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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은 식목일이었다. 아마 모르고 지나간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역시 공휴일이 아니면 많이 잊고 지나가게 되는 것 같다.

 

몇 년 전 식목일이 공휴일이었을 적에 식목일 아침, 텔레비전에서 유명 인사들이 야산에 올라 묘목을 심는 모습을 곧잘 봤었던 것 같다. 묘목심기 행사를 마친 후에는 '나무를 많이 심고 자연을 보호하자'란 구호가 어김없이 뒤를 이었던 것 같다.

 

올해도 대통령이 식목일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행사를 한곳이 4대강 공사현장 한가운데인 남한강의 여주였다고 하고, 그 자리에는 아이들이 있었으며, 아이들에게 녹색성장을 다짐했다고 한다. 4대강 사업, 이명박, 나무, 아이들, 그리고 녹색성장… 이런 것들이 이번 식목일을 특별한 식목일로 만들었다.

 

대통령이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벌인 식목일 퍼포먼스 주제는 '4대강 사업'

 

권력자들이 아이들을 대동하고 매스컴에 나오는 모습은 우리가 곧잘 보는 모습이다. 권력자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야욕적이고 정략적인 모습을 중화시키는 데는 아이들만 한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나와서 4대강 사업 현장에서 한 식목일 퍼포먼스의 주제는 역시 4대강 사업이었다. 옛날 여주 남한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공사로 조경화가 된 남한강을 보고 "정비가 싹 돼서 이 지역이 천지개벽 한 것 같다"며 4대강공사의 찬사를 늘어놓은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천지를 개벽할 수 있는 능력자임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4대강 공사로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잃은 강의 생명들과 생존권을 잃은 강변의 농민들에게는 천지가 개벽 될 정도의 절망이 지나간 뒤였음을 알고 한 말이었을까? 녹색의 옷을 입고 회색의 파괴를 일삼는 4대강 공사현장에서 아이들의 순수성을 배경삼아 탐욕의 시대를 말하는 모습에서 4대강 사업의 비극은 이미 절정에 달해 있는 것이다. 탐욕에 대해 순수하고 당당한 이명박 대통령의 '천진난만함'이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알고 있을까

 

여주 남한강변에서 이 대통령과 같이 식목일 행사를 함께하고 있었던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이 있던 그곳에서 수달, 표범장지뱀, 흰목 물떼새, 단양쑥부쟁이 등 수많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4대강 공사로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그 아이들의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의 아이들을 보낸 그곳이 4대강 공사로 인한 안전사고, 보트전복 사고 등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며, 그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역시 같은 4대강 공사현장인 팔당이란 곳에서는 4대강 공사로 농지를 빼앗긴 농민들이 아직도 처절한 생존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실수라고 한다지만 알고 그랬다면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제일 힘들고, 함부로 가르치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4대강 공사 현장이 아이들에게 보여줄 정도로 의미 있고 자랑스러운 곳이라면, 왜 4대강 공사가 거의 완성되어가는, 공사 후반기인 지금에야 보여줬을까? 한창 굴착기 삽날로 산을 부수고 강을 가르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을 때에는 환경활동가들은 물론이고 지역주민들의 출입도 통제하면서 공사모습을 남이 알까 무서워, 철저히 숨겼던 그곳을 왜 지금에 와서 보여 주냐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찾아간 여주 남한강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안다. 지금의 남한강의 모습과 자신들이 2년 전 물장구 치며 놀던 여강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아이의 추억을 빼앗은 탐욕이 그 사실을 모르는 또 다른 아이들을 탐욕의 공모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탐욕에 대해 순수해지고 당당해지라고 말하는 이 괴물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몇 년 만에 내게 다가온 식목일은 옛날 초록의 식목일이 아닌 회색의 식목일로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 김종겸 시민기자는 생태지평 연구소 연구원입니다.


태그:#4대강살리기, #이명박, #여주, #남한강, #4대강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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