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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하는 일의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가 어르신들을 만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직업을 가지고 있다. 사회복지사, 그것도 주로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강의를 하고 있으니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하는 일을 소개하면 사람들이 묻거나 자기 생각을 털어놓곤 한다.

"어르신들 만나는 거 정말 좋아하나 보죠? 힘들지 않으세요? 참 좋은 일 하시네요. 난 어르신들 별론데 안 그런가 보네요. 솔직히 노인들 냄새나고 고집 세고, 가까이 가는 것도 어렵던데…. 다른 일 하고 싶지 않으세요?"

그런데 그들이 한 가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나는 자칭 '온실 사회복지사'라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 나는 20년 동안, 최소한의 먹을 것은 해결되고 건강 또한 어느 정도 괜찮아서 이왕이면 조금 더 보람 있고 의미 있고 재미있게 지내고 싶어하는 어르신들을 주로 만나 왔다.

그래서 병환 중이거나 홀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계신 분들과 함께 울고 웃는 동료 사회복지사들을 존경하면서 늘 미안하고 빚진 마음을 품고 있다. 아무튼 사회복지사들은 그렇다 치고, 여기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만나 속깊은 이야기를 듣게 된 사람이 있다.

열두 명의 홀몸 어르신들의 인생을 기록하다

책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표지
 책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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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오마이북 펴냄)의 저자 김혜원은 서울의 저 깊고 어두운 구석, 햇볕 한 줌 들지 않고 사람의 눈길 미처 가닿지 않는 곳에 엎드려 생의 마지막 언덕을 숨 가쁘게 넘고 있는 열두 명의 홀몸 어르신들의 인생을 어떤 꾸밈도 없이 보태고 더하는 것 없이 기록하고 있다.

글이 연재될 때부터 지켜보면서, 사회복지사이며 노년 관련 글쓰기를 계속해 온 내가 느꼈던 감정은 질투였을까, 부러움이었을까. 그러나 만일 내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면 결과에서는 상상치 못한 큰 차이가 났을 것이다.

그 까닭은 이 책이 어르신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록했다는 미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홀몸 어르신들의 처절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 나가는 과정에서 결코 섣부른 판단이나 평가를 하지 않으며, 저자 개인의 감정을 실어 불필요한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 박수를 보낸다.

전문가랍시고 붙이는 의견과 수사는 때로 무의미하며, 경험이 많다는 것을 전제하고 써내려간 글은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평범한 아줌마로 잔뼈가 굵은 데다가 이제는 시민기자로 다듬어진 의식과 글솜씨를 가진 김혜원 기자는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하는 데 최고의 적임자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못 먹고, 못 배우고, 결혼생활마저 편편치 않아 홀로 자식들 기르느라 또다시 못 먹고, 못 입고, 안 해 본 일 없이 살아온 할머니들. 역시 가난 때문에 공부도 못하고 온갖 일을 하며 최선을 다해 가정을 일구었지만, 빚보증으로 거리에 나앉았고 끝내 자식들과도 멀어지게 된 할아버지들.

이제 남은 것은 자식들의 외면, 몸을 갉아먹는 고통스러운 질병,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외로움, 홀로 죽음을 맞게 될 거라는 불안과 고독에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고 가슴이 먹먹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일 이분들의 힘겨웠던 삶과 아프고 외로운 일상이 TV에 소개되어 많은 이들의 눈앞에 펼쳐진다면 혹시 도움의 손길을 구하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글로 기록된 삶과 일상은 오히려 천근의 무게로 묵직하게 우리들 머릿속과 가슴 속에 남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 책이 이걸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저자인 김혜원 시민기자
 <나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저자인 김혜원 시민기자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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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 책이 이걸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거노인 열두 명의 인생을 듣다'라는 부제가 그대로 이어져 대한민국 독거노인의 인생을 담은 구술사 시리즈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당장 그분들을 돕는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것을 넘어, 우아하고 편안한 노년을 꿈꾸는 젊은이들과 중년 세대에게 삶의 감춰진 이면을 보여주고 나아가 삶의 엄혹함을 일깨워 주었으면 좋겠다.

그분들의 인생이 개인의 잘못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모두 시대와 역사 속의 존재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확인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위태로운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며 살아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배울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제 나는 이 책을 노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추천 도서 목록에 포함시킨다. 홀몸 어르신들의 삶을 정직하게 담아낸 책이며, 그 안에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부모를 생각하는 중년의 자녀가 있고, 그늘진 곳을 찾아 달려가는 사회복지사들이 있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그분들 곁을 지키는 자원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자리에 서 있는가… 스스로 자신에게도 묻고 또 묻는다.

☞ [클릭] <나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저자와의 대화 신청하기

덧붙이는 글 |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오마이북, 2011)> (글 김혜원 / 사진 권우성, 남소연, 유성호)



태그:#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김혜원, #독거노인, #홀몸노인,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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