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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아내가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더니 저에게 특별임무를 부여합니다. 시에서 운영하는 일명 '품앗이' 모임 첫날인데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려야 한답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기회라며 저를 은근히 띄웁니다. 기분은 좋은데 처음 만나는 자리에 그것도 아줌마들만 온다니 왠지 어색합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결국, 아내가 태운 비행기에 날아보기로 했습니다.

 

모임 장소는 여수시 3청사에 있는 '장난감 나라'입니다. 아이들과 항상 붙어 있어야 하는 아줌마들이 맞춤으로 찾아낸 놀이터입니다. 그나마 아이들을 안전하게 떼 놓을 수 있는 곳입니다.


통합 여수시는 구 여천군, 여천시, 여수시가 합해져 청사가 3곳이나 되는데 그 중 돌산에 위치한 3청사에 '장난감 나라'가 있습니다. 장난감을 공짜로 실컷 가지고 놀 수 있고 연회비 만 원을 내고 가입하면 대여도 공짜랍니다. 이런 알토란같은 장소를 어찌 알았을까요?


쭈뼛쭈뼛한 시간 다듬을 수 있는 소재는 단연 아이들

 

아침을 챙겨 먹기 바쁘게 3청사로 향합니다. 들뜬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빨리 가자고 재촉합니다. 장난감 나라는 말 그대로 장난감이 지천입니다. 사나운 사자도 그곳에선 아이들이 타고 놀 우스운 장난감으로 변합니다.


또, 놀이기구 중에는 오래된 군 홍보영화에서 봤던 줄 타고 가다 강물에 빠지는 기구를 본 뜬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놀이기구입니다. 그곳에선 세상 모든 위험이 장난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에 바쁜데 옆 자리 아줌마들은 첫 만남에 진지합니다. 앞으로 모임을 어떻게 운영할지 많은 말이 오갑니다. 그 모습을 보니, '어떤 소재가 만난 지 채 10분도 안 된 낯선 자리에서 마음속 이야기하게 만들까?'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사람은 누구나 첫 만남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데 그 쭈뼛쭈뼛한 시간을 다듬을 수 있는 소재는 단연 애들일 겁니다. 특히, 또래 아이를 품은 아줌마들이라면 더 말할 필요 없겠지요. 옆자리 아줌마들의 쉴 새 없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 자라는 과정이 공통의 소재가 돼 서로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제가 손 댄 아이 머리, 잘 부탁합니다"

길고 진지했던 대화를 마치고 아이들을 챙겨 점심을 먹어야 합니다. 마땅한 장소를 찾기 위해 여러 의견을 내놓는데 결정된 장소가 특별합니다. 시청 주차장이 당첨됐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재밌습니다.


"시청 주차장에서 밥 먹는 사람은 우리가 처음이지 않을까요? 화장실도 가깝고 주차장엔 차도 없고 아이들 공차기도 좋겠네요."


시청 앞 주차장에 자리를 폈습니다. 옆에는 멋있는 조각 작품이 서있고 잔디는 봄 날씨를 확인시키려는 듯 파란 싹을 보입니다. 아름다운 야외 정원에서 폼 나는 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덤으로 넓은 주차장은 아이들 축구장으로 변했습니다.

 


자리를 편 아줌마 4명은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느긋한 점심을 즐깁니다. 집에서 손수 장만한 소박한 도시락을 꺼내 함께 먹으며 품앗이 하는 또 다른 맛을 느낍니다.


아내가 옆에서 정신없이 사진 찍기 바쁜 저에게 밥 한술을 권합니다. 묵묵히 숟가락을 움직이고 있는데 아내 옆자리에 있던 성환 엄마가 던진 말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이 모임에 내놓을 수 있는 게 미용기술 뿐인데……. 괜찮을까요?"


순간 아내와 저는 이구동성으로 외칩니다.


"최고의 기술입니다. 딱 좋아요."


그리고 아내가 재빨리 놓치지 않고 덧붙입니다.


"우리 애들 머리 좀 보세요. 제가 손을 좀 댔는데 엉망이네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옆자리에서 조용히 밥 먹던 또 다른 엄마도 요즘 애들 이발비가 상상초월이라며, 좋은 기술이라고 동의합니다. 이제 모임에 미용 기술자가 있으니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열심히 사진 찍던 저도 은근히 이 모임이 잘 되길 바랍니다.

 

난리 통에 배운 지혜,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모여 살아라"


그렇게 맛난 점심을 먹고 아이들 노는 것을 좀 더 지켜보다 품앗이 모임은 끝났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함께 모여 자신의 능력을 나누는 아줌마들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그리고 전쟁 통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늙으신 어머니 말씀이 떠오릅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함께 모여 살아야 한다. 이웃을 잘 챙겨야 너도 어려울 때 도움 받는다."


치솟는 물가가 삶을 조여 옵니다. 아이들 노는 데도 돈이 많이 드는 시절입니다. 장난감 나라에서 공짜로 놀이도 즐기고 덤으로 아이들 머리도 맡길 수 있는 좋은 이웃을 만났습니다. 이 모두가 함께하니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모임 활동을 열심히 찍는 것으로 품을 보태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복지방송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품앗이, #여수시 3청사, #장난감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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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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