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6월,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과 관련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며 입장을 밝히고 있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
 지난해 6월,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과 관련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며 입장을 밝히고 있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정운찬은 정치를 잘 모른다. 답답하다."

한때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멘토였으나, 정 위원장이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가 되면서 소원해진 김종인 전 의원의 평가다. '대기업-중소기업 이익공유제' 논란으로 사직서를 내고, 미행설까지 제기한 정 위원장을 보면서 한 말이다.

2009년 9월 3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무총리 지명을 수락한 직후부터 정 위원장은, 김 전 의원의 말대로 '답답한' 행보를 계속해왔다.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서울대 총장을 지냈고, 2007년 대선때는 자신에 맞선 대항마로 출마를 검토했던 정 위원장을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실용'의 기수로 국무총리에 지명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민주당이 깊은 한숨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청와대 발표 직후 자신을 찾아온 기자들에게 그는 "경제학자인 내 눈으로 볼 때 세종시는 효율적인 모습이 아니다"며 세종시 수정론을 공식 언급했다. 대선 공약을 번복한 이명박 대통령을 뒷받침하고 나선 나름의 '승부수'였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고향인 충청권의 '공적'이 되기로 자초한 것이었고, 민주당과 선진당은 물론 '박근혜 대항마'로 영입된 그를 경계하던 '친박'(박근혜계)에도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작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본인의 병역문제, 아들의 이중국적문제, 공무원겸직금지 위반, 소득 불성실신고, 탈루 등이 계속 폭로되면서 '양파', '비리백화점'이라는 치욕적인 애칭을 얻었다. 야당이 퇴장한 가운데 가까스로 국회 인준을 받은 뒤 이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으면서 "어쨌거나 더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했어야 하는데 심려를 끼쳤다"고 송구함을 나타낼 정도였다.

그렇게 만신창이 상태로 총리가 됐지만, 이 대통령의 고집으로 밀어붙인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결국 10개월 만에 퇴진했다. 그 스스로 자신을 '세종시 총리'로 묶은 결과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들이받으면서 '개혁'의 화신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회창의 길'을 갈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그의 퇴진은 불명예스러운 것이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청와대 압박'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따라붙었다.

동반성장위원장으로 복귀... MB-이건희 아닌 장관에게 뒤늦은 '몽니'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사진 왼쪽)과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사진 왼쪽)과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
ⓒ 유성호/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총리직을 떠난 뒤 약 5개월 만에 '대·중소기업 상생 정책 주도'를 내걸고 신설된 동반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명색은 민간기구였지만, 전직 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게 적절하냐는 '격'의 문제와는 별개로 이 위원회의 위상이 애매했다. 민간기구인데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지식경제부는 이 위원회를 통해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하겠다는 것이었다. 위원으로 참여한 대기업 관계자가 첫 회의에서 "위원회의 법적근거가 무엇이냐"고 할 정도였다.

김종인 전 의원은 "정부내 조직이 움직여도 안 되는 일인데, 위원회 조직을 통해 동반성장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 말한다. "정운찬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자리를 맡았느냐"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의욕적으로 '대기업-중소기업 초과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섰다. 서울대 교수시절의 중도진보적 경제학자로 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급진좌파'라고 제동을 걸고 나섰고, 담당 장관인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애초부터 틀린 개념"이라며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을 막아버리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나 그가 제기하고 나선 '이익공유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언론' 등에서 그 취지를 살려 나가야 한다고 받치고 나섰고 이재오 특임장관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원하고 나서면서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까지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 경제학 공부를 해왔으나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끼어들고 나설 정도였다. 논란이 큰 만큼 주목도는 커지기 마련이다. 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라는 묻혀 있던 사회적 의제 하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전직 총리인 그는 사실상 최고 권력자인 이건희 회장과 '맞짱'을 뜨기보다는 기껏 고등학교와 대학교 9년 후배인 최중경 장관과 싸웠다. "나보고 일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며 사퇴의사를 밝혔고, 조금 더 나간 것이 '미행설'까지 제시하면서 임태희 대통령 실장을 공격하는 정도였다. 그러면서 청와대에 동반성장의 중요성과 일하기 어려운 환경임을 설명하는 '긴 사직서'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냈다.

총리 시절에 이명박 대통령이나 또는 '이익공유제'를 놓고 이건희 회장에게 부렸어야 할 몽니를 뒤늦게 최 장관이나 임 실장에게 하는 형국이었다. 지경부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예산과 인력을 늘리겠다며 그를 달래고 나섰고, 홍준표 최고위원은 이를 "응석받이", "차일디시(childish·어린애 같은)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여권 일각에서는 그를 분당을 보궐선거 후보로 생각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그를 보선에 출마시키는 아이디어를 처음 제기하고 이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원희룡 사무총장이나 이재오 특임장관의 주장이 힘을 받기 어려워졌다.

"'신정아 폭로'로, 분당을 출마는 끝났다"

2010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마친 뒤 퇴임하는 정운찬 국무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2010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마친 뒤 퇴임하는 정운찬 국무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임태희 실장이 강재섭 전 대표를 지원하고 있음이 확인되면서 오히려 그의 거취문제가 여권내부의 권력투쟁의 요인으로 떠올랐다.

바로 이 시점에 '신정아 폭탄'이 터졌다. 2007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과 학력 위조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신정아씨는 22일 발간한 자전 에세이 <4001>에서 10쪽에 걸쳐 정 위원장이 서울대학교 총장 재직 당시 서울대 미술관장과 미술대 교수를 제안하면서 연인 관계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2007년에도 신씨는 비슷한 주장을 했지만, 당시는 자서전으로 나오기 전이었고, "정 총장이 나를 만나자고 한 때는 늘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고 장소는 대개 (방배동 근처) 팔레스 호텔에 있는 바였다", "안주 겸 저녁식사를 시켜놓고서 필요한 자문을 하는 동안 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렸다"고 할 정도로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신씨는 정 위원장에 대해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연합뉴스> 인터뷰)이라고 반박하고 측근들은 "(책 판매를 위한) 노이즈마케팅"이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기자회견장에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온 신씨는 "이미 법률 검토를 거쳤다"며 자신감에 차있다.

상처는 대단히 깊다. 한나라당에서는 '재기불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이로써 분당을 출마는 끝났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을 보궐선거에서 당선시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위한 당 체제 개편 구상과 연결시키려 했던 이들로서는 자칫 "저런 사람을 내보내려했느냐"는 책임론까지 뒤집어써야 할 상황이 됐다. 그가 '대선 예비 후보'로 영입된 총리였고, 사실상 그를 위해 동반성장위원회까지 신설했다는 점에서 정 위원장의 사퇴파문과 '신정아 폭로'는 이 대통령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정 위원장이 '동반성장'이 아니라 '동반몰락'의 카드가 된 셈이다.


태그:#정운찬, #이익공유제, #신정아폭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