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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강남교육지원청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학생의 권리와 의무 규정’을 만들어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 서울강남교육지원청이 펴낸 <학생권리와 의무 규정> 표지 서울강남교육지원청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학생의 권리와 의무 규정’을 만들어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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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강남교육지원청(강남교육청)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학생의 권리와 의무 규정'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관할 중·고교에서 운영한다고 밝혀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강남교육청은 24일 학생 권리와 의무 규정인 '사랑스런 나, 소중한 너'를 개발해 3월부터 소속 중·고교에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체벌금지 발표 이후 학교 현장의 갈등과 혼란을 바로 잡고, 교육공동체가 각자의 권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서로를 존중하는 교육풍토를 만들어가기 위함"이라는 것이 박순만 교육장의 설명이다.

강남교육청 성아무개 담당 장학사는 올 1학기에 20여 개의 중·고교에서 시범·운영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60개의 관할 중(39개교)·고교(21개교) 가운데 약 30% 정도에 해당한다. 

이 자료에는 학생과 학부모가 규정에 따를 것을 약속하는 '준수서약서'를 학교장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강남교육청이 제시한 서약서 내용을 살펴보면 "학생의 권리와 의무 규정 사항을 읽었으며…(생략)… 그에 따른 의무 사항을 이행할 책임이 있음을 이해하였습니다. 제 부모님 역시 본인이 규정을 이행하도록 지도할 의무가 있음을 이해하였습니다. 따라서 학생 ○○○은 규정에 따라 성실하게 생활할 것을 서약합니다"라고 돼 있다. 인권침해 논란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인천과 대구 등 일부지역 학교에서도 최근 학생들을 상대로 이 같은 형식의 서약서를 강요해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는데 학부모에게까지 같은 내용의 서약서를 요구한 것은 강남교육청이 처음이다. 3월부터 시범 운영할 중·고교에서 이 같은 서약서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요구할 경우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집필 과정에 직접 참여한 강남교육청 성아무개 담당 장학사는 "서약서는 미국·독일·핀란드 등 외국 사례를 참고한 것"이라면서 "(서약서 작성은) 학생과 학부모가 (규정의 내용을) 숙지했다는 약속이지 의무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효율적인 통제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약서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받지 않을 학교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위기이다.

성 장학사는 또한 "규정에 담긴 서약서의 내용을 학교에서 변형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혀 개별 학교에서 좀더 강화된 형태의 서약서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적용 과정에서 크고 작은 논란과 마찰 계속 일어날 듯

서울강남교육지원청이 제시한 서약서 양식. 학생과 학부모가 나란히 이름을 쓰고 서명하도록 돼 있다.
▲ 학생 권리와 의무 규정 준수 서약서 서울강남교육지원청이 제시한 서약서 양식. 학생과 학부모가 나란히 이름을 쓰고 서명하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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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독일에 살면서 <독일교육이야기>라는 책을 펴낸 바 있는 박성숙씨는 25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독일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전했다. 또한, 인권활동가 공현씨는 "학생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규정을 두고 학생은 물론 학부모에게까지 교육청이 앞장서 서약서를 강요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그보다는 학칙과 학교생활규정 등에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고 이를 지도·감독하는 것이 교육청이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장은숙 회장도 "아무리 자율에 맡긴다 하더라도 서약서는 강제성이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그런 걸 쓰라고 하면 학부모 입장에서는 불이익을 염려해 양심에 반한다고 안 할 수가 없다. 민주시민을 교육해야할 교육청에서 학생은 물론 학부모에게까지 서약서를 요구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민주적이지도 않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규정이 일방적인 규제사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학교생활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규정에 따르면 학생들의 관심사와 견해를 표현하는 신문과 소식지를 발행·배포할 권리가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정한 지침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책임있는 발행 형식과 정당한 교육적 관심사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붙여 사실상 학생들의 관심사와 견해가 아닌 학교에서 요구하는 내용에 따르도록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1월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회에서 교사들의 체벌과 학교 측의 복장 규제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긴 신문을 만들었으나 학교장이 발행을 불허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강남교육청의 규정대로라면 이런 사태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셈이다.

이 밖에도 학생자치를 보장하면서도 사실상 학교장의 허락이 없으면 불가능하거나 '불건전한 동아리 활동' 등과 같이 기준이 모호한 내용이 담겨 있어 실제 적용 과정에서 크고 작은 논란과 마찰은 계속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강남교육청이 "앞으로 사회적 변화에 맞게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가운데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논란거리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시행하겠다는 건 교육청의 밀어붙이기식 횡포"라는 비판이 뒤를 잇고 있다.


태그:#인권조례, #학생인권, #서약서, #강남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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