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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각종 휴대전화기들
 매장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각종 휴대전화기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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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2월 23일, 예정일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갑자기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제왕절개로 막내를 낳아야 했습니다. 일주일 뒤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기에 참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퇴원하지 못했고 태어난 아기도 입원 중이라 병원을 지켜야 하는 아빠는 입학식에 갈 수 없었습니다. 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호자격으로 입학식에 갔는데 딸아이는 눈물 몇 방울 흘렸다고 합니다. 그것을 전해듣고 큰 아이에게 휴대폰을 사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몇 달 동안 이어진 고민에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출산 전부터 아이에게 휴대폰 사주는 것을 고민했습니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될 예정이었고 1학기 동안 등·하굣길에 엄마가 동행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큰아이 밑으로 다섯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고 아기도 태어나니 엄마는 외출할 수 없고 아이를 책임질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전화기를 들려 보내 학교 오가는 길과 안전을 확인하는 방법이 차선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 휴대전화를 사주는 것이 정말 잘하는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전화기나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는 아이들이 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휴대폰에 빠져 부모와 갈등을 겪는다는 엄마들 얘기도 신경 쓰였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고가의 기계를 마련해주는 것은 과다 지출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혼자 다녀야 하는 아이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도 하고 엄마 목소리를 들려주어 아이를 안심시키는 게 좋겠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문자라도 주고받아야 집에서 기다리는 엄마가 안심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아이를 지켜주는 것은 물론, 엄마 불안감 잠재우기 노릇도 휴대폰이 해내야 할 몫이었습니다. 전화기를 사주겠다는 부모의 결정에 아이는 물론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필요해서 사주고도 전전긍긍하는 엄마

서울의 한 전자상가 휴대폰 대리점들
 서울의 한 전자상가 휴대폰 대리점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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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통화 되는 거 사줘! 제발!"

매장에 나가보니 카메라 달린 영상폰은 기본이었습니다. 영상통화도 필요하겠다 싶어 흔쾌히 아이의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그 '제발!'이 쭉 계속되고 갈수록 집요해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엄마와 전화할 때만 폰을 써야 한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받아두고 요금도 초등학생 정액제를 선택했습니다. 인터넷 사용은 아예 못 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아이는 교문 들어가기 전에 '학교 도착했어' 문자를 보낸 후 꺼두었다가 하굣길에 '집에 가는 중' 문자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교 문자 받은 후 시간 안에 집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때마침 초등학생 성폭행 살인사건도 일어난 터라 불안이 극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그 생활이 익숙해지고 학년이 높아지자 아이는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고 전화로 수다를 떠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게 되면 별난 표정을 다 지으며 기계문명을 만끽하곤 했습니다. 준비물 잊어버리고 학교 갔을 때 득달같이 전화해 엄마에게 가져다 달라고 하는 역효과도 있었습니다.

친구랑 놀다 학원 가는 시간을 놓치면 '학원 안 가면 안 돼?'라는 문자를 보내는 방법으로 휴대폰을 유용하기도 했습니다. 안 된다고 하면 몇 번이고 문자를 보내는 통에 '그런 용도로 전화기 쓰려면 당장 압수야'라는 최후통첩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엄마는 커가면서 점점 비밀이 많아진 자식을 감시하는 수단으로 휴대폰을 사용합니다. 딸아이가 방심한 사이 문자저장함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아이의 근황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문자함은 궁금하지 않은데 아이 것은 비밀일기장 들춰보듯 보게 됩니다. 

알고 보니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휴대폰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상당수였습니다. 딸아이는 백만 원짜리 최신형 폰을 자랑하는 아이도 보았다고 합니다. 그 사이 딸아이는 전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려 약정기간이 되기도 전에 새것으로 갈아치웠습니다. 고장 난 김에 아예 휴대폰을 퇴출시킬까 했지만 아이가 혼자 다녀야 할 곳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기종에 깔린 프로그램 탐색에 아이는 열을 올리더군요. 딸아이는 폰에 수시로 스티커를 바꿔 붙여주고 예쁜 휴대폰 고리를 바꿔 다는 일에 많은 용돈을 쓰곤 했습니다. 여자들 집 꾸미기, 남자들 자동차 꾸미기가 어른들의 놀이라면 아이들은 휴대폰 꾸미기가 흥미로운 놀잇감임이 틀림없습니다. 언니의 그런 모습을 보는 어린 동생들은 휴대폰이 대단한 물건임을 알아차리고는 사달라고 떼를 써 할아버지의 고장난 휴대폰을 얻어다 줘야만 했습니다.

아이들 셋이서 전화기에 코를 박고 있는 광경을 볼 때면 한숨이 나옵니다. 이야기 만들기 좋아하는 큰딸이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고 7살, 5살 된 여동생 둘에게 대사를 외우게 해 연극을 할 때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합니다. 자매 우애 다지는데 휴대폰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터치폰을 사주지 않는 것이 서운한 아이

딸아이는 친구들과 끝없이 문자를 주고받습니다. 어쩌다 문자가 뜸해지면 딸아이는 왕따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친구와 싸우는 것도 문자로 하고 화해도 문자로 하더군요. 집단문자라는 것을 통해 소문을 삽시간에 공유하기도 합니다. 사랑 고백도 문자로 받습니다. 요즘 학교마다 벌어지고 있는 전교어린이 선거 운동도 문자로 하더군요. 아이들 사이에서 휴대폰이 중요한 의사소통수단인 것은 확실합니다.

5분 이상 문자를 주고받고, 문자 알림음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 되면 엄마는 '차라리 통화하라'고 성화지만 아이는 문자를 훨씬 편하게 생각합니다. 답문자가 빨리 안 오면 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다른 일을 하다가도 확인합니다. 휴대폰 세계에서 기다림은 미덕이 아닙니다. 학년이 높아갈수록 휴대폰과 아이는 밀접해지고 많은 시간 동안 휴대폰을 들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이용시간을 제한하듯이 휴대폰 사용도 제한시키려 엄마는 자주 언성을 높이게 됩니다. 그나마 피곤하단 핑계로 내버려두는 날도 늘어갑니다. 

자신의 영상폰을 애지중지하던 딸은 한 살 어린 사촌 동생이 수십만 원짜리 터치폰을 보여주자 돌변했습니다. 만지기만 해도 화면이 사사삭 넘어가는데다가 영상통화는 기본이고 재미난 프로그램도 많이 들어 있는 터치폰은 가히 신세계였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얼굴이 어떤 연예인이랑 닮았는지 알려주는 프로그램에 아이는 넋을 놓고 말았습니다. 딸과 승강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도 터치폰 사줘! ○○이는 나보다 어린데 더 좋은 거잖아~ 제발~"
"터치폰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갖고 싶어서 사는 것은 낭비야. 핸드폰은 장난감이 아니잖아."
"근데 왜 ○○이는 터치폰 사주는 건데? 우리는 가난해서 못 사?"

어안이 벙벙할 일입니다. 아이들끼리 아파트 평수와 차종으로 부모의 능력을 비교하는 경우는 숱하게 겪었지만 이제 휴대폰까지 가세하는군요. 우리 집은 평수도 작고 차도 없어 매번 능력평가에서 하위권인데 어린 동생도 가진 터치폰조차 사주지 못하는 부모가 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신파조 말이 나올 것 같아 아이에겐 다소 객관적인 이유를 댔습니다. '2년 약정기간 안에 휴대폰을 바꾸면 위약금을 어마어마하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약정기간까지 전화기를 잃어버리지 않고 소중히 쓰면 엄마가 그때 생각해보겠다는 유연함을 보였습니다.

그 후 아이는 휴대폰을 물에 젖게 해 몇만 원 들여 수리해야 했고 또 떨어뜨려 액정도 갈아야 했습니다. 기계를 고장 내면 하는 수 없이 터치폰을 사주겠지 하는 생각에 일부러 전화기를 망가뜨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듭니다. 부모 입장에선 휴대폰에 들어가는 돈이 솔찮은데도 아이는 터치폰을 사주지 않는 것만 서운한가 봅니다.

완고한 부모 밑에서 우리 집 세 딸은 힘들지도

5학년에 가까워지면서 딸아이는 친구 대부분이 터치폰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터치폰을 고장 내거나 잃어버려 몇 번씩 바꾸는 아이도 있습니다. 반 친구 중 누군가 새로운 폰으로 바꾸면 아이는 정확한 기종명칭까지 알려주며 엄마에게 보고합니다. 또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신형 폰 탐색하느라 바쁩니다. 자기의 휴대폰이 영상통화는 물론 게임도 있으며 아무 이상 없이 잘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잊은 듯합니다. 시시때때로 딸의 항의 또는 읍소가 시작됩니다.    

"애들은 다 터치폰이야. 나만 구식이라구!"
이건 화났을 때 하는 말.

"엄마, 그러고 싶지 않은데 애들 것만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와."
엄마를 구슬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하는 말.

"1년 동안 용돈 안 받고 세뱃돈 받으면 엄마 다 줄게. 대신 터치폰 사줘, 응?"
나름대로 방안을 강구해서 하는 말.

사실 제 주위 사람들도 모두 터치폰을 쓰고 있습니다. 터치폰으로 문자 보낼 때 힘들어하는 사람은 저 혼자 뿐입니다. 휴대폰을 한 번 사면 5년 이상 쓰고 옛날 삐삐를 그리워하는 엄마를 둔 딸아이는 무척 답답할 것입니다. 아이가 영상폰을 거쳐 터치폰 갖기를 생애 최대 목적으로 삼는 동안 휴대폰 업계에선 스마트폰이 대세를 이뤄가고 있고 요즘엔 아이패드나 갤럭시탭같은 신기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가 영화제에 출품되어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까지 했다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기계문명은 새로울수록 매력이 배가 되니 아이의 요구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짐짓 모른 척 엄마는 아이에게 구태의연한 일장연설을 늘어놓곤 합니다.

"멀쩡한 전화기 버리고 새 거 사느라 폐휴대폰이 넘쳐난대. 식당에 가서 밥 먹을 때 보면 사람들이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 얘기는 하지 않고 다 고개 숙이고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어. 사람이랑 말을 하고 살아야지, 전화기랑 놀면 되겠니? 휴대폰 멋진 거 가진 사람보다는 마음이 멋진 사람이 되는 게 더 좋은 일이야"

언젠가는 딸아이에게 터치폰을 사주게 될 것입니다. 사주면서 매달 요금의 절반은 아이의 용돈으로 내는 조건을 달 생각입니다. 아이는 펄쩍 뛰겠지만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고 절제하는 방법으로 좋을 듯합니다. 피할 수 없다면 좋은 용도로 이용하렵니다.

요술방망이 같은 휴대폰과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하도록 여러 가지 유인책도 쓸 생각입니다. 휴대폰 게임하는 대신 친구들과 놀게 하고, 휴대폰 지식 검색보다 도서관 탐색이 더 재미난다는 것을 경험시키려고 합니다. 둘째, 셋째 딸에겐 아예 휴대폰을 사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참 완고한 부모 밑에서 우리 집 세 딸은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태그:#휴대폰, #만능시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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