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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화창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는 하지만, 햇살이 부쩍 따뜻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바람결에 포근한 기운이 묻어난다. 양지바른 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끝없이 졸음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날씨다.

 

지난 겨울, 혹한에 폭설까지 겹치는 바람에 맘 놓고 나들이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도 몸이 꽤 근질근질할 것이다. 이런 날은 평소 여행과 담 쌓고 사는 사람들조차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하물며 틈날 때마다 땀 흘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자전거 여행자들로선 여행을 떠나지 않는 게 고역이다.

 

운동을 하다가 그만두면, 몸이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근육이 늘어지면서 탄력을 잃은 데다, 허리 아래로 불필요한 살들이 불어난 까닭이다. 이대로 허리둘레가 가슴둘레를 능가하기 전에 길을 떠나야 한다.

 

오래간만에 먼 길을 나선다. 겨우내 먼지를 뒤집어쓴 산악자전거를 꺼내 대충 먼지를 닦아낸다. 한겨울 자전거를 방치한 탓에 윤기를 잃은 지 오래, 자전거에 게으름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그 사이 기어에 녹이 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목적지는 영월이다. 영월에는 자전거 여행자들을 반하게 만드는 여행 코스가 여러 군데다. '어라연'을 지나가는 동강 강변길과 '한반도지형'을 찾아가는 산 속 도로 모두 자전거여행의 백미를 맛볼 수 있게 해준다. 그 외에도 여러 코스가 있다. 거리만 멀지 않으면,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오갈 만한 여행 코스들이다.

 

강변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는다. 버스 짐칸이 작아 자전거를 싣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겉보기에도 꽤 육중해 보이는 산악자전거를 통째로 싣고도 공간이 남는 고속버스를 만났다. 마음이 가볍다. 더러 짐칸이 작은 버스인 경우, 앞바퀴를 분리해야 할 때도 있다.

 

영월시외버스터미널까지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났는데 벌써 영월이라니, 참 빠르다. 마치 자전거와 함께 서울에서 영월로 순간이동을 한 느낌이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는데, 겨우 수도권을 벗어나 여행을 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별을 따러 가는 기분이 이럴까?

 

영월읍은 인구 2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읍내를 벗어나는 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얼마 가지 않아 시가지 북쪽으로 봉래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읍 외곽에 거의 완벽한 삼각형 모양의 산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능선이 가파른 게 산세가 꽤 험해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게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산 높이가 해발 799.8m. 실고도가 550m에서 600m 사이라고 하니까 자전거로 오르기에는 조금 높은 산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겨울과 작별을 고하는 첫 여행지로는 조금 벅찬 상대를 고른 셈이다. 영월대교 위에 서서 산을 올려다보는데, 정상에 무언가 유난히 반짝이는 물건이 보인다. 바로 오늘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별마로천문대다. 이 천문대는 지방자치단체가 세운 것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80cm급 반사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별마로천문대는 영화 <라디오스타>를 촬영한 장소로 알려지기 시작해, 얼마 전에는 <1박2일> 팀이 다녀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영월은 다른 지역에 비해 하늘이 맑을 때가 많아 별을 관찰하기에 적당한 천문대로도 유명하다. 그 천문대가 지금 봉래산 정상에서 여보란 듯한 점 별처럼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별을 따러 가는 기분이 이럴까? 봉래산 정상을 올려다보는 내 마음이 긴장 반 설렘 반이다.

 

봉래산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동강이 흐른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4km 가량 산자락을 적시고 지나가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동강변 도로로 접어드는 곳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경사길이 나타난다. 도로 한편의 경사 표지판에 적힌 표시가 '10%'이다. 일반적으로 도로 경사가 10%면 꽤 가파른 편에 속한다.

 

길은 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삼옥리에서 다시 다리 하나를 더 만나게 되는데, 이 다리를 건너게 되면서 잠시 후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눈으로 보기에도 산비탈을 거슬러 올라가는 도로가 꽤 가팔라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의 도로 경사는 강변도로의 10% 경사가 무색하게 12%를 가리키고 있다.

 

도로 경사는 보통 10%를 넘지 않는다. 경사도 12%는 흔치 않다. 경사도 12%는 사실 자동차도 버거워 할 수치다. 이 수치는 그만큼 봉래산이 도로를 건설하기 힘든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그재그가 아닌 상태로는 도로를 만들 수 없었던 모양이다. 도로가 끝없이 굽어돈다. 100m를 가지 못해 180도로 휘어져 올라가는 길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도로가 산비탈을 지그재그로 올라가고 있는데도 경사도는 좀처럼 낮아지는 것 같지가 않다. 온몸이 땀에 젖는다. 심장은 터질 것 같다. 산 중턱에서부터는 수시로 자전거에서 내려 걷는다. 마음 같아선 단순에 산 정상까지 치고 올라가고 싶은데, 그 마음을 몸이 따라가 주질 않는다.

 

별마로천문대가 있는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린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도로 위로 눈이 덮여 있는 구간이 자주 나타난다. 그늘이 진 곳은 아직도 대부분 눈아 녹아 굳어진 빙판을 이루고 있다. 정상은 여전히 눈밭이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정상을 에워싼 나무들이 수정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있다. 나뭇가지를 덮었던 눈이 한낮에는 물이 되어 녹아내리다가 한밤에 다시 얼어붙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뭇가지마다 얼음 옷을 입고 있는 광경이 장관이다. 봄기운에 밀려나 산 위로 피신한 겨울이 가까스로 봉래산 산마루를 마지막 피난처로 삼고 있는 형국이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은 충동

 

별마로천문대에서 동강과 영월읍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발 아래는 절벽이다.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것보다 더 가파르다. 아찔하다. 산 아래로 발을 내딛으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다.
 

이곳은 패러글라이더들이 창공을 향해 몸을 던지는 활공장이다. 산 정상에서 몸을 던진 패러글라이더들이 새처럼 날아 산 아래 동강 둔치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누군가에겐 아찔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누군가에겐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

 

날개가 없는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탄다. 산 정상에서 영월읍까지는 6km 가량 내리막길이다. 산비탈을 내려가는 동안, 바람이 맹렬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처음 산을 오를 때와 다르게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허공에 떠 있지 않다 뿐이지, 하늘을 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봉래산 산마루 별마로천문대에서 지난 한겨울 사람들 속깨나 태웠던 겨울을 전송하고 돌아간다.

 

봉래산에도 임도가 여러 곳에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산악자전거를 즐기기에 적당한 길이다. 이 임도들을 중심으로 영월군에서 지정한 MTB코스만 10여 군데다. 하지만 지금은 이 코스들이 상당 부분 정비가 필요한 상태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 자전거를 끌고 다니기도 힘들다.

 

지난 여름, 폭우가 내린 뒤 길이 끊어지거나 무너진 상태를 그대로 방치한 탓이다. 길이 끊어져 사람들이 자주 오가지 않아서인지 풀이 무성하다. 이번 겨울 눈이 많이 내린 탓인지 아직도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수북히 쌓여 있는 곳도 있다. 한창 눈이 녹고 있는 곳은 물 반 진흙 반이다. 꽤 질척인다. 봄이 오면 자전거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날 터인데, 이런 점 미리 알고 가는 게 좋겠다.

 

영월은 다종다양한 박물관들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설 박물관이 밤 하늘의 별자리만큼이나 많은 곳이 영월이다. 현재 20여 개의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박물관들을 유치할 예정이다. 별마로천문대 올라가는 길가로 삼옥리에만 2개의 사설 박물관이 있다. '국제현대미술관(033-372-2752)'과 '테어가곰인형박물관(033-372-9758)'이 그곳이다. 차 한잔 마시는 기분으로 천천히 쉬어갈 만한 곳들이다.

 


태그:#영월, #별마로천문대, #동강, #봉래산,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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