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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빌딩 5층 다목적홀.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정거래와 동반성장 협약식'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정 위원장의 표정은 다소 상기돼 있으면서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날 행사가 관심을 끈 이유는 정 위원장의 참석 때문이다. 정 위원장이 내놓은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싸고, 삼성그룹과 정 위원장 사이에는 그동안 불편한 기류가 역력했다. 지난달 11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에 대해, 정 위원장도 "삼성 때문에 이익공유제가 나온 것"이라고 반박해왔다.

 

한 달여 만에 정운찬과 이건희의 만남이 성사될지에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이날 행사장에 이 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룹의 2인자격인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등 그룹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건희 반박했던 정운찬 "초과이익공유제, 삼성이 앞장서 주길"

 

이날 행사장 주빈석에 자리잡은 정 위원장은 옆 자리에 앉은 김 부회장과 간간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이날 행사에서도 초과이익공유제를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그는 "대기업들이 가격 경쟁을 벌이면서도 협력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로부터 납품 단가인하) 압박에 무방비로 노출돼 왔다"면서 "오죽했으면 (대기업과의 협약을 두고) '을'이 죽는 '을사조약'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위원장은 이어 작년 상장법인들이 55조9000억 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올린 사실을 언급하면서, "대기업들이 상당한 이익을 올렸다면, 일정 부분은 협력업체의 성장 강화를 위해 비축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초과이익공유제는) 협력업체에 현금으로 나눠주라는 것이 아니다"면서 "기술개발이나 고용안정화 등 협력업체의 성장기반을 강화하는 데 기업이 자율적으로 사용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특히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이 회장의 이념 비판을 염두에 둔 듯 "동반성장을 대기업에 부과하는 부담으로 인식하거나, 심지어 일종의 포퓰리즘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같은 인식이 우리 사회의 어려움을 가중시킬까 걱정된다"면서 "진정한 동반성장으로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대기업의 변화와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 삼성이 앞장서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6100억 원 자금 지원과 특허 무료 사용 등 선물 보따리 푼 삼성

 

이날 행사에 나선 삼성 고위 인사들은 정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은 꺼렸다. 하지만 삼성 차원에서 협력회사와의 상생은 꾸준히 추진하되, 동반성장위원회의 가이드 라인에는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를 도입할 것이냐'는 질문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동반성장위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할 경우 따를 것이냐는 질문에는 일절 답변하지 않았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나도 동반성장위에 몸담고 있지만, 현재 위원회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면서 "위원회에서 나오는 내용을 봐야 한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건희 회장이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이미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은 상황에서, 이들 입장에서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우리 입장은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동반성장위의 초과이익공유제를 따르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대신 협력회사에 대한 지원을 보다 실질적이고 파격적으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은 이날 5200여 개 협력업체에 대한 6100억 원 규모의 자금 지원과 대금 지급 주기를 월 3회로 늘리는 것 등을 포함한 지원책을 내놨다.

 

게다가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이 가지고 있는 특허를 이들 업체들이 무료로 사용하는 방안도 내놨다. 이밖에 협력사들의 인사와 재무 교육 등 각종 경영 일반 과정을 지원하고, 삼성 임원에게 동반성장 추진 실적 평가시스템까지 도입해, 향후 인사에 반영하기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협약에는 1차뿐 아니라 2차 협력회사까지 모두 참여하고, 삼성이 특허를 무료로 공개하는 것 등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정부 주도를 떠나 민간 차원에서 충분히 동반성장이 가능한 모델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정운찬, #이건희, #김순택, #초과이익공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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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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