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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 앞에서 청소년 희망여행 단체사진
 하우스텐보스 앞에서 청소년 희망여행 단체사진
ⓒ 송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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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간다. 제주도, 중국, 일본까지 떠날 것이다. 아이들은 보고 듣고 배우며 자란다. 그러나 수학여행에서 밀려난 아이들이 있다. 학교 안에 있어도 참가비가 없는 아이들은 학교 일정에 함께 하지 못한다.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거나 여행의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행박사는 겨울방학을 맞아 저소득층 고등학생 30명을 선발해 2월 19일에서 23일까지 4박 5일간 일본 규슈지역을 탐방했다. 말 그대로 '청소년 희망여행'이다.

이 여행에 함께한 경찬이(가명·18)는 하루 평균 11시간을 '공부'하는 데 매진한다는 '고3'이다. 사람들이 무턱대고 '고3은 공부하는 기계'라는 눈빛을 보내기 때문일까. 그가 먼저 히죽거리며 말을 건다. "저한테 질문할 거 있어요?" 어째서 히죽거리느냐고 묻자 "웃는 얼굴로 사람들과 한 마디라도 더 해야 사회에서도 존재감이 인식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찬이는 잘 웃지 않는데다 말이 없는,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친구들도 저더러 '성인군자'라고 했으니까요."

'성인군자'라는 말은 사춘기 소년에게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그때 경찬이는 기초생활수급자인 게 부끄러웠고 술을 마시고 사고치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고 과외 하나 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싫었다.

여행을 떠난 아이들과 그들의 '이야기'

경찬이가 자신의 가족이 기초생활수급대상인 것을 안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학교에서 급식 안내문을 받아왔다. 엄마는 안내문이 든 봉투를 선생님께 전달하라고 했다. 보지 말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하지만 경찬이는 봉투를 열었다. 무료급식대상자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경찬이는 봉투를 학교에 가져가지 않았다.

"그때는 왠지 창피했어요. 주눅이 들고 부끄러웠어요."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경찬이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급식을 면제받았다. 경찬이는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고등학생이 된 뒤 대충 짐작은 하지만,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고 했다.

"괜히 여쭸다가 떳떳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곤란해 하시면 어떡해요. 저 키우려고 하시는 일인데요."

경찬이의 부모님이 그 일을 하시기 시작한 건 경찬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였다. 우연히 세 칸짜리 새 아파트에서 방 두 칸이 달린 오래된 빌라로 이사한 시기와 겹친다.

중학교 1년, 낡은 20평 빌라로 이사했을 때 가세가 기운다는 걸 느꼈다. 초등학교 3년 때부터 3년간 살았던 아파트를 두고, 몸을 뉘이면 움직일 공간이 없는 낡은 빌라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교 후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부모님 얼굴은 학교 가기 전에 잠깐 보았다. 밤엔 일터에 간 엄마가 두고 간 과자를 먹으며 잠이 들었다.

가장 크게 후회했던 일은 엄마에게 그 말을 했던 것

벳부 타카사키야마 공원에서 원숭이를 관람하는 참가자들
 벳부 타카사키야마 공원에서 원숭이를 관람하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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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찬이는 자신이 지금껏 철이 안 든 것 같다고 했다. 하고나서 후회하는 일들이 여전히 생기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후회했던 일을 꼽으라고 하니, 엄마에게 전한 말을 댄다.

"학원에 가고 싶었는데, 갈 수가 없대요. 그래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나는 왜 아무것도 못 해?' 엄마가 '어쩔 수 없어, 미안해'라고 했어요. 아직까지 마음이 아프고 후회돼요."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받지 못하지만, 경찬이는 '서울에 있는 대학(IN서울)'에 진학해 친척들 가운데 최초로 서울에 진입하고픈 꿈이 있다. 친척 누나들과 형들은 그러지 못했다. 'IN서울'에 진학하면 엄마가 좋아하시는 데다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다. 경찬이는 'IN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싶다.

"행정공무원이 되면 아들·딸이 학교도 무료로 다니고 복지 혜택이 좋잖아요. 아이들은 저처럼 살면 안 되니까요."

경찬이는 "어려운 사람들도 국민이고, 함께 잘 살려면 부자들이 사회에 (재산을) 환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찬이 가족은 작년 이맘 때 기초생활수급대상에서 벗어났다. 공교롭게도 경찬이가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바뀐 시기와 일치한다.

"일부러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기초수급대상에서 벗어나고 자연스럽게 밝아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먼저 말도 걸고 장난도 많이 치고요."

경찬이에게 해외여행의 기회가 또 언제 찾아올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경찬이는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선발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정성과 기대를 통해 진행되는 '희망여행'

민지(가명·17)는 이번 여행을 통해 스스로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민지에게 추천서를 써 준 선생님은 민지가 선발되지 못할 것을 염려해 추천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았다.

발표 날, 선생님께서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선발되었다는 축하전화였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셨다. 민지도 행복했다. 꿈만 같았다. '드디어 여행을 가는구나!' 다음날, 감사인사를 드리러 간 교무실에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날에도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다.

아소팜 내 '겡끼 노모리'에서 장애물 건너기 시합하는 참가자들
 아소팜 내 '겡끼 노모리'에서 장애물 건너기 시합하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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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선발자 발표 직전, 선생님의 남편께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민지는 장례식장에 찾아갔다.

"장례식장에서도 선생님은 저를 보시고 '나는 너무 울어서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하시며 또 웃어주셨어요. '너무 고맙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데 펑펑 눈물이 나데요. 선생님께서 저를 꼭 안아주시면서 밝은 목소리로 '사진 많이 찍어와'하고 말씀해 주셨어요."

민지는 감사한 것을 알 만큼 속이 깊은 아이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것은 초등학교 3년 때의 일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빠의 일로 엄마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며 빨리 이혼하시기를 바라는 '불효자'였다. 아직까지 엄마에게 "아빠랑 일찍 이혼한 건 엄마가 제일 잘한 일"이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미안해 하는 엄마를 위로한다.

여행을 오기 전까지 민지는 일본을 독도 문제와 일제의 침략,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사회적 문제가 많은, 나쁜 나라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다르다.

"정말 직접 부딪히니까 너무 달라요. 일본인 모두들 아주 친절하시고. 비슷한 줄 알았는데 다른 부분도 매우 많고요. 일본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여행박사 심원보 홍보팀장은 "추천서를 보면 선생님이 학생을 대하는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며 "'희망여행'은 선생님의 정성과 기대를 통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2회 '희망여행'은 중국을 탐방하는 것으로, 4월 말께 진행될 예정이다.


태그:#여행박사, #일본, #청소년 희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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