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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여행을 계획하며 진양호의 일몰을 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앞선 진주성에서의 일정이 예정보다 늦어져 많이 서둘러야 한다. 택시를 잡아 탈까도 생각해봤지만, 편안함 대신 모험을 택하는 것이 진정한 뚜벅이족의 자세가 아닐까?

 

오래 걸은 탓인지 점심을 먹은 것이 다 꺼져버린 상태다. 허기가 밀려온다. 어디라도 들어가 배를 채우고 싶지만, 그러기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버스 정류장을 찾아 이동을 하며 노점세어 계란빵을 하나씩 샀다. 우걱우걱 씹으며 정류장을 찾아 노선표를 확인하니 뭔가 이상하다. 마침 버스를 기다리던 아주머니에게 방향을 여쭤봤더니 건너편에서 타야 한단다. 5분 정도를 기다리니 진양호 입구로 데려다 줄 16번 버스가 도착했다. 출발.

 

동행인 은영이는 언제나 그렇듯 버스를 타자마자 기절한다. 무척이나 피곤했는지 오늘은 유독 더 깊이 잠든 듯 하다. 혼자서 바깥 구경도 하고, 트윗질도 하며 정신을 빼놓고 있었더니 버스 기사님이 큰 소리로 우리를 부른다.

 

"학생들! 어디까지 가?"

"진양호 가는데요."

"여기가 진양호야."

 

순간, 당황한 나는 대화 소리에 깬 은영이와 허둥대며 하차를 했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입구에서부터 진양호 전망대까지는 녹녹지 않은 길이 이어진다. 인도가 보이지 않아 차도를 따라 걸었는데, 그 길의 경사도가 꽤 높은 편이다. 우리는 전망대를 향해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온통 내려오는 차들밖에 보이지가 않는다.

 

'분명, 진양호는 일몰이 멋있다고 했는데 왜 다들 내려오는거지?'

 

괜히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꾸역 꾸역 올라갔는데 문이 닫혀 있으면 어떡하지?'

 

한참을 걷고 있는데 은영이가 차에 탄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나보다.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단다. 그럴만도 하다. 차들만 다니는 차도를 젊은 여자 둘이서 꾸역꾸역 낑낑대며 올라가고 있으니 쟤네들은 왜 사서 고생을 하나 싶을거다. 어쩌면 전국 도보 여행을 즐기고 있는 멋진 배낭 여행족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고 믿고 싶다.

 

한 20여분을 줄곧 오르막길만 숨가쁘게 걸어서 드디어 전망대에 도착했다. 주변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전망대 이정표만 찾으며 걸었다. 목적은 일몰을 보는 것이니 그것부터 해결한 뒤에 뭐라고 할 생각이다. 다행히 아직 해가 질 시간은 아니라 전망대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전망대 아래쪽으로는 호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일년계단이라고 이름 붙은 이 계단은 그 갯수가 365개라고 한다. 밤이 되면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조명이 켜진다고 알고 있었는데 오늘은 우리가 전망대를 나설 때까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 매점아저씨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가능한 조명을 켜지 않는다고 한다. 진주는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라고 기대했는데 그 부분에서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절약을 위한 거라니 이해할 수 밖에….

 

계단을 내려가볼까 하다가 숨을 헐떡대며 올라오고 있는 한 아저씨를 발견하고는 그만 포기했다. 여기가 첫 코스라면 도전해보겠지만, 그러기에 오늘 체력 소비가 너무 컸다. 한 20개 정도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오는데도 힘이 든다.

 

화장실을 간 은영이를 기다렸다가 함께 전망대에 올랐다.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날이 맑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멀리에 있는 산의 능선까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마치 수묵화를 연상하게 한다. 전망대의 오른쪽으로 가장 멀리 보이는 것은 지리산 천왕봉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매점 아저씨에게 얻은 정보다. 오늘처럼 쾌청한 날에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어보인다. 잘됐다 싶어 전망대 1층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 2층에는 커피숍이 있지만 지금 급한 건 허기를 채우는 거다. 매점에는 과자 종류와 음료, 컵라면, 핫바등의 간단한 먹거리들이 구비되어 있다. 둘러볼 필요도 없이 무조건 컵라면 앞에 가서 섰다. 은영이와 하나씩 골라 물을 붓고 기다리는데 매점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둘이 여행중이냐며, 어디 어디 다녀왔냐, 내일은 어디를 갈거냐 등등 궁금한 것도 참 많으시다.

 

이것 저것 물어보시더니 진주에 대한 이야기, 진양호에 대한 이야기, 매점에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신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친밀감이 생기셨는지 김치는 팔지 않느냐는 물음에 단무지는 있다며 한 가득 나눠주는 인정을 베풀어 주신다.

 

전망 좋은 테이블에서 좀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면 좋으련만, 해가 언제 질지 몰라 젓가락은 입으로 향하면서 눈은 자꾸 해의 위치를 살피게 된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으면서도 떨어지기 시작하면 금방 사라지는 것이 해라 방심할 수가 없다. 결국은 라면을 다 먹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일몰이 시작되었다.

 

진양호의 일몰은 기대 대로 황홀지경이다. 해가 떨어지며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감상에 젖을 만하다. 혼자서 사색을 즐기기도,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를 하기에도 좋은 풍경이다. 해가 모습을 감추고 한참이 지나도록 카메라를 들고 서성였다. 그 자리를 쉽게 떠나기 힘들어서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나서야 전망대에서 내려왔다. 바쁘게 올라가느라 못봤던 풍경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진양호는 유원지의 형태로 잘 꾸며져 있다. 동물원과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학교나 놀이동산은 물론이고, 예술회관, 물문화관, 편의점이나 휴게 공간 등 다양한 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가족단위의 나들이 장소로도 손색이 없는 듯 하다. 4월이 되면 벚꽃이 만개한 풍경도 볼 수 있다고 하니, 따뜻한 봄날 찾는다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예상된다.

 

내려오는 길, 산책로를 발견했다. 올라갈 때는 반대편으로 걸어서 몰랐는데 좀 더 걷기 쉬운 데크길이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차도로 걷고 있는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봤나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dandjihye.blog.me


태그:#경상도, #진주, #여행, #진양호,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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