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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매화의 모든 것>(안완식 저, 눌와 펴냄)은 우리 토종 종자 지킴이 안완식 박사가 우리나라 고매가 있는 곳들을 답사, 그 중 보호와 기록의 필요성이 유독 높은 매화 250여 점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그동안 만났던 우리 매화는 대략 350여 점이라고 한다.

 

책은 크게 두 개의 단원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앞장에서는 매화는 어떤 식물 혹은 어떤 꽃인가, 식물학적 특징은? 원산지는 어디이며 우리에게는 어떻게 전래되었는가, 우리 조상들에게 매화는 어떤 존재였는가, 매실의 성분과 이용방법 등 매화라는 식물에 대해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과 정보를 비롯하여 우리 삶 속에 녹아 있는 매화에 대해 들려준다.

 

뒷장에서는 우리 고매 250여 점을 꽃이 가장 먼저 피는 제주의 매화부터 어지간한 봄꽃들이 이미 꽃망울을 터트린 4월 상순에야 꽃망울을 터트리는 서울의 매화까지, 각각의 매화들이 지니고 있는 생태적 특징과 유래 등을 들려준다. 나무의 전체적인 모습과 꽃, 줄기, 잎, 매실, 핵 등의 모습을 담은 사진 1300여 컷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는지라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말 마냥 시간을 잊은 채 탐매여행에 흠뻑 빠져 들었다.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쌍계사 옆에 위치한 운림산방에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가 선물한 일지매가 있다.…일지매는 운림산방을 건립한 1856년에 소치가 손수 심어서 가꾸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일지매가 하마터면 일본으로 강제 이식될 뻔 한 일이 있었다. 허련의 타계 이후 1914년까지 허련의 제자 임삼현이 운림산방을 관리해 오다가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 갔는데, 일제강점기 말에 엔토라는 일본 사람이 일지매를 5원에 사서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는 임삼현의 아들 임순재는 그것의 배인 10원을 주고 자신의 집 정원으로 가져왔다. 그 뒤에도 일본인 경찰서장이 찾아와 일지매를 달라며 갖은 협박을 다했지만 끝까지 지켜냈다.…안타깝게도 1995년, 수령 187년으로 죽고 말았다. 등걸만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임순재의 아들 임태영이 일지매의 후대목 네그루 중에서 30여 년생 한 그루를 2005년 가을 운림산방에 복원하고 또 한 그루는 2008년 봄 본래의 고향으로 보냈다. - <우리 매화의 모든 것> 중에서

 

운림산방은 조선후기 소치 허련(1809~1892)이 만년에 기거하며 그림을 그리던 화실의 당호이다. 허련은 글·그림·글씨를 모두 잘해 삼절(三絶)로 불렸는데, 이런 그를 스승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압록강 동쪽에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며 칭찬했다고 한다.

 

 

기녀 두향에게 받은 매화 정성들여 가꾼 퇴계 이황

 

(일지매는) 겹으로 피는 백매이며 꽃잎이 가지런하고 적갈색 꽃받침에 의하여 꽃의 중심부가 연한 붉은 색으로 보인다. 화사는 길고 노란 꽃밥이 많은 편이다. 어린잎은 적자색이며 시일이 지나면 진한 녹색이 된다. 잎자루는 연한 적갈색을 띠기도 하며 특히 잎자루가 붙어있는 기부로 갈수록 녹색으로 변한다. 매실은 꽃 하나에 두 개가 붙어서 달리는 원앙매이다. 매실의 색이 유달리 희고 과피가 곱다.-<우리 매화의 모든 것>에서

 

소개하고 있는 매화 250여 점마다 모두 이처럼 그에 얽힌 유래와 특징을 낱낱이 설명하고 있는지라 매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을 읽는 독자나 매실 농사 등과 같은 목적으로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나 썩 유용한 자료가 될 것 같다.

 

오늘날의 일지매는 허련이 심은 그 나무는 아니지만, 후대목을 복원한 것이니 모양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게다가 이와 같은 임삼현 일가 삼대의 매화와 우리 것을 어떻게든 지키고 잇게 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더해져 있어서 더욱 각별한 매화가 되었다. 운림산방에는 이와 같은 각별한 사연을 지닌 일지매 외에 운림소매, 소치매, 운림매, 운림원앙매 등 여러 그루의 매화가 자란다. 일지매는 운림산방 소치기념관 앞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도 유명하다. 퇴계는 단양군수로 10개월간 재직하는 중에 만난 기녀 두향이 헤어지며 정표로 선물한 매화를 살아생전 정성들여 가꾸었으며, 매화에 대한 많은 시를 남겼다. 또한 평소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매화에게 묻고, 이질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매화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저 매화나무에 물을 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타계했을 정도로 그의 매화사랑은 남달랐다고 한다.

 

퇴계의 이와 같은 유독한 매화 사랑을 두향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혹은 그리움, 즉 로맨스 차원으로만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두향에 대한 사랑도 사랑이지만 추위를 이기고 고운 꽃을 피우는 매화의 성품이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의 기품이나 절조와 비슷한지라 더더욱 매화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책을 통해 매화에 깃들인 이와 같은 여러 사연들을 접하며 들었던 생각이다.

 

저자 역시 도산서원에서 자라고 있는 '도산매'를 통해 퇴계의 매화사랑에 대해 다룬다. 현재의 도산매는 후학들이 심은 것이다. 퇴계가 그토록 사랑했던 두향의 매화는 퇴계가 세상을 떠난 후 고사했기 때문이다. 식물도 일본의 수탈과 횡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훗날 일본 지바현 소재 한 매화 공원에서 도산매가 발견되었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셋째 아들이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일본 미야기현 마쓰시마 즈이간지 본당 앞에는 홍매화 한 그루와 백매화 한 그루가 용처럼 누워 있다. 길게 누워서 자라는 모습이 마치 용이 엎드려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와룡매라고도 부른다. 해마다 4월 중순쯤 꽃망울을 터트리며 즈이간지의 명물이자 현이 지정한 천연기념물로 사랑받고 있다. 이 나무는 원래 우리 땅에서 자랐던 매화이다. 창덕궁 선정전 앞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 중인 1593년 마쓰시마 영주였던 다테 마사무네가 무단으로 뽑아간 것이라고 한다.

 

미야기현에는 즈이간지의 홍매와 백매 외에도 센다이 시내에 있는 미야기 형무소와 니시 공원에도 백매 한 그루씩 있어 총 네 그루의 와룡매가 있다. 미야기 형무소의 와룡매는 고사하였으나 지금은 어미나무의 가지를 접목한 2대 후계목인 홑꽃의 백매가 나무 높이 9m, 수관폭 20m, 근원경 170cm 정도로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수령은 270여 년 생으로 '조선매'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와룡매 네 그루 모두 조선에서 가져간 거라고 한다. - <우리 매화의 모든 것> 중에서

 

책을 읽으며 문득 임진왜란 때 도난당해 일본에서 귀한 대접 받고 있다는 이 매화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일본 대지진의 피해로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여하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즈이간지의 조선 매화는 1991년에 최초로 귀환, 현재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에 건강하게 자라며 해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니 말이다.

 

 

학교 정문에서부터 130m 매화길 펼쳐진 '김해건설공업고'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옆 식물원 분수대 앞의 15년생(글 쓴 시점) 와룡홍매와 와룡백매도 즈이간지에서 귀환된 우리 매화들이다. 일본의 1999년 즈이간지 사찰측에서 일제의 한국침탈을 참회하는 의미로 와룡매 가지를 각각 접목하여 얻은 자목을 기증한 것들이라고 한다.

 

경삼남도 김해시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는 원래 1927년 김해농업고등학교로 출발하였고 1978년 현재의 학교가 들어섰는데, 농업고등학교 개교 당시 한 일본인 교사가 의욕적으로 매화를 심고 가꾼 것이 계기가 되어 매화나무가 많아졌다고 한다.  몇 해 전에 그 일본인 교사가 90대 노인이 되어 이곳에 찾아와 자신이 심었던 고매들을 둘러보고 갔다고 한다.  교문을 들어서면 줄지어 서 있는 고매들 중에서 와룡홍매를 '김해와룡홍매'라 부른다.

 

아름다운 매화가 많아 해마다 이른 봄에 매화 축제가 열리고 탐매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는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의 매화 이야기도 인상 깊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서 130m에 이르는 진입로 양쪽에 30~100여 년의 고매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특히 와룡매가 많다니 나무 혹은 매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곳만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 같다.

 

솔직히 매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지라 해마다 봄이련가 싶게 들려주는 혹자들의 매화 소식에 '왜 저토록 매화에 빠져있나?' 의아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자 마음먹은 것은 저자의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우리 종자>와 <내손으로 받는 우리 종자>란 책을 통해 인식을 거의 하지 못한 우리 토종 종자에 관심을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내 가족의 살이 되었을, 내 생명의 근원에 너무도 소홀했구나하는 자책과 함께.

 

책을 통해 만나는 매화는 실로 놀라웠다.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매화는 말하자면 한 마리 새의 깃털 한두 개에 불과한 정도였구나 싶을 정도로. 그 많은 매화들이 어떻게 다른가. 꽃의 색깔이 같으면 꽃모양이 다르고, 꽃 색깔과 모양이 같으면 꽃받침이 다르고, 이들이 모두 같으면 줄기나 잎, 열매가 다르고… 책에서 다루고 있는 250여 점의 매화가, 얼핏 같아 보였던 매화가 제각각, 전혀 같은 꽃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 없고 쌍둥이라고 해도 어딘가 분명 다른 것처럼 말이다.

 

안타깝고 분한 마음에 일본이 가져간 우리 매화에 치우쳐 책을 소개한 것 같아 한편 아쉽다. 덧붙이자면, 이들 매화 이야기는 책의 아주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 책에는 민가나 논둑의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매화부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 오죽헌의 매화처럼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심고 사랑한 매화까지 우리 매화 250여 점이 그윽한 향기로 탐매여행을 유혹하고 있으니 함께 취해보시는 것은 어떠실지.

 

 [전화 인터뷰] "매화 한 점 두고 셀 수 없이 많이 찾아가"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했다. 방에 놓아둔 물이 어는 엄동설한에 나는 잔뜩 웅크려 새우잠을 자면서도 화분은 담요를 덮어 월동을 시키곤 했다. 꽃 중에서도 특히 매화를 사랑하게 된 것은 1983년 일본의 쓰쿠바 농업생물자원연구소에 3개월간 유전자원 연수를 가서부터…

 

귀국 후 남의 나라 것보다는 우리나라 토종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는 다른 지방으로 출장을 갈 때마다, 그리고 주말을 이용하여 우리 매화를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도 500년 안팎의 고매가 있으며, 많은 귀중한 고목들이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무들이 고사하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토종 매화와 함께 숨겨진 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동안 보아 왔던 많은 토종 매화들은 대부분 접목이 아니라 씨를 심어서 번식한 실생이어서 같은 모본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우리 매화의 모든 것> 머리글에서

 

아래는 저자 안완식 박사와 한 전화 인터뷰 내용이다.

 

- 우리 매화 350여 점을 답사, 수집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의 전체 매화 중 어느 정도를 답사, 수집했다고 생각하시는지?

"책이 출간되고 어떤 분이 자기네 집 매화도 오래되었다는 연락을 해왔다. 우리 매화를 최대한 담고자 했으나 미흡한 부분도 어찌할 수 없다. 그래도 90% 이상은 답사, 수집했다고 자신하고 있다. 분량 때문에 350여 점을 모두 다루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100년 안팎의 고매들을 위주로 우선 다뤘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 꽃부터 열매까지, 매화 한 그루 마다 다양한 사진과 이야길 들려주고 있다. 매화마다 한두 번 찾아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을 것 같다. 대략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가?

"지방과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매화는 이른 봄에 꽃이 피고, 대략 6월쯤에 열매가 열린다. 매화 모두 꽃이 피지 않았을 때와 꽃이 피었을 때, 잎이 무성하고 열매가 열렸을 때, 열매가 익었을 때를 사진으로 기록했으니 매화 한 점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자 대략 몇 번 찾았겠는가? 쉽게 셀 수 없다. 세월로 따지자면 30년쯤 되었다. "매화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어떻게 이처럼 오랫동안 매화에 빠질 수 있는가?" 라고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매화를 단지 매화로만 보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것, 우리 토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책을 통해 만난 서울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부근에 있다는 매화가 남다르다. 찾아가 보고 싶다.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가져간 미야기현의 와룡매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원래 3월에 일본에 갈 예정이었는데 지진때문에 어긋났다. 미야기현의 매화들의 생사여부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고 있지만 사라졌을 가능성이 많아 아쉽다. 올해는 예년보다 매화가 10일 가량 늦게 피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부근 매화는 아마도 다음주 쯤에는 꽃망울을 터트리지 않을까 싶다."

 

1942년에 출생,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 관련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농촌진흥청 연구원으로서 밀 육종과 식물유전자원 연구 등을 했다. 식물유전자원 국제회의 한국대표로 여러 차례 참석 등 관련 활동과 연구를 계속해오다 2002년에 정년퇴직, 현재는 한국토종연구회 고문과 우리 토종 종자 지킴이 모임인 씨드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위 사진은 저자가 2008년 5월 16일 씨드림(cafe.daum.net/seedream)회원들과 청산도를 찾아 우리 토종 종자를 채집, 농사에 관해 채록하고 있는 모습 중 하나다.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종자>(1999), <내 손으로 받는 우리 종자>(2007),<한국토종작물자원도감>(2009)을 썼다.

덧붙이는 글 | <우리 매화의 모든 것>|안완식 글|눌와|2011.3.14|값:2만5000원


우리 매화의 모든 것

안완식 지음, 눌와(2011)


태그:#매화, #탐매, #안완식, #씨드림, #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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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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