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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30년전 제 군생활의 추억담으로, 지금의 군생활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이야기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런 힘든 군생활을 겪었기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려(?)했던 이등병 시절, 나이가 들수록 그리운 시절로 기억됩니다.
 화려(?)했던 이등병 시절, 나이가 들수록 그리운 시절로 기억됩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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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장정들을 상대로 한 사기꾼

1982년 7월, 춘천 어느 허름한 이발관에서 머리를 빡빡 깎고 밖으로 나오니까, "형! 속세를 갓 떠난 햇병아리 스님 같다"며 기다리던 동생이 제 딴엔 나를 웃겨 본다고 농담을 건넵니다.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보충대를 향했는데, 길옆에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중년의 아저씨들이 다급하게 물어봅니다.

"도장 구멍 뚫었어?" 안 뚫었다고 하니까, "이사람 큰일 날 사람이네" 라며 빨리 도장을 내 놓으라는 겁니다.

목도장에 구멍을 뚫어주고 요구하는 돈은 천원(내가 이발비를 600원 냈으니까 천원의 가치는 큰 것입니다).

도장 구멍을 뚫는 건 도장에 군번줄 꿰기 쉽게 하기 위함이라는데, 입대해서 한번도 도장을 군번줄에 매달아 본적이 없었습니다.

심란하고 불안한 장정들을 상대로 참 별난 사기꾼도 다 있구나! 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야 했습니다.

33066641 평생 잊지 못할 번호

"엄마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라고 동생에게 말하고 근사하게 악수하며 돌아서리라 생각했었는데, 녀석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앞만 똑바로 보고 "이제 집에 가라" 라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보충대 3박4일 동안 신체검사, 인성검사를 다시 받고 군복과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번호(군번)를 부여 받았습니다. 33066641. 이 숫자가 지금도 누가 주민등록번호를 물으면 엉겹결에 튀어 나올 정도로 머리에 각인된 번호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집 전화번호와 내 휴대폰 번호는 가끔 잊어버려도 이 괴상한 숫자는 잊혀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니들은 인간이 아닌 훈련병이다

버스를 타고 산속을 굽이굽이 돌아 초라한 막사가 즐비한 곳의 공터에 내리자마자 소위 조교라고 하는 기관병들이 '좌로굴러, 우로굴러,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전방 축구골대까지 선착순 2명' 이들은 가뜩이나 어리바리한 50여 명의 훈련병들을 죽이기로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이 자식들 엊그제 쳐먹은 맥주 기운이 덜 빠졌어. 니들은 4주 동안(훈련기간)은 인간이 아니다. 훈련병일 뿐이다."

대대장 훈시라고 해서 위로가 될만한 말을 기대했었는데, 이건 한술 더 뜹니다.

입속의 이물 제거

식기를 옆구리에 끼고 군가를 우렁차게 부르며 식당을 향하는 짧은 길에서도 앞으로, 뒤로 취침, 선착순 몇 번 하면 30분 이상 걸립니다.

식사시작! 이란 구령과 동시에 '감사히 먹겠습니다'.  허겁지겁 몇 스푼 먹었나 싶었는데, '동작 그만! 입안에 오물 제거. 밖으로 집합 5초전' 이란 말과 동시에 먹던 식기를 들고 밖으로 뛰어야 했던 추억.

그렇게 신병훈련 4주가 끝날 즈음에는 그 호랑이 같던 조교들도 부드러워집니다.
"야! 54번 훈련병. 넌 사회에서 뭐하다 왔기에 그렇게 늙었냐?" 나를 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자대배치 받아봐라 짜식들아. 훈련병 시절이 그리울 거다"

주특기를 포병으로 받았더니, 평소 잘해주던 조교가 와서 "넌 이제 팔자 폈다. 포병은 삼보이상 승차야 임마"

구름도 울고 넘던 하나포상

정말 팔자 핀 줄 알고 배치된 부대는 지상지옥이었습니다.
120명 포대원 중 작대기 하나(이등병)는 나 혼자.

군복이 아닌 깔깔이 상의에 추리닝 바지의 괴상한 패션을 착용하고 침상에 뒤집혀 있는 사람들이 소위 말년이란 위인들입니다. 나를 보자마자 부드러운 목소리를 부릅니다. "너 고향 어디니?"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아온 다나까가 완전히 무시된 사회언어.
그 따뜻한 말투에 "화천인데요" 했더니 옆에 군기가 바짝 들어 있던 선임병(일병)이 손가락을 까딱합니다.

밖으로 그를 따라 나가자 별이 번쩍. 몇 대를 맞고 얼차려라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다음날 토요일 오후, 포대원 전원이 언덕위에 있던 포상(포가 위치한 곳)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너 뭐해 임마! 집합 몰라 새끼야!"

'구름도 울고 넘는 하나포상' 이란 곳은 언덕위에 움푹 파인 곳에 위치하고 있어 간부들의 눈을 속여 구타가 자행되는 곳이기에 이런 지명이 붙은 곳입니다.

엉겹결에 뛰어 올라갔더니 병장, 상병, 일병, 이병들이 사열종대 군번순으로 서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아무데나 선 내게 "저리가 새꺄!". 정신 못 차리고 어제 들어온 이등병이 감히 병장들 뒤에 섰던 겁니다.

모두 30분정도 부동자세로 서 있을 즈음 히히덕 거리며 슬리퍼를 질질끌며 추리닝 차림, 하느님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년 병장님들께서 올라와 포상 옹벽에 우뚝 서서 "우리 잘 하자" 딱 한마디 하고는 내무반으로 내려갑니다. 다음 차례는 이 자리에 똑같이 서있던 차석 병장들 차례입니다. "이등병 새끼들은 기어 내려가고, 상병 새끼들 엎어."

이등병 주제에 말년병장 기합을 줬습니다

졸병때 난 절대로 저들처럼 하지 말아야지 했으면서, 후배들이 봤을때 나도 그들 같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 [내 말년시절] 졸병때 난 절대로 저들처럼 하지 말아야지 했으면서, 후배들이 봤을때 나도 그들 같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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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아서 내무반에 내려왔는데, 원인제공을 한 말년들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나를 부릅니다.

"애인있니?". "없습니다". "그럼 누나는?"...

"좀 있으면 니 후배 하나가 오니까 오자마자 니가 군기 좀 잡아라. 뭐라 그러냐 하면 '이 한심한 새끼야. 이제 입대한 니 군생활은 종쳤다. 국방부 시계 멈췄어 임마!'라고 하고 쪼인트를 까지 않으면 넌 나한테 죽는다" 라는 명령이 끝나자 마자 따블빽을 메고 이등병 계급장을 단 한 녀석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같은 이등병인데 이 녀석은 무척 늙어 보였습니다.

시킨대로 했습니다. "....니 군 생활은 종쳤다 새끼야!"
후에 알고 봤더니 이 사람은 제대 일주일 남겨둔 초말년 병장이었습니다. 이리딩굴 저리딩굴 지들끼리 따분하니까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친 겁니다.

[다음 편은 나울 그 여섯 번째 이야기에 이어집니다]


태그:#나울이야기, #신광태, #나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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