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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재야경 사진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도로로서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 오도재야경 사진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도로로서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 함양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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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떠날 때 마다 고민이 하나 있다. 어떤 길을 가야만 더 좋은 여행이 될까 하는 것. 고속도로를 이용,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여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구경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지방도로를 따라 천천히 여유롭게 돌아보는 것이 나을까. 그간의 경험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귀가할 땐 멀고 돌아가는 길이지만, 가 보지 않은 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는 것.

지리산 수많은 계곡 중 하나인 칠선계곡이 있는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그곳에는 특별한 절이 하나 있다. 조형예술의 극치라 표현하는 석굴법당이 있는 서암정사(瑞嵓精舍)가 그곳. 몇 번 스쳐 지나 가 본 곳이지만, 대웅전 건립불사 소식을 듣고 마음먹고 찾아 가기로 한 것. 거제에서 출발하여 35번과 12번 고속국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한 시간 반을 달린 자동차는 함양IC를 빠져 나와 국도로 접어들었다. 봄이라지만 들판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모습이다. 논밭을 갈고 이는 경운기도, 들녘의 황소도,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만 휑하니 비켜 갈 뿐 마을은 한적하기만 하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마다 자기만의 특성이 있겠지만, 자동차 운전을 즐겨하는 나로서는 굴곡진 도로를 도는 느낌이 좋다. 함양에서 칠선계곡, 백무동계곡 그리고 남원 인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도재를 올라 넘어서야 한다. 오도재(悟道峙, 해발 773m), 길을 걸으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일까? 가고자 하는 서암정사 인근에는 벽송사가 자리하고 있다. 벽송사는 조선 초기 창건한 절로 지금까지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절로 알려져 있다. 오도재를 넘어야만 갈 수 있는 벽송사에서 수행한 선승들이 도를 깨우쳤다는데서 나온 뜻이라는 말도 있다.

지리산제일문 오도재 정상에는 지리산제일문이 서 있다. 함양에서 이 곳을 지나야만 칠선계곡, 백무동계곡 그리고 남원 인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 지리산제일문 오도재 정상에는 지리산제일문이 서 있다. 함양에서 이 곳을 지나야만 칠선계곡, 백무동계곡 그리고 남원 인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 정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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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산을 올라도 깨달음을 알지 못할 것인데, 자동차로 가는데 무슨 깨달음을 얻을까? 그냥 그 뜻만 헤아려도 공부라는 생각이다. 오도재는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로 사진작가들에게 꽤나 인기 있는 도로. 굽이굽이 도는 곡선이 아름답다. 특히, 야간 자동차 불빛으로 그리는 괘적선은 환상적이라 할만 하다. 고개를 오를 때, 사람만 숨을 몰아쉬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운전하는 자동차도 거칠고 센 기계음을 뿜어 낸 끝에 정상에 올라섰다.

오도재 정상에는 도로를 가로질러 회백색 화강석 위에 기품 있는 웅장한 모습을 한 건축물 하나가 떡 버텨 서 있다. 경치도 구경할 겸 차에서 내려 건물 위로 올랐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고풍스런 멋은 나지 않지만, 한국 고유의 멋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 크기의 팔작지붕이다. 편액에는 '지리산제일문(智異山第一門)'이라 새겨져 있다. 좌우 대칭으로 문양을 새긴 화려한 단청과 부드러운 지붕 곡선은 하나의 예술품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난간에 기대 한 동안 풍경 속에 빠져 들었다. 바람도 내 곁에 머물며 같이 쉬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과 들녘은 평화로움이 가득한 행복한 모습이다.

고개를 넘어서자 굽은 길은 계속 이어지고 갈림길이 나타난다. 바로가면 마천을 지나 백무동으로 갈 수 있고, 돌아가면 유림을 지나 35번 고속국도로 이어진다. 바로가자 곧 이어 왼쪽으로 차 한대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의탄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지나면 유명한 칠선계곡이 있는 추성골로 접어들 수 있다. 칠선계곡은 지리산 주변의 수많은 계곡 중 하나로 비경이 뛰어나고, 천왕봉으로 오르는 험난한 코스 중 하나다. 국립공원에서는 칠선계곡 특별보호구 탐방 예약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참여 15일전에 예약신청을 해야만 천왕봉에 오를 수 있다.

석불 암벽에 석불을 조각하고 위로는 탑이 서 있다.
▲ 석불 암벽에 석불을 조각하고 위로는 탑이 서 있다.
ⓒ 정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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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을 넘겨서야 서암정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물 한 모금 마시니 이리도 시원할까, 생명의 물이라는 느낌이다. 경사진 곳을 천천히 걸었다. 짧은 언덕으로 올라서자 갈림길이다. 한 쪽은 벽송사요, 다른 한 쪽은 서암정사다. 언제부터인가 절에 갈 때, 한 걸음 한 걸음 땅바닥에 옮겨 놓는 것이 부처님께 보시한다는 생각이다. 속세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자 산문에 드는 수행자의 깊은 고뇌가 생각나서일까? 오늘 서암정사를 찾아가는 것도 어리석음을 깨닫기 위한 여행이라면, 발걸음 하나하나 옮겨 놓는데 의미를 두지 않을 수는 없을 게다.

보시 서암정사 대웅전 건립에 필요한 목재료를 다듬고 있는 목수
▲ 보시 서암정사 대웅전 건립에 필요한 목재료를 다듬고 있는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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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서암정사 대웅전 공사가 한창이다.
▲ 대웅전 서암정사 대웅전 공사가 한창이다.
ⓒ 정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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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자 목수들이 나무 기둥을 다듬는데 여념이 없다. 서암정사 대웅전 불사에 쓰일 재료다. 합장하고 머리 숙여 마음으로 보시를 하고 한참을 곁에서 지켜봤다. 얼마나 많은 대패질을 하고 다듬어야만 완성된 재료 하나가 만들어질까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피와 땀이 섞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형 사찰이 아니다 보니 넓지 않은 절 마당에 공사가 한창이다. 주춧돌과 기둥은 세워졌고 지붕공사가 한창이다. 기와불사를 한 기와는 마당 한 구석에 빼곡히 쌓여있다. 불자 한 사람 한 사람 보시로 대웅전은 하루가 다르게 제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오는 4월 10일 오전 11시 상량식을 한다 하니 다시 찾아 무량대복을 빌어 볼까 싶다.

일주문 전각 형태인 여느 절의 일주문과 달리 양쪽으로 서 있는 돌기둥이 일주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일주문 전각 형태인 여느 절의 일주문과 달리 양쪽으로 서 있는 돌기둥이 일주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정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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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정사는 1960년대 중반 원응스님으로부터 불사가 시작돼 지금에 이른다. 이 곳은 암벽에 주로 양각의 조각방식을 활용한 법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통 절의 경우 일주문은 전각형태를 띠지만, 여기는 양쪽으로 서 있는 둘 기둥이 일주문을 대신하는 것 같다. 옆 절벽에는 부릅뜬 눈과 힘 있는 몸동작의 사천왕상이 일렬로 서 있다.

화려한 단청이 아닌 회백색 암석 속 사천왕상은 속세의 헛된 망상을 버리라는 듯 명령하는 모습이다. 이어 대방광문을 통과하면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며 곧 바로 석굴법당이다. 석굴법당은 극락전으로서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석굴법당 입구인 안양문을 들어서자 생각보다는 널찍한 공간이 나타난다. 한 곳에 마음을 모아 삼배를 올렸다.

대웅전 조감도 서암정사 대웅전 조감도. 오는 4월 10일 11시 대웅전 상량법회를 한다고 한다.
▲ 대웅전 조감도 서암정사 대웅전 조감도. 오는 4월 10일 11시 대웅전 상량법회를 한다고 한다.
ⓒ 서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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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로 만든 법당 안은 천국이 어떤지 몰라도 천국 같은 기분이 든다. 정면에는 아미타불이 있고, 안쪽으로는 묵직한 지팡이를 든 지장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석굴 법당 안을 찬찬히 살펴봤다. 혹시나 밖에서 조각해 붙여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곧 이어 불경스런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았는데 법당 안에서 어리석음으로 가득 찼다니. 지장보살 앞에서 나무관세음보살을 외며 또 삼배를 올렸다. 조각품 하나하나 아주 정밀하고 섬세하다. 어떻게 이런 모습의 불보살 세상을 표현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이런 훌륭한 걸작을 남겼을까? 갑자기 이 법당을 조각한 석공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서암정사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조성과정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대로 실어본다.

조성과정의 이야기들

서암정사는 대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조화로 준비된 장소에 여러 사람들의 크고 작은 공덕이 보태지면서 비로소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30여 년 전, 불사(佛事)를 시작한 이래 적지 않은 난관과 고초를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장엄한 사찰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불보살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주들의 정성어린 물심양면 공덕과 더불어 석공들의 공덕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홍덕회, 이종원, 이승재, 이금원, 이인호, 맹갑옥 석공은 지극한 정성과 노력으로 한 치의 흘림 없이 조각을 완성했다. 석굴법당의 아미타 본존불은 이승재 석공이 시작했고, 본존불 외에 석굴법당의 여러 부조는 홍덕회 석공이 조각했으며, 맹갑옥 석공이 조역을 했다. 주산신과 독수성은 맹갑옥 석공이 겉석을 치고 홍석희 석공이 세조각(細彫刻)으로 마무리 했다. 사천왕상과 비로전은 이종원 석공이 중심이 되어 완성했고 배송대는 이금원 석공이, 용왕단은 이인호 석공이 각각 조각했다. 여러 석공 중에서 특히 홍덕희 석공은 서암정사에서 10년 이상 머물면서 석굴법당을 위시해 사자굴의 모든 조각을 마무리 했다. 마천면 추성리와 의탄리의 몇몇 인연이 있는 분들은 처음 터를 닦을 때부터 시작해 도량 조성 과정의 크고 작은 일에 큰 힘을 보탰다.

극락전 석굴법당
▲ 극락전 석굴법당
ⓒ 정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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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암석 벽면에는 본존불외 팔보살, 제석천, 범천, 십대제자, 법장비구, 타방세계 불보살, 신장단, 현왕단 등이 조각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벽면에는 구름과 물결로서 불보살의 원대한 서원과 무한한 불법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천장에도 보살과 권속들이 조각돼 있다. 보살십장생 등 갖가지 동식물과 연꽃도 극락세계를 꿈꾸는 이상형 모습이다. 한참 동안 법당을 둘러보고 나올 때 또 다시 삼배를 올렸다. 불심이 부족해서일까 절을 할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냥 절만 할 뿐이다. 안내문에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고 돼 있어 사진 한 장 못 찍은 게 아쉽다.

탑 절 마당에 있어야 할 탑이 암벽위에 서 있다.
▲ 탑 절 마당에 있어야 할 탑이 암벽위에 서 있다.
ⓒ 정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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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아래쪽으로는 연못이 잘 만들어져 있고, 특이하게도 석탑이 연못 속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던 곳인데, 물 속에 탑을 조성한 심오한 이유를 모르겠다. 물을 뿜어내는 바위 위에는 동자승이 목이 긴 학 한 마리를 쳐다보고 합장하는 모습이다. 아니, 학이 동자승을 쳐다보며 무언가 발원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절 마당에 있어야 할 탑은 큰 바위 위에 우뚝 서 있다. 서암정사는 절 마당이 넓지 않고 주변은 큰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전각 배치도 어려운 실정. 그렇지만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리에 순응하는 불법의 진리를 구현하는 장소로는 최고라는 생각이다.

자리를 옮겼다. 대형블록 같은 바위 모양을 한 제일 위쪽에는 비로자나부처님이 있고, 그 아래로는 문수보살님, 보현보살님 그리고 선재동자가 있다. 또 다른 바위에는 독성님과 꽃사슴과 함께한 선녀상이 자비를 베푸는 모습이 조각돼 있다.

지리산 깨달음을 찾아 나선 서암정사 길이지만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깨닫지 못하고 보이는 것은 지리산 뿐. 오른쪽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 지리산 깨달음을 찾아 나선 서암정사 길이지만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 깨닫지 못하고 보이는 것은 지리산 뿐. 오른쪽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 정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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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법당에서 절을 할 때 아무 생각이 나지 않듯, 집으로 향하는 시간, 이 곳에 뭐 하러 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어 눈을 돌렸다. 하늘 먼 곳, 지리산 제일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이 눈에 들어왔을 때, 이 곳이 지리산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신이 멍하고 혼미할 때, 머리를 한 방 툭 치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게 깨달음일까? 무엇을 깨달으려고 먼 곳 함양까지 왔을까 궁금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역언론인 거제타임즈와 뉴스앤거제에 송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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