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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경쟁 중심 개혁을 비판한 4월 9일자 주요 신문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경쟁 중심 개혁을 비판한 4월 9일자 주요 신문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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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카이스트(KAIST) 학생 4명이 연달아 자살하면서 그 불똥이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개혁 정책'으로 옮겨 붙었다. 서 총장도 뒤늦게 문제가 된 '차등 등록금제'를 없애기로 하고 학생 간담회를 여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경쟁 중심 주의'와 '소통 부재'가 낳은 부작용들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언론들도 성적이 낮으면 장학금을 줄이는 '차등 등록금제', 100% 영어 강의, 엄격한 교수 정년보장 심사 등 경쟁 중심의 '서남표식 개혁'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한겨레> <경향> 등 진보 언론뿐 아니라 <중앙> <매경> 등 보수 성향 매체들도 KAIST 비판에 가세했고 <중앙>은 한발 더 나아가 서 총장 '용퇴'까지 거론했다.  

<조선> <동아> '서남표식 개혁' 옹호 나서

그런 가운데 유독 <조선>과 <동아>의 논조가 눈길을 끈다. <동아>는 9일 사설 'KAIST 학생 자살과 '경쟁 탓' 여론몰이'에서 "학생들의 자살 원인을 서 총장의 '경쟁 중심 개혁'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합리적 분석이 아니라고 우리는 본다"면서 진보신당이나 조국 서울대 교수의 서 총장 사퇴 주장을 '과도한 비난'이라고 반박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KAIST에서는 2000년 이후 16명이 학생이 자살했는데 8건은 서 총장의 개혁 조치 전의 일"이고 "미국 영국 등 외국인 명문대에서도 자살하는 학생은 적지 않다"면서 서 총장 쪽 입장을 그대로 대변했다. 또 "학점이 나쁜 학생들에게만 등록금을 내게하는 제도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최고의 인재를 육성하려는 대학 개혁의 기조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은 역시 같은 날 사설 '카이스트 개혁, 따뜻한 마음과 어루만지는 손길 보태져야'에서 세계대학평가 순위 상승 등 서남표식 개혁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그렇다고 이 나라에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을 하나라도 만들어보겠다는 목표까지 떠내려가게 해서는 안된다"고 '서남표식 개혁' 지속에 무게를 실었다.

<조선> '카이스트 특집면'-<동아> '인촌상' 인연

이렇듯 <조선>과 <동아>의 '서남표 옹호'는 과거 KASIT나 서 총장과 맺은 각별한 인연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조선>은 서남표 총장이 논란 끝에 연임에 성공한 직후인 지난해 7월 23일자에 '글로벌 명문 카이스트'라는 8면짜리 특집면을 꾸몄다. '글로벌 명문' 시리즈는 대학 홍보성 기사와 해당 대학 광고를 묶어 신문윤리강령 위반으로 문제가 된 이른바 '스폰서 섹션'다. 카이스트를 시작으로 포스텍, 성균관대 등이 뒤를 이었고 광주과학기술원은 여기에 1억 원 광고를 집행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관련기사: '갤탭 드라마'와 '1억 스폰서 기사'가 만났을 때 ).

2010년 7월 23일자 조선일보에는 8면짜리 카이스트 특집면이 실렸다. 사진은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인터뷰 기사.
 2010년 7월 23일자 조선일보에는 8면짜리 카이스트 특집면이 실렸다. 사진은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인터뷰 기사.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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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집 기사에서 <조선>은 '서남표식 개혁'의 성과를 잔뜩 추켜세웠다.

"2006년 서남표 현 총장의 취임 이후 커다란 변혁의 물결에 올라탔다. 교수 정년보장(테뉴어) 심사를 강화해 4년 동안 148명의 카이스트 교수 중 24%가 탈락했다. 이는 '철밥통'으로 불렸던 전체 한국 대학교수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입학만 하면 모든 학생이 무상교육을 받았던 전통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 2007년부터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등록금의 일부나 전액을 부담하게 됐기 때문이다. 반드시 글로벌 대학으로 가야 한다는 목표하에 영어강의 전면 도입도 밀어붙였다.

개혁은 가시화된 수치로 나타났다. 지난 4년간 카이스트에는 140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이 모였다. 기부 건수는 2006년 1000여 건에서 지난해 3304건으로 세 배 이상 커졌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와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인 QS가 실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카이스트는 2006년 세계 198위였지만, 지난해에는 69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에서는 지난해 아시아 전체 7위, 국내 1위에 올랐다"

이번에 연이은 자살 사건을 계기로 폐지하기로 한 '차등적 등록금제'에 대해서도 "'장학금 차등지급제'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인데도 학생들이 공짜로 공부하는 대학이라고 생각하는 등 책임의식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개혁책"이라면서 "하지만 전체 장학금 액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동아> 역시 2008년 9월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의 호를 딴 '인촌상' 교육 부문 수상자로 서 총장을 뽑으면서 개인적 인연을 맺었다.

연임 반대 여론에도 "서남표 아니면 누가 개혁하나"

지난해 6월 서남표 총장 연임이 학내외에서 큰 반대 여론에 부딪혔을 때도 <조선>과 <동아>는 철저히 서 총장 편에 섰다.

<조선>은 지난해 6월 26일 ''KAIST 서남표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란 사설에서 "국민은 서 총장만큼 대학개혁 성과를 내놨던 총장을 떠올리기 힘들다"면서 "서 총장의 개혁이 결실을 못 거둔 채 중도하차하면 앞으로 또 언제 대학개혁을 실천하는 총장이 나올지 걱정"이라면서 총장 연임에 무게를 실었다.   

<동아> 역시 같은 날 사설 ''KAIST 개혁' 서 총장 쫓아내기의 추한 막후'에서 "지난날 외국인 총장을 몰아낸 일부 인사들이 이번에는 특정 학교 학맥의 총리, 교과부 장관까지 동원해 서 총장을 축출하려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면서 "4년 만에 대학경쟁력을 163계단이나 올려놓은 서 총장을 연임시키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총장을, 무엇을 보고 뽑겠다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서 총장은 무리한 경쟁 중심 개혁과 학내 구성원들과 소통 부재로 교수들뿐 아니라 KAIST 학부생과 대학원생도 절반 이상이 연임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그해 4월 KAIST신문사와 총학생회에서 진행한 총장 평가 설문조사에서 학부생 53.4%, 대학원생 49.5%가 서 총장 연임에 반대했고, 찬성은 각각 23.3%, 29.1%에 그쳤다. 반대 이유도 '서 총장의 정책을 지지 않아서'라는 의견(22-24%)보다 '학생들과의 소통 부족'(65-67%)을 꼽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중앙> '서남표의 힘' 추켜세울 땐 언제고

중앙일보 2008년 9월 29일자에 실린 2008년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를 보도한 ''서남표의 힘' KAIST 다시 1위'라는 기사에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개혁 성과를 추켜세웠다.
 중앙일보 2008년 9월 29일자에 실린 2008년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를 보도한 ''서남표의 힘' KAIST 다시 1위'라는 기사에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개혁 성과를 추켜세웠다.
ⓒ 중앙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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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중앙>은 지난해 6월 20일 '7월 13일 임기 끝나는 서남표, KAIST에 무슨 일이'이라는 기사에선 "서 총장에 대한 교수들의 반기가 개혁에 시달린 탓일 수도 있다"면서도 "그렇다 하더라도 학교의 주인이 돼야 할 교수와 학생들의 사기가 바닥이라면 학문적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면서 서 총장 연임에 부정적 관점을 보였다. 

최근 KAIST 사태에도 <중앙>은 가장 강경했다. 9일자 사설 'KAIST의 비극, 서남표식 개혁 재검토하라'에서 "자살 이유가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학교 교육환경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학점 미달자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부과한 것은 학생들의 공부를 장려하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재 소릴 듣던 학생들에게 낙오자라는 정신적 패배감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다"라면서 사실상 자살 원인을 '차등 등록금제'탓으로 몰아갔다. 

한발 더 나아가 "징벌적 등록금제를 폐지하는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면서 "서 총장은 구성원의 신임을 다시 묻고 교육시스템 개선에 장애가 된다면 용퇴하는 게 옳다"며 서 총장 거취 문제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중앙> 역시 2008년 자사 대학 평가에서 KAIST가 1위를 차지하자 "'서남표의 힘' KAIST 다시 1위"(2008년 9월 29일)라며 서남표식 개혁을 추켜세웠던 전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서남표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다를지 몰라도 <중앙>과 <조선>은 '대학 줄세우기'란 비판을 받아온 '대학평가'를 통해 서남표식 개혁으로 상징되는 '명문대 만들기'를 부추긴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서남표식 개혁' 만든 건 우리 사회 '경쟁 주의'

반면 <경향>과 <한겨레>는 이번 자살 사건을 계기로 서남표식 '무한 경쟁 교육'과 우리 사회의 경쟁주의를 되돌아보자면서 비교적 차분하게 접근했다.

<한겨레>는 9일 사설 '서남표식 경쟁주의'의 비극'에서 "네 학생의 자살 원인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바탕에 '서남표식 개혁으로 통칭되는 목표 지상주의와 과도한 효율 경쟁주의가 깔려있다"면서 "카이스트는 과도한 경쟁 시스템을 전면 수정하고, 자살 방지 카운슬러 제도 등을 조속히 확대해 학생들을 보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무엇보다 서남표 총장은 이 비극적 사태를 불러온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서 총장의 책임을 추궁하는 한편 "이런 경쟁주의는 대학은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다"면서 "카이스트 비극의 책임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자유로울 수 없고 함께 변화를 모색해야만 하는 이유"라며 사회적 책임도 잊지 않았다.

<경향> 역시 이날 '길 잃은 카이스트, 어디로 가야하나'에서 "카이스트는 전국의 과학영재들을 모아 창의성과 잠재력을 키워주기는커녕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학점 경쟁에 몰아넣어 닦달하는 것이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면 달려왔다"면서 "학생을 불행하게 하는 명문대는 없다"라고 질책했다.

지난해 카이스트를 자퇴했다고 밝힌 누리꾼 서아무개씨가 8일 밤 다음 아고라에 남긴 글은 명문대를 향한 우리 사회 경쟁주의 교육의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징벌적 등록금제의 실제적인 효과는 학생들을 학점에 매달리게 하고, 배우는 것이 많은 과목보다 학점을 따기 쉬운 과목을 신청하게 하고,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는 동아리 활동을 줄이게 하고, 학과 이외에 스스로 탐구하는 시간을 없애고, 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을 더욱 외톨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점을 따게 하는 것입니다."


태그:#카이스트, #서남표, #조선일보, #대학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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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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