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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의 '키 리졸브'와 '독수리 훈련' 강행, 이에 대한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재스민 혁명' 바람을 타고 한층 강해진 남한의 대북 심리전과 북한의 "심리전 발원지 조준 타격" 위협.

 

한반도 정세가 2월 전반기 짧고도 짧은 '대화' 국면을 지나 또 다시 벼랑끝 위기로 치닫고 있다. 작년 12월 남한군의 연평도 사격 훈련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대응 자제와 1월 들어 본격화된 북한의 전면적 대화 제의, 1월 하순 미중정상회담, 그리고 2월 초순 남북군사실무회담을 거치면서 조심스럽게 모색되었던 대화 국면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 대신에 남북 양측의 군사 위협과 거친 비난전이 재개되면서 한반도의 3월은 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될 전망이다. 한반도 정세가 편안한 날보다는 불안한 날이 더 많았다곤 하지만, 오늘날의 위기는 질적으로 대단히 좋지 않다. 욕하고 싸우다가 대화를 시도했지만, 서로의 태도 차이만 확인하고 또 다시 욕하고 싸우는 형국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에서 쫓겨난 네오콘이 청와대로 취직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 급변사태 및 흡수통일에 거의 종교적으로 집착해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재스민 혁명' 바람을 타고 그 수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오늘(2월 28일)부터 시작된 '키 리졸브'와 '독수리 훈련'과 관련해 일부 군 관계자들은 언론에 대단히 민감함 내용을 흘렸다. 북한과의 전면전 대비에 방점이 찍혀 있던 이들 훈련이 올해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고 등 북한 급변사태 및 국지 도발에 맞춘 훈련으로 그 성격이 바뀐다는 것이 핵심적인 골자였다.

 

이러한 성격으로의 훈련 전환도 문제지만, 군 관계자들이 민감한 내용을 언론에 흘린 의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미연합군의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군사 계획에 북한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놓고 한미합동군사훈련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북한 급변사태 대비에 있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자극적인 발언이 북한의 급변사태를 유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즉, 한미연합군이 북한을 자극하고 위협하는 군사훈련을 하면 북한도 대응훈련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이미 파탄 직전에 몰린 북한의 경제난을 더욱 악화시켜 급변사태나 붕괴를 촉진할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공산이 크다. 지난 2월 16일 MB 정부의 고위관계자가 "북한 공군은 연료가 없어 훈련 횟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 늘어난 우리의 군사훈련에 대응하다 보니 사고가 많이 난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군비경쟁을 통한 북한 급변사태 유도'라는 아이디어는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식 대외정책'을 대표한 도날드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작전계획 5030'으로 불린 이 계획은 한미 양국이 수시로 군사훈련을 벌여 북한의 내구성 및 경제력 소진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이 "전쟁과 평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계획"이라고 반발해 이 계획의 실행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안타깝게도 네오콘의 위험한 생각은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하고 있다. '백악관에서 쫓겨난 네오콘이 청와대로 취직했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MB의 대북정책이 네오콘의 그것과 닮은꼴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재스민 혁명'의 바람을 타고 한층 강해진 대북 심리전도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작년 천안함 침몰 이후 발표한 5·24 조치 가운데 하나로 발표된 대북 심리전에서 군은 라디오 방송과 전단지 살포에 이어, 올해는 물품 살포 및 '재스민 혁명'을 담은 전단지까지 뿌리고 있다. 특히 과거에는 일부 보수단체 중심으로 이뤄지던 대북 전단지 살포에 최근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과 군 당국까지 가세하고 있어 북한을 자극하는 수위도 한층 높아졌다.

 

이 와중에 2월 15일 철원군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내려온 북한 주민이 전단지를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보수 진영에서는 '대북 심리전 효과'를 더욱 확신하는 분위기다.

 

북의 '맞춤형 위협' 발언 속에 담긴 대화 의지

 

이처럼 한미연합군의 군사훈련과 남한의 대북 심리전 수위가 높아지면서 북한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북한은 27일 남북 장성급 회담 북측 단장 명의로 통지문을 보내 대북 심리전이 계속된다면 "임진각을 비롯한 반공화국 심리모략행위의 발원지에 대한 우리 군대의 직접 조준격파사격이 자위권 수호의 원칙에서 단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작년 5·24 조치 이후 남측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준비할 때에도 조준 사격을 경고한 바 있다. 

 

북한은 또한 27일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명의로 '키 리졸브 및 독수리 훈련'에 대해 세 가지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첫째는 한미 양국의 의도가 북한 급변사태나 붕괴 유도에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해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군사적 강점과 역적패당의 반민족적인 통치체제를 전면붕괴시키기 위한 총공세에 진입할 것"이라는 경고다. 둘째는 한미 양국이 "도발해 온다면" "서울불바다전과 같은 무자비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위협이다. 셋째는 "(미국의) 핵위협에 핵억제력강화로, 우리 미싸일을 제거하려는 악랄한 기도에 우리 식의 미싸일타격전으로 대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위협적인 발언은 통상적이면서도 새로운 특징도 내포하고 있다. '키 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의 의도가 북한의 급변사태, 국지도발, 북한의 핵·미사일 제거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 북한도 세 가지 유형에 따라 '맞춤형' 위협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성명 말미에 "우리에게는 평화도 소중하다. 긴장완화 역시 우리의 변함없는 지향이고 요구이다"라고 덧붙였다. 대다수 언론은 북한의 위협적인 발언만 소개했지만, 정작 중요한 대목은 바로 여기에 있을 수 있다. 북한도 현 상황 및 대결 고조에 따른 위기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이에 따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원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민의 생명은 위정자의 몫이 아니다

 

흔히 MB 정부의 대북정책을 가리켜 '기다리기 전략'이라고 한다. 대화와 접촉은 단절하고 북한이 굴복하고 나오거나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가 일어나길 기다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MB 정부의 대북정책은 '기다리기' 이상이다. 개념계획 5029의 작전계획화, 무력시위와 경제제재, 대북 심리전 강화 등을 통해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를 유도하고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흡수통일을 달성한다는 유혹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누이 강조하지만,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는 '통일의 호기'가 아니라 핵전쟁과 국제전을 포함한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MB 정부가 한반도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유혹에서 하루 빨리 헤어나와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그 출발점은 이명박 대통령이 오른쪽 귀에 의존해온 관성에서 벗어나 양쪽 귀로 여론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전은 피흘릴 위험을 감수할 때 나온다'는 식의 극우보수 진영의 논리는 그들이 그러한 공격적인 주장에 책임을 질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자리는 다르다. 작게는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크게는 7천만 민족과 동북아 전체의 안전과 평화를 생각해야 할 위치에 있는 대통령은 사리분별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자리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도 대오각성해야 한다. 북한이 주창하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평화적인 대외 환경"은 결코 "핵참화", "서울 불바다", "임진각 조준타격"과 같은 위협적인 발언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남측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목표로 하더라도, 도발적인 언행은 남측 강경론을 강화시키고 평화를 바라는 많은 시민들을 더욱 실망시킬 뿐이다.

 

무엇보다도 김 위원장은 "조선반도 비핵화"와 "쌀밥에 고깃국 먹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故)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달성하는데 얼마나 진지하고도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반문해야 한다.

 

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만나야 한다. 한반도 주민의 생명은 남북한 위정자의 몫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두 지도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키 리졸브, #대북 심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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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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