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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를 사용했던 거주자는 이사시에 가스밸브 점검을 받아야 한다.
 도시가스를 사용했던 거주자는 이사시에 가스밸브 점검을 받아야 한다.
ⓒ 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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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갈 때 도시가스 철거비 내지 마세요!"

서울시와 경기도는 올해 1월과 3월부터 각각 도시가스 철거비를 '폐지'했다. 지금까지 이사 갈 때마다 가스레인지를 떼어내면서 1만 원 정도를 따로 냈던 불편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돈이 불특정 다수의 가스 요금에 전가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역 도시가스업체에서도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연소기 철거에 따른 출장비, 시공비 등 서비스 비용을 일체 무상 제공한다"고만 홍보할 뿐 요금 반영 사실은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가스 철거비 폐지는 '조삼모사'... 공급 비용에 반영

지식경제부(지경부)는 지난 2009년 9월 전입시 연결 비용은 후불제로 하고 전출시 철거 비용은 별도로 받지 않는 대신 공급 비용에 반영하는 '도시가스 연결·철거 서비스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그동안 도시가스 연결-철거 비용을 둘러싼 시공업자와 소비자간의 크고 작은 마찰을 없애자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그해 12월 대구광역시를 시작으로 대부분 지자체들이 지난해부터 앞 다퉈 '철거비'를 없앴다. 그런데 정작 전출입 수요가 몰린 수도권은 계속 버티다 인천시는 지난해 9월부터, 서울시와 경기도는 올해 들어서야 철거비를 '무료화'했다. 

서울시와 경기도가 이렇게까지 시행을 미룬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말이 '철거비 폐지'지 그 비용이 상당 부분 도시가스 공급 비용에 반영되면서 '수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 때문이다.

당시 지경부는 '도시가스 공급비용 산정기준'을 바꿔 시도지사가 도시가스 철거에 따른 적정 소요비용을 공급비용에 반영하도록 했다. 시도지사는 매년 7월에 맞춰 공급비용을 정하는데 당장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공요금 인상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경부는 수도권 평균 철거 비용을 1만 원 정도로 보고 6000원 정도를 공급 비용에 반영할 경우 가구당 연간 509원(월평균 사용량 80㎥ 기준) 정도 인상 요인이 발생할 걸로 봤다. 실제 철거 비용을 6000(빌트인 세대)~7000원(일반 세대)으로 책정한 대구시의 경우 한 달 0.85원/㎥ 인상 요인이 발생했고 다른 지자체도 월 1원/㎥ 정도였다. 지경부 기준대로 매달 도시가스를 80㎥씩 쓰는 세대라면 연간 960원 정도를 추가 부담하는 셈이다.

최근 지어진 아파트나 오피스텔, 원룸 등에선 가스레인지가 '빌트 인' 방식이어서 별도 철거작업을 필요 없다. 하지만 도시가스업체에선 전출시에 안전 점검을 받도록 하고 있다.
 최근 지어진 아파트나 오피스텔, 원룸 등에선 가스레인지가 '빌트 인' 방식이어서 별도 철거작업을 필요 없다. 하지만 도시가스업체에선 전출시에 안전 점검을 받도록 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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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부 "이사 자주 다니는 서민층 혜택"

문제는 이사가 잦은 세대는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는 대신 장기간 이사를 가지 않는 세대나 오피스텔, 원룸, 아파트 등 가스레인지 철거가 필요 없는 '빌트인' 세대에게 철거 비용이 전가된다는 점이다. 더불어 주수입원인 철거 비용이 절반 가까이 깎인 고객센터에서 연결 비용 인상 등 다른 방식으로 비용을 보전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월 지경부 의견 요청에 대해 "철거 서비스 이용자와 비용 부담자가 서로 달라져 장기간 이사를 가지 않는 가구에게는 불이익이 되는 등 문제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추후 철거 비용을 빌미로 도시가스 요금 인상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어 도입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역시 지난 2009년 12월 "소비자 물가를 고려해 철거 수수료를 일부만 반영할 경우 지역관리소는 보전 받지 못한 비용을 다른 위탁수수료 인상을 요구해 결국 전체적인 도시가스 요금 인상으로 귀결된다"며 지경부에 재검토 요청을 하기도 했다.

이에 지경부 가스산업과 관계자는 "아무래도 서민들이 이사를 자주 다닐 수밖에 없는데 서민층 지원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경부는 이미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해서는 도시가스 요금 감면 제도를 별도로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이들에게 매달 113.5원/㎥씩 할인해주고 차상위계층 역시 42.5원/㎥씩 할인받고 있다.

다행히 지난해에는 지자체별 철거비 인상에 따른 가격 인상 요인보다 도시가스 공급량 증가에 따른 가격 인하 요인이 더 커 요금 인상으로 직접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다만 서울시와 경기도는 지역관리소에 지급할 철거 비용조차 정하지 않은 채 철거비를 폐지한 상황이어서 공급비용을 산정하는 7월까지는 논란이 잠복돼 있는 상황이다.

일반 시공업체 설 자리 잃어... 공정위 "시공업 독과점 우려"

수도권 지자체가 철거비 폐지를 머뭇거린 또 다른 이유는 철거비가 절반 가까이 깎이는 도시가스사 지역사업소들의 반발과 더불어 일반 시공업체가 '혜택'에서 배제돼 '독과점'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당시 이 문제로 지경부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도시가스 연결-철거 시장을 놓고 각 지역 도시가스공급업체에서 직영하거나 위탁하는 지역관리소(고객센터)들과 가스시설 설치 면허를 가진 일반 시공업체들이 경쟁해왔다.

일반 시공업체들은 주로 부동산 중개업소나 이삿짐센터를 통해 고객을 소개받는 형태로 영업해 왔다. 하지만 '무료 철거'나 '연결비용 후불제' 혜택이 지역관리소를 통해서만 이뤄지면서 이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의정부에서 도시가스 시공업을 하는 김아무개씨는 "보통 지역관리소에서 2만 7천~3만 원 하는 연결 비용도 절반 수준인 1만5000~17000원 정도만 받았고 철거비도 8천 원 정도였다"면서 "평소 하루 10건씩 들어오던 일거리가 3월 들어 20일 동안 단 6건으로 줄어 이대로 가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일반 시공업체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100여 개 업체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은 최근 대한시공자협의회를 조직해 공동 대응에 나섰다.

앞서 공정위는 "개선안이 고객 편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나 '부당한 공동행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면서도 "전입시 시공비용을 사후에 징수하는 방안도 일반 시공업체는 혜택을 볼 수 없어 가스시설 시공 시장의 독과점화가 심화될 우려가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지경부 가스산업과 관계자는 "철거할 때 안전 점검과 요금 정산 때문에 비용을 받은 것이지 철거 작업 자체가 특별한 시공 업무는 아니다"라면서 "인터넷이나 전화처럼 철거비도 도시가스업체에서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책임지는 게 맞다"고 밝혔다.

다만 철거업자들의 불만에 대해서는 "일반 시공업자들이 제기한 문제도 있고 지역관리소에서도 수익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민원을 제기하고 있어 개선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그:#도시가스, #가스 철거비, #도시가스 철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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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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