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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2010년 12월 22일 이명박 대통령)

 

"말이 좋아 '무상'이지 사실은 서민들 주머니를 털어 부자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것"(2011년 1월 19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은 당당한 이익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고마움으로 생각해야"(2011년 3월 16일 김황식 국무총리)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인사들이 피력해 온 '복지'에 대한 주장들을 정리해보면, 크게 3가지 생각과 인식이 반복해 제시되고 있음이 보인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이 타국과 비교해 별로 '꿀릴 것 없다'는 것. 둘째는 조건 없이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보다 어려운 자들에게만 복지를 주는 잔여적 복지를 하자는 것. 셋째는 빈곤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기보다 개인적인 결함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 등이다.  

 

첫째, 이 대통령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강하게 깃든 "복지국가라 해도 과언 아닐 정도 수준" 발언은 길게 반박할 가치도 없다. 각종 지표에서 나타나는 객관적인 수치로 보나, 국민들이 일상에서 느끼고 있는 주관적인 체감도로 보나 우리는 복지국가와 한참 거리가 멀다.

 

우리의 객관적 복지수준이 턱없이 낮고, 국민들 삶의 불안도가 크다는 건 그간 여러 지면을 통해 소개된 바 있으니 여기서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지금 같은 열악한 복지수준에서 "이 정도면 만족"이라 여기며 자위하는 것은 달리기 경주 꼴찌가 "이만하면 훌륭해"라고 자족하며 혼자 걷고 있는 꼴과 다름없는 행태다.

 

오죽하면 같은 당의 김성식 의원조차 대통령 인식이 과장됐다며 "오랫동안 우리 복지시스템은 '저부담-저예산-저보장'의 트랙에 머물러 있고, '반쪽 기초생활수급제도, 반쪽 고용보험, 반쪽 국민연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근로빈곤층을 중심으로 커다란 복지사각지대가 그대로 남아있다"며 정부의 근본적인 발상전환을 요구했겠는가.

 

'서민복지' 구호가 정치적 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

 

둘째, 거의 대부분의 정부·여당 인사들이 주야장천 외쳐대고 있는 한마디. "어려운 '서민님'들 모셔야지 부자들에게까지 웬 복지를?". 언제부터 이들이 그토록 서민들을 챙겼나 싶은 생각에 의아하긴 하지만, 여하튼 '부자복지(?) 결사반대'를 외치며 '서민복지'를 목소리 높여 피력하는 그들 모습에서는 모종의 결기 같은 걸 느낄 수 있다.  

 

이 주장의 기저엔 가난한 자들에 한정해 복지를 제공하는 '잔여적 복지'의 의미가 깔려있다. 수학계산으로만 따진다면, 한정된 복지재원을 소수의 어려운 자들에게만 나눠주는 게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처럼 잔여적 복지의 경향이 큰 국가보다, 전 국민을 포괄하는 보편적 복지의 경향이 강한 유럽 국가가 빈부격차도 작고 빈곤율도 낮다. 국민들 삶의 질도 높다. 이를 '재분배의 역설'이라 하는데, 복잡한 논의는 생략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볼 때 잔여적 복지는 결코 '친서민'적이지 않다는 게 타국사례와 역사가 보여주는 진실이다.   

 

더 중요한 건, 현 정부·여당은 잔여적 복지를 외칠만한 자격도 못 되는 부끄러운 행태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혼란스럽다. 지금까지는 누구보다도 빈곤층 지원에 대해 사회비용의 낭비라는 등의 주장을 앞세웠던 자들이, 이제와 빈곤층 지원확대를 최우선으로 외치니 말이다.

 

실례로 2009년 정부에서 최저생계비 120% 미만의 비수급 빈곤층에 대해 월 12~35만 원가량의 한시적 생계보호급여를 지원을 해줬는데, 2010년 들어 경제가 나아졌다며 예산편성을 중단했다.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제는 전혀 나아진 게 없고 급여를 받던 자들은 지속적인 빈곤상태에 놓여 있던 상황이 다수임에도, 무 자르듯 싹둑 예산을 자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올해 예산편성에서도 저소득층 지원예산은 상당 부분 삭감 내지 없애면서, 이를 대출로 충당하라는 식의 정책변화를 보였다. 이런 모순된 행태를 가지고 저소득층 복지를 위해 보편적 복지를 하지 말자? 진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서민복지' 운운이 정치적인 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지 10년... 몰상식한 총리의 발언 

 

셋째, "복지혜택 받는 사람들은 고마워해야 한다"는 김황식 총리의 발언. 이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정부의 최고위 관계자가 국민을 대상으로, 돈을 좀 못 번다는 이유만으로 "고마워해야한다"는 투의 고압적인 발언을 내뱉는 건 너무도 몰상식하기 때문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다. 명목상으로나마 국민이면 누구나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수준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며, 복지수급을 권리의 차원으로 격상시켰다. 그런데 김 총리의 발언을 보면, 1961년 시행됐던 생활보호법적 사고(복지를 보호와 시혜의 측면에서 접근)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 총리는 노골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현 정부·여당의 속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까 싶다. 결국 가난한 자들은 자신들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사회로부터 복지를 받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고마워해야 한다는 인식인데, 과연 그럴까?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경제의 불황과 활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필연적인 구조상 독과점화의 진행과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생계의 어려움에 봉착하는 사례가 많을 수밖에 구조다. 우리나라에선 IMF 외환위기 때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멀쩡하게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실업자가 돼 산으로 출근하는 상황. 이를 지켜보며 '니가 못나서 그래'라는 식의 접근방법으론 아무런 대책도 나올 수 없다.

 

1603년 영국 빈민법에서부터 현대적인 복지국가의 태동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복지책임 확대는 결국 '빈곤의 사회적 책임'을 제도화해간 역사다. 이는 곧 가난한 자들이 '사회가 빚진 자들'일 수 있다는 인식, 그리고 산업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실업, 빈곤, 질병, 노령 등의 위험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필연으로 인식하고, 낙인 없이 공동으로 대처해나가는 게 지혜로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여당의 복지인식은 여전히 수백 년 전의 빈민법식 접근, 즉 복지를 시혜로 여기고 빈자들에 대한 낙인과 처벌의 시각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복지수급을 고마워해야한다? 사실 사회와 국민에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나 김 총리, 혹은 이건희 회장과 같이 사회적으로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기득권층 아닌가? 그들이 조금이라도 사회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복지 꼴찌권' 나라에서 복지 조금 늘리자고 하는데 '포퓰리즘' 운운하며 '그들만의 계급투쟁'에 나서는 행위는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복지는 지금 우리에게 전혀 필요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 길거리에 온통 내걸린 한나라당의 현수막은 '사상 최대 복지예산' 문구를 앞세운다. 이 대통령은 '친서민'을 우선기조로 내세우며 "서민복지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무상급식에 대해 '망국 포퓰리즘' 공세의 선두에 섰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측근을 통해 <서울, 복지에 미치다>란 책까지 내며 '복지시장'을 자임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년 동안 "사회복지의 제도적 틀을 탄탄하게 확충하면서 선진 보건의료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며 자신들이 '친복지 정부'였다고 자평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복지에 대해 매우 저급한 접근을 하고 있는 정부·여당이 입으로 떠드는 구호로는 서민과 복지를 강조하고 있는 정신분열적 상황.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바야흐로 '개나 소나' 복지를 외쳐대는 시대. 그래서 우리는 복지에도 옥석을 잘 가리는 게 중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뒤에서 2번째인 꼴찌수준 복지가지고 "이 정도 수준이 됐나 감탄(총리)"하고, 심지어 "우리나라의 복지가 세계의 모델이 되면 좋겠다(대통령)"고 '자뻑'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복지, 이런 망상에 따른 복지는 지금 우리에게 전혀 필요 없다.

덧붙이는 글 | 송주민 기자는 서울복지시민연대에서 활동 중입니다.


태그:#이명박, #김황식, #복지, #사회복지, #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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