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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21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입니다. 24절기에서 네 번째 드는 춘분은 메말랐던 풀뿌리에 물이 오르고 속잎이 움트면서 봄이 한참 무르익어가는 절후라 해서 중춘(仲春)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해마다 양력 3월 20일-21일에 드는 춘분은 추위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람 끝은 아직 겨울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두툼한 옷과 따뜻한 잠자리가 좋거든요.

 논갈이가 시작된 집 앞의 ‘만호뜰’. 1년에 1만 명의 식량이 수확된다고 해서 ‘만호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논갈이가 시작된 집 앞의 ‘만호뜰’. 1년에 1만 명의 식량이 수확된다고 해서 ‘만호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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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을 만물이 약동하는 때라고도 하지요. 기온이 크게 상승하는 시기여서 그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하루를 밭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부르지 못하다"라는 옛말처럼 논갈이와 함께 농부들 일손이 바빠지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이때가 되면 꽁꽁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연약해진 논두렁·밭두렁이 무너지지 않도록 말뚝을 박고, 천수답이나 물이 귀한 논에서는 물을 받기 위해 도구를 치고, 파종할 씨앗을 이웃끼리 바꾸어 종자를 골라 뽑기도 했습니다. 

음력 2월에 농가에서 하는 일은 논밭 갈이와 함께 퇴비 만들기, 마늘밭 거름주기, 보리밭 거름주기, 특용작물 비닐하우스 관리, 장 담그기, 고구마· 감자 같은 이른 밭작물 파종 등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위한 준비 작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십자뜰 농수로 주변 텃밭에 감자를 파종하는 이웃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
 십자뜰 농수로 주변 텃밭에 감자를 파종하는 이웃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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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마을도 이른 밭작물은 이미 파종이 시작되었더군요. 어제(19일) 오후였는데요. 시장에 다녀오려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농수로 주변 텃밭에서 감자를 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해지기 전에 일을 마치려는지 몸을 바쁘게 움직이더군요.

- 할아버지 지금 뭐 심으세요?
"머는, 감자 심잖여. 땅도 놀고 혀서 식구 찌리 먹을라고 조꼼 심어보는 거여. 재미로."

- 지금이 감자 심는 때인가요?
"그럼. '2월 감자'라는 말도 있잖여. 지금 심어야 하지(夏至) 때 캐 먹고, 가을 감자를 심을 수 있응게."

석회를 퇴비와 섞어 밭에 뿌리는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문답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쪼그리고 앉아 씨감자 심느라고 열심히 손을 놀리던 할머니가 거들고 나섰습니다.

"된장도 담그야 허고, 헐 일이 태산잉게 쪼꼼 있다가 심어도 되그든유. 근디 맞선이라도 보러 가는지, 깨방정 나가꼬 지금 심어유!"

4월 초에 심어도 되는데 할아버지가 서둘러서 심게 되었다는 할머니 말 속에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파종 시기를 놓고 두 분이 다툰 것 같았는데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실금실금 웃으시는 할아버지를 보니까 덩달아 웃음이 나왔습니다. 모른 척하고 할머니에게 말을 붙였지요.

아직 자르지 않은 씨감자. 씨눈을 따라 2-3 개로 잘라 심는다고 합니다.
 아직 자르지 않은 씨감자. 씨눈을 따라 2-3 개로 잘라 심는다고 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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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어떻게 심어야 감자가 주렁주렁 열리나요?
"감자를 두 개나 세 쪼각으로 썰어서 눈이 있는 쪽을 땅으로 들어가게 심어야 좋쥬. 아무렇게나 썰면 안 되고 가실이(가을)는 두껍게, 봄이는 쪼꼼 얇게 썰어야 싹이 후딱 나가꼬 잘 커유."

- 감자에 재가 묻은 것 같은데요.
"나무 재를 섞어서 그렇쥬. 나도 잘 모르는디, 시집왔을 때부터 어른들이 재를 묻혀 심어야 감자가 많이 열린다고 허니께 따라서 허는 거쥬. 재가 묻으믄 감자가 냉해도 안 생기고 좋기는 헌 모양유."

-밭이 바싹 말랐는데 그냥 심어도 되나요?
"감자는 물을 안 줘도 돼유. 따로 손봐줄 것도 없어유. 지 혼자 잘 자라니께. 대신 심고 나서 가물어서 밭이 마르믄 그때 고랑에다 물을 주면 됩니다."

대화가 한참 무르익어 가는데 버스가 오더군요. 다음 버스로 나갈까 하고 시계를 보니까 너무 늦을 것 같았습니다. 길게 이야기를 못 해 아쉬웠는데요. 그냥 일어나려니까 서운해서 한마디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두 분이 감자를 심는 모습이 무척 좋아 보이고,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도 생각나네요.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못 살아도 나는 좋아 괴로워도 나는 좋아···'라는 노래 있잖아요. 올해 감자농사 대풍 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춘분, #봄감자 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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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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