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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낮 12시에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아주라 콘서트'에서 가수 박준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아주라 콘서트'에서 열창하는 가수 박준씨 4월 4일 낮 12시에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아주라 콘서트'에서 가수 박준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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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니라고 / 마음만은 있었다고 /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쁘다고 / 말은 너무 쉬워 / 뒤돌아서 잊으면 그만이야 / 하는 세상, 아픈 나라에 우린 살고 있죠 / 앞만 보면 안 보이잖아 / 너와 날 필요로 하는 사람 / 우리 가던 길 잠시 서서 옆을 쳐다봐"

노래를 듣고 있던, 유니폼을 입은 한 중년 여성이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는 씨익 웃으며 옆에 있던 일행에게 "가사가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종이컵에 담긴 둥글레차 한 잔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들은 4일 오후, 덕수궁 돌담길 앞 벤치에 앉아 '정동길 시민과 함께 하는 덕수궁 돌담길 아주라 콘서트 2011'(이하 '아주라 콘서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 이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4일 낮 12시,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돌담길에서 1시간 동안 열린 '아주라 콘서트'는 커피와 둥글레차를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며 진행됐다. 따뜻한 찻잔을 받아든 시민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받은 전단지를 살펴보거나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며 콘서트를 관람했다.

노동건강연대·노동환경건강연구소·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가 공동주관한 '아주라 콘서트'는 "아이에게 주라"는 부산 사투리인 '아주라'에서 이름을 따 왔다.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자는 뜻이다. 지난해 29세의 한 노동자가 용광로에서 빠져 사망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이 콘서트는 이번에 2회째를 맞았다. 

콘서트 사회를 맡은 이현정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이번 콘서트는 돌아오는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에 따르면, 2010년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총 2089명(정부 공식 통계)으로, 하루에 6명 꼴이다. 이외에도 작년 한 해에만 총 9만8620명이 산업재해를 겪었는데, 이는 하루에 270명이 작업장에서 다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 백혈병 노동자 유족·한국 피자헛 노조위원장 발언

첫 무대를 연 것은 가수 지민주씨였다. 현재 임신 7개월째인 지씨는 "태어날 아이에게는 건강한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몫이라 생각한다"며 '아침이슬'과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를 열창했다. 흥겨운 리듬에 자리에 앉은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는 시민들도 있었고, 미소를 짓는 시민도 있었다.

이어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2005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 황민웅씨의 부인 정애정(35)씨가 시민들 앞에 섰다. 정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처음에는 (산재 인정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너무 벽이 높았다, 그게 현실이더라"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 정씨는 "삼성이라는 환상 아래 너무 묻히는 게 많다, 현재 130여 명이 (피해자인 것으로) 집계되는데 언론에도 안 나오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도 없다"며 "노조도 허락하지 않는 삼성이 얼마나 노동자를 억압하는지 (시민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전했다.

4월 4일 낮 12시에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아주라 콘서트'에서 시민들이 주최측이 나누어주는 차를 받아들고 있다.
▲ 차를 받아드는 시민 4월 4일 낮 12시에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아주라 콘서트'에서 시민들이 주최측이 나누어주는 차를 받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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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발언을 이어받은 것은 가수 박준씨였다. 무대에 오른 박씨는 첫 곡을 끝낸 후 시민들을 향해 "나누어 드린 프린트를 꼭 짬내서 읽어 주시고, 마음으로라도 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연이어 '일어나'와 '사노라면'을 불렀다. 박씨는 무대 후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삼성 반도체(관련 피해자)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며 "일반 시민과의 소통으로 함께 공감해 좋다"라고 웃음지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피자가 담긴 피자헛 상자 두 개를 들어보였다. 사회자 이씨는 "30분 내로 피자 배달을 하려던 배달노동자의 사망사건이 있었다"며 "16분에 (주문) 전화를 했는데 45분에 도착했다. 아직도 (30분 내 배달 방침이) 여전하다, 씁쓸하다"며 김용원 한국 피자헛 노조위원장을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 피자헛의 경우 고객 평가에서 '30분 내 배달'항목이 사라졌을 뿐, 아직도 주문을 하면 콜센터에서는 30분 내로 배달하겠다고 (고객에게) 이야기한다"고 실상을 전했다. 대책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는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첫째로는 시민들이 생명 보호의 차원에서 '빨리빨리' 대신 조금만 느긋하게 기다려 주셨으면 하고, 둘째로는 현재 적정 인원을 확보하지 않은 채 운영하고 있는 기업에서는 최대한 인력을 확보해 고객에게 따뜻한 피자를 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셋째 정부에서는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노동자의 사망을 단순 교통사고 대신 산재에 의한 사망으로 처리해야 한다."

"앞으로도 시민들과 만나는 자리 만들 것"

4월 4일 낮 12시에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아주라 콘서트'에서 시민들이 벤치에 앉아 콘서트를 관람하고 있다.
▲ 콘서트를 관람하는 시민들 4월 4일 낮 12시에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린 '아주라 콘서트'에서 시민들이 벤치에 앉아 콘서트를 관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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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이날 콘서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의회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한다는 한 여성은 "가슴 아픈 일이라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분위기도 좋고 너무 즐겁다"며 "똑똑한 사람들의 편만 들지 말고 약한 사람의 편도 들어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콘서트의 취지에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콘서트 중간에 퀴즈를 맞춰 상품을 받은 남선우(58)씨 역시 "딸을 만나러 백화점에 가던 길에 노래가 좋아서 보게 되었다"며 "자식들도 일하니 (산재 관련) 뉴스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주최측도 시민들의 호응에 "많은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한 켠에서 차를 나누어주던 양삼봉(45)씨는 "시민들이 많이 모여 기분이 좋다며 "(시민들이) 차를 줄 서서 받았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회자였던 이현정씨는 "작년(1회 콘서트)에도 반응이 좋았는데 시작이 좋다"면서 "무거운 주제지만 앞으로도 시민들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며 흡족해했다.

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역시 "콘서트를 보고 돌아간 시민들이 자신들도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는지, 만약 아픈 곳이 있다면 치료받고 다시 일자리로 복귀할 수 있을지, 찬찬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아주라 콘서트'는 다가오는 7월과 10월에 각각 '건설노동자의 여름'과 '금융·서비스노동자의 가을'이라는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태그:#아주라 콘서트,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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