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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봉에서 만복대로 이어지는 서북릉
▲ 지리산 서북릉 고리봉에서 만복대로 이어지는 서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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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지리산하면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의 주능선을 떠올린다. 물론 성삼재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25km의 주능선은 지리산의 장쾌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구간이다. 그러나 지리산은 그것보다 훨씬 크고, 깊다. 천왕봉에서 중봉, 치밭목 대피소를 거쳐 대원사에 이르는 계곡도 그 깊고도 담백함이 더할 나위 없다.

지리산의 마지막 살아있는 비경이라고 할 수 있는 칠선계곡은 또 어떠한가. 지금은 사전 예약제로 제한된 인원만이 입장할 수 있는 칠선계곡이지만 오랫동안 보전되어야 할 우리 '후손'들의 자산이다. 여기에 더해 성삼재에서 만복대, 정령치, 세걸산, 바래봉을 거쳐 인월로 내려서는 지리산 서북릉도 지리산의 깊은 품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대부분 국립공원이 2월 중순경부터 산불방지를 위한 통제에 들어간다. 지리산도 일부 구간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2월 14일부터 통제된다는 소식에 마지막 겨울 산행을 위해 몇몇 지인들과 함께 2월 12일 지리산 서북릉 산행을 떠났다.

용산에서 출발하는 밤 10시 30분 열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 30분경. 소풍길에 나선 아이들처럼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잠을 청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지리산의 깊은 품 속으로 들어갈 생각에 피곤함을 느낄 수 없었다.

역 앞에서 간단하게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성삼재에서 배낭을 야무지게 다시 꾸리니 새벽 5시가 넘었다. 기온은 영하 12도, 강한 바람에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정도. 장갑과 아이젠, 스패츠 등으로 중무장을 한 채 산행에 나섰다.

지리산 서북릉의 성삼재 기점은 주차장에서 달궁 방향으로 약 100여 미터 내려가면 왼쪽으로 철제문이 있는데 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된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바람은 매서웠으나 걷기 좋을 만큼 쌓인 눈은 등산화의 두꺼운 밑창 아래에서도 상쾌한 느낌을 준다.

고리봉 정상
▲ 지리산 고리봉 고리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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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봉우리인 고리봉까지 무난한 속도로 진행한다. 하늘은 습한 가스 탓에 조망이 좋지 않았으나 덕분에 상고대가 곱게 얼어붙어 마치 잘 입힌 튀김옷처럼 풍성해보인다. 고개를 들어 사위를 둘러보면 보이는대로 그림같은 설경이 눈에 꽉 찬다.

능선길에 곱게 핀 상고대
▲ 지리산 상고대 능선길에 곱게 핀 상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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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주능선보다 발길이 드문 탓에 등산로의 눈은 제법 깊었으나 다행히 앞서 간 산꾼이 발자국을 내놓았다. 뒤 따르는 사람으로서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겨울철에는 폐쇄한다.
▲ 정령치 휴게소 겨울철에는 폐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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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시작한 지 네시간 남짓, 정령치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정령치 도로는 겨울철에 통제하며, 휴게소 역시 폐쇠되어 그저 지리산 서북릉을 종주하는 이들이 잠쉬 쉬어갈 뿐이다. 식수를 구할 수 없으므로 휴게소에서 식수를 구할 계획이라면 주의해야 한다.

마치 튀김옷처럼 풍성하게 설화가 피었다.
▲ 설국 마치 튀김옷처럼 풍성하게 설화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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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치에서 간단하게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오전 11시경 다시 바래봉 방향으로 산행을 재촉한다. 설국에 들어선 듯 보이는 풍경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으나 쌓인 눈 덕분에 등산로가 높아져 주변의 잡목에 배낭이 자꾸 걸린다. 겨울 산행에서는 매트리스 등을 배낭에 메달고 가는 것은 잡목 때문에 피해야 한다.

오후 5시. 바래봉이 빤히 보이는 팔랑치에 도착하였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바람도 한결 매서워지고 있어 이쯤에서 하루를 머물러야 했다. 팔랑치에서 적당한 평지를 찾아 침낭과 침낭커버를 꺼내어 비박할 준비에 들어갔다. 그 사이 12시간의 산행을 마무리하듯 해는 지고, 지리산 자락은 깊은 어둠 속으로 잦아들었다.

뒤편 가운데가 천왕봉이다.
▲ 팔랑치에서 바라본 천왕봉 뒤편 가운데가 천왕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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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간 밤의 바람은 간데 없고 쾌청한 날씨에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우뚝 서있다. 지리산 서북릉의 또다른 맛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의 주능선을 한 눈에 보면서 산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4월말까지 달콤한 휴식에 들어갈 지리산. 쌓인 눈이 녹아 계곡을 이루고,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돋아 연두색 빛깔이 낼 때까지 푹 쉬길 바라며 산행을 마쳤다.

배낭에 모든 쓰레기를 메달고 내려와야 한다.
▲ 하산길 배낭에 모든 쓰레기를 메달고 내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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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흑돼지 구이
묵은지와 궁합이 잘 맞는 지리산 흑돼지 구이.
▲ 지리산 흑돼지 구이 묵은지와 궁합이 잘 맞는 지리산 흑돼지 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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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계곡 입구와 달궁야영장 사이에는 3년 묵은 묵은지와 함께 구워내는 지리산 흑돼지를 파는 음식점이 있다. 특히나 구제역으로 맛있는 돼지고기를 찾기 어려운데 지리산 흑돼지는 그 맛이 예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산나물 인심은 또한 얼마나 후하던지. 산행 마무리에 꼭 그 지역의 먹거리를 먹어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태그:#지리산, #만복대, #팔랑치, #서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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