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모든 국민참여경선은 악인가. 2002년 '노풍'을 만들었던 역동적 에너지 때문에 정권재창출이 가능했고, 거대한 정치개혁의 힘이 됐던 것 아닌가. 물론 2007년 대선 박스떼기로 국민참여경선이 얼룩졌지만, 참여가 갖는 역동적 에너지를 다시 부정하는 게 옳은가."

 

이인영 민주당 연대연합특위 위원장은 23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격정을 쏟아냈다. 지난 2월 22일 정당-시민사회간 대표 회동 이후 야권연대 상황을 물을 때마다 "잘돼" "좋아" "긍정적이야" 하던 것과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그는 울분에 찼다.

 

무엇보다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진보진영이 단결하면 반드시 이긴다고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컨벤션 효과'라도 만들어야 본선 경쟁력이 생긴다는 점을 왜 생각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하는 눈치였다. 상식적으로 국민참여당이 국민참여경선을 못 받겠다고 버티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답답증도 토로했다.

 

4·27 재보선 야권연대 정치협상에서 핵심쟁점은 전남 순천과 경남 김해을 재선거 국회의원 후보선출방법이었다. 민주당은 순천에서 자당의 후보를 출마시키지 않지만, 시민사회후보까지 포괄하는 방법의 국민참여경선을 벌이자고 했었다. 이른바 '진성경선' 방식이다.

 

호남맹주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시민사회 후보를 포함한 소수 야당 후보 모두가 참여하는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누가 순천지역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진정한 리더십'인지 국민들 앞에 검증 받는 절차를 마련하자고 주장했었다.

 

경남 김해의 경우는 민주당 입장에서 보자면 결코 한나라당에게 내줄 수 없는 지역인 만큼 민주당도 참여하는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한나라당과 싸울 '최후의 1인'을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일장춘몽이 된 민주당의 꿈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꿈'은 일장춘몽이 됐다. 전남 순천에선 민주노동당이, 경남 김해을에서는 국민참여당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순천지역의 '시민배심원제'를 통한 후보단일화를, 국민참여당은 여론조사 100%를 각각 주장했다.

 

시민사회는 이 같은 정당의 치열한 요구를 절충하는 방식으로 '중재안'을 만들었다. 전남 순천에선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시민4단위(희망과대안, 시민주권, 민주통합시민행동, 한국진보연대)와 정당이 협의해 시민사회단체가 폭넓게 참여하는 시민배심경선제를 통해 야권단일후보를 선정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토를 달았다. 3당(민노당, 진보신당, 참여당) 이외에도 적합한 후보의 참여를 개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번 재보선의 촉박함을 고려해 3당간 경선으로 후보단일화를 한다고 못 박았다. 사실상 제3의 후보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경남 김해의 경우에는 민주당이 요구한 국민참여경선과 국민참여당이 요구한 여론조사 방식을 5 : 5로 절충했다. 단,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양당간 합의로 선 단일화하고, 최종결선을 치를 2명의 후보를 정한다고 규정했다.

 

그 밖의 강원과 경기 분당은 민주당이 선출한 후보를 야권연합후보로 정하자고 중재안을 냈다. 전형적인 지역별 지분 나누기 방식이다. 협상 초반 특정 지역을 특정 정당에게 할애하는 방식의 연합은 없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분 쪼개기'가 된 것.

 

이에 대해 이인영 최고위원은 "정당과 지역마다 이해관계와 상황이 달라서 일관된 룰을 적용하기 힘든 사정이 있다"며 "시민중재안은 이를 조정해 내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야권 지형에서 가장 오른편에 선 민주당, 또 야권 가운데서는 가장 구악적 정치행태를 보이는 민주당이 적극 찬동하는 국민참여경선을 스스로 '진보야당'이라 규정한 국민참여당이 못 받겠다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왜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경선 대신 시민배심원제를 선택한 것일까.

 

이름은 예쁘지만 돈과 불법, 조직이 동원되는 선거?

 

돈과 불법선거를 조장하는 조직동원 경선이라는 것이 국민참여당의 입장이다. 말이 예뻐 '국민참여경선'이지 막상 치러보면 당에서 동원된 사람의 숫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나 시도지사 선거처럼 큰 단위의 선거도 관심이 떨어지는 마당에 국회의원 재선거, 그것도 특정지역에 마련된 장소까지 찾아와서 투표할 중립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자의 숫자는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

 

따라서 당원이거나 당원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몰려와서 표몰이를 할 경우 상대적으로 약체인 소수정당에게 매우 불리한 방식이 '국민참여경선'이라고 의혹을 보냈다.

 

실제로 국민참여당은 지난 6.2 지방선거 경기지사에서 이 점을 체득했노라 고백했다. 지난 경기지사 선거에서도 막판까지 야권후보단일화를 유예하다가 결과적으로 받아들인 '공론조사'에서 예외적 기반을 가진 유시민 후보였기 때문에 그나마 김진표 민주당 후보에 비해 0.97% 차이로 이길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당시 김진표·유시민 후보는 공론조사 50%와 여론조사 50%에 합의했었다. 공론조사는 각 정당이 모집한 선거인단 중 1만5000명을 뽑아 전화로 지지후보를 묻는 방식이다. 여론조사는 한나라당 후보인 김문수 경기지사와의 가상 대결을 통해 후보 경쟁력을 묻는 방식이었다. 국민참여경선은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데 당시에도 시간에 쫓겨 결국 현장투표 없는 공론조사 방식으로 대체했었다. 

 

이 같은 국민참여당 입장에 민주당은 발끈한다. 임종석 민주당 연대연합특위 간사는 "시민중재안에 솔직히 불만이 많지만 우리는 토 달지 않기로 했다"며 "민주당을 비롯한 제정당이 토 다는 순간 야권연대 협상은 한발도 진전하지 못한 채 교착에 빠지고 최악의 상황에 노출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 간사는 "만일 '시민중재안'을 국민참여당이 끝까지 거부한다면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왜 민주당이 제 살을 떼어놓는 심정으로 이번 야권연대 협상을 시작했는지 그 고민을 좀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진보신당이 '시민중재안' 못 받는 까닭

 

진보신당이 '시민중재안'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은 맥락이 좀 다르다. 진보신당은 '상호 호혜존중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특정 지역을 하나의 정당이 독점하는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22일 밤 밝힌 논평에서 "강원도지사와 경기 분당을 후보를 민주당 후보로 규정하는 것은 민주당의 후보독식을 불식시킬 수 없는 안"이라며 "진보신당은 이런 시민단체 중재안을 수용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협상대표)는 23일 "완전히 문 닫고 못 받겠으니 결렬선언하고 뛰쳐나갈 생각은 없다"며 "정치협상 논의가 3+1(김해, 분당, 순천+강원지사) 지역에 한정하기보다는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의원까지도 문을 열어놓고 계속 협상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인영 최고위원도 "진보신당이 주동적으로 협상할 여지가 별로 없는 것은 사실"이라며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에서 진보신당에게 우선 배려할 지점이 있는지 따로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 '시민중재안'에 따르면, '3+1' 이외의 지역에 대해서는 지역별 선거연합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고, 지역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중앙에서 재논의할 수 있으며, 지역별 연합논의를 통해 3+1 지역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는 정당에게도 호혜적 연합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돼 있다.

 

사실상 진보신당 입장에서는 '3+1' 이외의 광역의원이나 기초의원 등에서 '상호 호혜존중의 원칙'이 실현된다면 '시민중재안'을 거부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여지를 두고 계속 협상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 되면 4.27 재보선 '시민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정당은 국민참여당이 유일한 상황이다. 각 당의 이해관계에서 견주자면 '시민중재안'은 25점짜리 답안지일지 모른다. 그러나 4개의 야당이 모두 25점씩 받아 100점을 채운다면 그것은 만점짜리 답안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방안일 수 있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23일 오후 10시 서울 광화문 민주통합시민행동 사무실에서 시민4단위와 '시민중재안'에 대한 긴급면담을 수용하기로 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24일 오후 4시 시민4단위와 대표면담을 계획해놓고 있다.

 

국민참여당은 이르면 이날 밤사이 자당의 입장을 낼지 모른다. 진보신당도 대표면담 이후 자당의 입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관전 포인트는 국민입장이다. 국민이 보기에 이번 정치협상에 임한 야4당이 25점짜리 답안지를 합쳐 100점짜리 모범답안으로 만들면 표를 줄 것이고, 75점 혹은 50점짜리 답안지를 만드는 것에 그친다면 혹독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자, 이제 진보신당과 국민참여당이 국민에게 답할 차례다.


태그:#국민참여경선, #시민배심원제, #유시민, #이인영, #진보신당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