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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 아무리 꿈이나 환상이라 한들 배가 고픈 건 똑같군?"

 

조제는 열망사냥꾼의 배가 꿀럭거리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배도 슬슬 어루만지며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가만 좀 있어봐. 시끄러 죽겠어."

 

나는 조제의 말을 막아서곤 인형웨이터와 사이 좋은 남매인 양 나란히 발을 뻗고선 무릎에 놓인 일기장을 정신없이 읽어나갔다.

 

1999년 8월 00일

 

학창시절 내내 미술을 하던 내가 이제는 공부로 선회하고 보니 힘든 점이 너무나 많다. 더구나 진종일 혼자 집에서 그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외로운 행군을 계속 하다보면 지나친 의욕과 맞물려서 현재를 부정하고 싶을 때가 생기기도 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새로이 시작하는 삶인데 왜 또 제자리 걸음을 해야 하는가 싶어서 잠시 잠깐의 후회가 밀려들기도 했지만 이젠 지나간 것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한때는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여고 시절의 그날 그 독기가 퍼붓던 영어 시간에 아예 결석을 해 버릴 것이라던가, 그놈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그 학원에 가지 않을 것이란 비현실적인 암시를 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은 해변의 모래같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가고 없다. 그냥 교통사고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기에 더 이상 내 소관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여기서 무너져 버리면  그것만이 나의 잘못이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기에 연필 든 손에 힘을 주고 사람들의 무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공부 한 가지뿐이라고 어렴풋이 느꼈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물론 그 판단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 현재로선 나를 찾는 방법이 공부밖에 없다는 막연한 기대에 기대보는 중이다.

 

저녁 무렵에 지난 번 그 카페로 다시 갔다. 이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주인이 혼자서 지키는 제법 시설이 깨끗하고 산뜻한 분위기의 가게다. 내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섰을 땐 라디오 헤드의 '노 서프라이즈'가 우울하지만 청량한 공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주인은 얼굴을 알아보곤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어제와 같은 자리를 권했다. 풀빛 셔츠에 흰 면바지를 받쳐 입은 그는 혼자서 홀과 주방을 오가며 한산한 가게 안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었다.

 

"애플 타르트를 방금 구웠는데 그건 어떠세요?"

 

커피와 곁들여 먹을 메뉴를 훑어보는 내게 그가 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에 말아서 이젠 제법 길이 잘 든 티가 역력한 파마 머리 아래로는 조명 아래서 더욱 투명해 보이는 피부가 돋보였다. 눈매가 선해 보였고 경계심으로 일관하거나 꿰뚫어보려는 눈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다소 안심이 되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곤 메뉴판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일어서서 가게 안을 천천히 휘둘러 보았다. 지난 번보다는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기에 노곤한 공기에 마음을 싣고 시간을 들여서 훑어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한 창틀을 보자 마음이 평온해졌고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맑아졌다.

 

그리곤 책장 가득 예술 서적이 죽 둘러쳐져 있는 뒤쪽 서가로 가서 몇 권의 책을 뽑아들고는 푹신한 소파에 파묻혔다. 일본 정원의 역사와 그 시공에 관한 도면이 그려진 책, 최근 주목 받는 젊은 영화 감독의 인터뷰를 실은 서적, 화가의 아뜰리에를 소개하는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서 어느 근대 조각가의 인생과 함께 작업실 사진을 보게 되었다.

 

1930년대 그 작가가 일본 유학 당시 찍은 사진 속에서 이젤 위에 놓인 도화지엔 카라카라의 석고상이 그려져 있었다. 세월이 까마득히 흐른 지금에 내놓아도 눈이 휘둥그레질 엄청난 솜씨였다. 그런 그가 귀국 후 자신의 조소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하고 작품에만 열중하다가 '인생은 공(空)'이란 유서를 남긴 채 작업용 쇠사슬에 목을 매달고 죽은 일련의 사건은 미술계에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다.

 

나는 그가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손으로 만지듯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몇 개월 전에 아파트 정원에서 내가 매달릴 만한 나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는 생의 의지를 하나 건져올린 셈이었고, 마음 밑바탕에 약간 남아있던 자만이 그 의지를 더욱 북돋워준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보다 더 치열하게 힘을 짜내며 생의 의지를 다지는 한 남자의 아내, 혹은 그 어떤 모호한 대상이 되어서 새로운 삶을 출발하며 그 작가와는 다른 방향으로 죽음을 대면한 셈이긴 하지만 말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이죠?"

 

다시 돌아온 주인이 향긋한 애플 타르트 냄새와 함께 의식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가 딸깍 하고 테이블에 내려놓은 찻잔에는 강렬한 보색 배치의 꽃무늬를 돋보이게 하는 검은 헤이즐럿이 담겨 있었고 금방 오븐에서 나온 애플타르트에선 새콤달콤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는 보통의 카페 주인처럼 허락도 없이 손님 맞은편 자리에 앉아 '무슨 고민을 떠안고 있냐'고 넌지시 묻는 무례한은 아니었다. 그저,

 

"금요일 저녁이면 특별한 파티가 있어요. 그때 또 오세요."

 

하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무슨 파티냐고 가만히 물었더니 탱고 동호회 친구들이 온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와인이 서비스 된다며, 모든 건 무료라는 말도 살짝 덧붙였다.

 

그놈들에게 시달린 이후로 극히 말을 삼가는 습관이 생긴 내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지극한 고통과 인내심을 수반하게 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상처를 비집고 마구 들쑤시는 게 싫어서 아예 입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믿으며 지난 몇 달을 살았다. 하지만 어느 한계점에서 혼자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고통이 서서히 엄습하게 되자 나도 모르게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조금 놓아버리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느 틈에 맞은편에 주인을 앉히고 내가 충분히 만족한 그 카페에게 얘기하듯 내 마음을 조금 얹어놓아 버렸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 지금의 시간은 잠시 멈춘 거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곤,

 

"뭣보다 '공부'란게 뭔지를 우선 생각해 보는 게 좋겠네요. 제가 생각하기에 공부란 자아를 깨닫게 해주는 도구라고 봐요. 자신에 대해 보다 내밀하게 알게 해주는 과정,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삶을 알게 하고 우주를 깨닫게 하며 누구나 지나칠 만한 그 미약한 스침에 손을 뻗게 해서 광대한 깨달음의 폭포를 맞이하게 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 거대한 깨달음 쪽으로 우리를 이끈 선지자와 무언의 악수를 나누는 과정이 공부를 통한 희열감이겠죠. 적어도 삶을 진지하게 살 수 있도록 공을 들이고 애를 쓰는 과정이 '공부'라는 단어로 응축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 공부의 과정은 종교, 여행, 탐구, 독서, 주위 사람에 대한 관찰 등과 함께 이뤄지는 것이고요. 박스 안에 자신을 구겨넣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를 가지고 '공부를 많이 했다'고 정의한다는 건 적어도 맞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뭔가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는 듯했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탱고 파티 때 자신이 잘 아는 시인이 온다고 했다. 집 앞 공터에서 채소를 가꾸어 먹고, 핸드폰이나 컴퓨터 없이 지내는 불편을 스스로 감수하고, 옷도 직접 짠 옷감으로 지어입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에서 그가 세상으로 나가는 유일한 교통 수단은 자전거와 도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금요일의 파티가 조금 기다려지기도 했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외로움이란 단순한 이유와 누군가에게 동질감을 확인받고 싶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어느틈에 나를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서서히 끌어들이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어디야?"

 

주인이 아래층으로 내려간 후 휴대폰이 울렸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그가 묻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르지만 세찬 바람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건너오고 있었다. 빨리 돌아오라는 재촉에 나는 말없이 일어서서 카페를 나섰다.

 

<계속>


태그:#판타지 소설, #중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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