없어 교도소에 간다고 억울해 할 것이다.

얼마 전 정부고위직에 지명되었다가 청문회에서 낙마한 아무개씨는 이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입후보한 모양이다.  

그가 청문회에서 낙마할 때는 분명 도덕성이나 청렴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참회의 기간도 없이 얼굴 두껍게 입후보한 당사자나, 그를 공천한 정당은 도대체 건전한 양식, 아니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 한 서생은 그들의 처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요, 희극이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본바로는 매를 맞아야 할 도적이 오히려 매를 든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부정부패 비리의 몸통들이 평생을 잘 살고 그 자식마저 고관이 되고, 기업주가 되고, 재벌의 며느리가 되는 세상에 젊은이들에게 바르게 살아라는 말이 먹혀들겠는가.

한자에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중국의 황허강(黃河江)이 늘 흐려 맑을 때가 없다"는 뜻으로, 아무리 오랜 시일이 지나도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이다.

그 유래를 살펴봤더니, 황허강 상류지대에는 황토지대이기에 거기서부터 황토물이 하류로 내려오니까, 황허강은 상류나 중류, 하류 모두가 언제나 흐리다고 한다. 이 고사는 비단 중국 황허강에만 맞는 말이 아니라 대한민국 근현대사에도, 오늘 우리 현사회에도 아주 적확하게 들어맞는 말이다.

황허강에는 언제 맑은 물이 흘러내릴까? 남이 아닌 바로 깨어있는 나에게 그 답이 있다.


태그:#군납 유조차, #부정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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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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