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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앵커'였던 선배와 '사건 기자'였던 후배의 입심 대결은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왔다. 14일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후보 등록 후 열린 첫 TV토론에서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와 최문순 민주당 후보는 기자 출신답게 상대의 아픈 곳을 예리하게 파고 들었다.

 

선거구가 넓은 강원도의 경우 TV토론이 판세 변화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두 후보의 대결은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엄 후보는 앵커 시절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는 표현을 섞어 상대의 주장을 반박했고 최 후보는 춘천고와 MBC 입사 선배인 엄 후보를 "선배"라고 부르며 예우를 갖췄지만 공세를 취할 때는 결코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도 보여줬다. 

 

토론회 진행을 맡은 김원동 강원대 교수도 초반부터 각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한나라당 입당(엄기영)과 천안함(최문순)에 대한 질문을 던져 뜨거운 설전을 끌어냈다.

 

[천안함] "아직도 북한 소행?"-"색깔론 유감"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두 후보 간의 설전은 토론회 초반부터 예고됐다. 진행자 김원동 교수는 최 후보에게 "천안함 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 달라"며 논쟁의 불을 당겼다.

 

최 후보는 "아직도 색깔론이 남아있다는 게 유감"이라며 "대개 이런 색깔론을 제기하는 분들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분들로 그럴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받아쳤다. 최 후보는 특히 "23년간 강원도 곳곳에서 군생활을 하신 아버지 등 가족들의 군 복무기간을 합치면 70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의 공세는 거셌다. 엄 후보는 작심한 듯 자신의 질문 차례가 돌아오자 "최 후보는 국내외 최고 전문가가 참여한 국방부 합동조사단 결과에 대해 미신이라고 했고 러시아 대사 면담 후에는 내부폭발이었다고 발표했다"며 "아직도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믿느냐"고 따졌다.

 

이어 "강원도지사가 되면 도의 통합방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될 텐데 군과 함께 휴전선에 방문해서도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할 것이냐"며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북한을 두둔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져 안타깝다"고 몰아부쳤다.

 

최 후보는 거듭 "야당 의원으로서 국회에서 만든 천안함 특위 활동을 한 것을 가지고 색깔론을 제기하는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특위에서 제가 문제제기 한 내용은) 국방부가 천안함 사건 1주기에 발표한 백서에도 다 들어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광재 대 김진선] "이광재 불법으로 보궐선거"-"정치 탄압"

 

'이광재 동정론'도 이날 토론에서 뜨거운 쟁점이었다. 엄기영 후보는 "이번 보궐선거는 이광재 전 지사가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서 치르게 된 것 아니냐"고 먼저 공세를 취했다.

 

최 후보는 "이 전 지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표적 수사였고 정치 탄압이었다"며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도 주성영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 전 지사의 재판을 내년으로 넘기지 말라고 하는 등 여당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고 맞섰다.

 

엄 후보는 '정치 탄압'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하지만 잘못된 사실을 근거로 드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엄 후보는 "이 전 지사 사건은 노무현 정부 때 검찰이 기소한 것으로 정치 탄압이라는 주장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실제 이광재 지사가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 구속기소된 것은 2009년 일로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최 후보는 구체적인 반박보다는 "이 전 지사는 (MBC 사장이었던) 엄기영 선배를 지키기 위해 많은 애를 썼고 둘의 관계는 저와 이 전 지사의 관계보다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서로 지켜줘야 할 관계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최 후보는 동계올림픽 유치 특임 대사를 맡은 김진선 전 지사의 엄 후보 선거운동 지원을 문제 삼았다.

 

최 후보는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110명의 IOC 위원들을 만나러 다녀야 할 김 전 지사가 엄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유감"이라며 "이런 중차대한 순간에 그렇게 해도 되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하루 이자만 1억여 원씩 물고 있는 알펜시아 문제에 김 전 지사의 책임이 큰데 정작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은 이광재 전 지사"라며 "자비를 들여 두 차례나 중국을 방문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고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엄 후보는 "알펜시아 문제 해결을 위해 이 전 지사가 뛰는 것은 고맙지만 언론플레이만 하지 말고 성과를 실제로 보여줘야 한다"며 "알펜시아 문제는 동계올림픽 유치가 해결의 첩경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강원도 소외론] "다른 지역에 다 뺏겨"... 엄기영도 한나라당 비판

 

엄기영 후보의 '한나라당행'을 둘러싼 논쟁도 반복됐다. MBC 사장에서 물러난 후 예상을 깨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유에 대해 해명해 달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엄 후보는 "배신자, 변절자, 기회주의자 등 별 이야기를 다 들었는데 모두 민주당의 주장일 뿐"이라며 "민주당에 가면 옳고 한나라당에 가면 변절이냐, 강원도민의 이익을 위해 강력한 힘을 가진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이라고 답했다.

 

곧 바로 반박이 이어졌다. 최 후보는 미리 준비한 표를 꺼내들고는 "힘 있는 여당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강원도에 한 일을 적어 봤다"며 "5조 원짜리 원주 첨단의료복합산업단지를 대구에 뺏겼고, 동서고속화철도 예산 30억 원도 지난 해 예산 날치기 때 누락됐으며, 고성에 들어오기로 했던 국회연수원도 뺏기다시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요약하자면 강원도를 도와줘야 할 여당이 힘으로 다 뺏어 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엄기영 후보도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엄 후보는 "저도 분통이 터지고 화가 난다"며 "원주가 가장 우수한 점수를 받고도 빼앗기는 등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한나라당에 강하게 건의도 하고 필요하다면 비난도 해서 다시 빼앗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엄 후보는 이런 강원 소외 문제가 심판론으로 번지는 것에 대해서는 방어막을 쳤다. 그는 "지난 해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매섭게 심판을 받았고 이제 정신을 차리고 있다"며 "제가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해서 당당하게 할 일은 나서서 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척 원전] "입장 바꾼적 없어"-"표 때문에 좌회전 우회전 반복"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강원도지사 보궐 선거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삼척 원전 유치 문제에 대해서는 엄기영 후보의 '입장 바꾸기'도 도마에 올랐다. 최문순 후보는 "삼척 원전에 대한 엄 후보의 입장을 모르겠다"며 "원래 (원전에 대한) 철학은 뭐냐"고 물었다.

 

엄 후보도 적극적인 설명에 나섰다. 그는 "처음부터 도민의 안전과 생명이 담보되지 않으면 원전 유치는 안 된다는 일관된 주장을 주장해 왔다"며 "말바꾸기라고 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지금은 삼척 원전 반대가 분명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라며 "삼척 주민들이 오죽했으면 원전을 유치하려고 했겠느냐, 삼척 주민들의 의사를 들어볼 필요가 있지만 안전 문제가 확보되기 전까지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최 후보는 "엄 후보가 원전 반대 뜻을 밝힌 날 김황식 총리는 그대로 한다고 했다, 정부 여당내에서도 위 아래가 다르다"며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를 표 때문에 좌회전 우회전을 반복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최 후보는 원전 유치가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미리 준비한 통계자료를 제시하며 "원전이 들어선 영광군, 경주시, 울진군은 모두 원전 유치 이후 인구가 줄어들었고 지역 주민 고용도 없었다"며 "1인당 보상액도 3만 원 정도로 생기는 소득보다 발생하는 손해가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지역 발전] "수도권 규제완화 반대"... 두 후보의 맞장구

 

두 후보 모두 우선 순위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엄기영 후보는 "권역별 지역 특화산업 집중 육성 취약계층 사회적 기업 육성 등을 통해 3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일자리 걱정 없는 강원도를 만들겠다. 일자리 국가대표 도지사가 되겠다"고 밝혔다.

 

최 후보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큰 기업이 들어와야 한다"며 "가난한 국민들을 위해 정치적 소신을 버려가면서까지 정책을 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처럼 저도 무릎을 꿇어서라도 큰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냈다. 엄 후보는 "수도권 규제 완화로 강원도가 재도약할 기회를 상실할지 모른다"고 했고 최 후보도 텅 빈 원주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사진을 제시하며 "수도권 규제완화로 강원도에 오기로 했던 기업들이 다시 돌아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무상 급식은 엄 후보와 최 후보 모두 재임 기간 중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고교 평준화는 엄 후보가 반대, 최 후보는 찬성 의사를 밝혀 대조를 이뤘다.

 

[에필로그] 최대 승부처 될 TV 토론

 

치열했던 공방이 끝난 후 두 후보의 표정에는 안도감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엄기영 후보는 "시간이 부족해서 좀 힘들었지만 그런 대로 할 만했다"며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고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고 밝혔다. 그는 "도민들이 내 진정성을 이해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최문순 후보는 "선배와의 토론이라 불편한 점이 많았다"며 "엄 후보가 평소 성품에 비해서 공격의 강도가 높아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최 후보는 "다음 토론에서는 저도 공격의 강도를 높여야겠다"고 말했다.

 

이번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 TV 토론은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해 6·2 지방선거에서도 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넘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던 이광재 전 지사는 TV토론에서 승기를 잡아 역전승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TV토론 시청률은 최고 10%를 넘기기도 했다.

 

이날 첫 토론회는 GTB 강원민방과 강원도민일보가 공동 주최했다. 18일(강원일보, KBS춘천방송총국), 20일(강원일보, 춘천CBS, GBN·YBN·강릉헬로비전영동방송 등 도내 3개 케이블TV3사), 23일(춘천MBC)에 이어 25일(선관위 주관) 등 앞으로 4차례의 TV토론이 더 예정돼 있다.


태그:#엄기영, #최문순, #강원도지사, #이광재,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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