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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수) 삼육대학교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열린 MVP캠프에는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이 특별강연 강사로 초청되었다. 그는 1979년 남민전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2002년 귀국하여 언론인, 작가, 교육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망명 생활 중 쓴 책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9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똘레랑스(tolérance)' 의식을 저변화, 대중화시켰다. 기자가 홍세화 위원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대학에서 '한 사회와 다른 사회와의 만남을 하게 될' 새내기들을 만난 소감이 어떤가?

"인생의 선배로서 한국 사회의 후배들을 만나는 자리는 나에게 크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나도 덩달아 젊어지는 기분이다."

 

- 오늘 독서에 대해 강연하러 오셨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월호 칼럼에서 "선배를 '잘못' 만나 토론의 기회가 생기거나 책을 '잘못' 소개받으면 그때까지 형성한 의식세계에 의문을 던지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얼핏 뜬다"고 언급했다. 대학시절 어떤 책을 '잘못'읽어서 그렇게 되었나?

"리영희 선생, 마르크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난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이라는 글이 뒤늦게 블로그에서 화제다. 말 그대로 '무식한', 책을 읽지 않는 대학생들에 대해 개탄한 글이었다. 서두에 대학이 '먹고 마시고 놀자'판의 위락시설이라고 했는데 이미 이런 대학생활은 옛 일이다. '88만원 세대' 최근에는 '77만원 세대'라고 까지 불리고, 입학하기 전부터 취업과 스펙 쌓기에 여념 없는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독서는 사치가 아닌가?

"이 승자독식의 틀과 피라미드 구조. 절대다수의 88만 원, 77만 원을 만들고 있는 이 틀을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아무리 싸운들 이 틀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이 틀을 바꾸도록 하는 공부와 실천이 필요하다. 지금 젊은이들이 하는 공부는 이 틀은 그대로 둔 채 절대다수가 패자, 루저, 77만 원 알바생이 되는 상황은 그대로 둔 채 거기서 빠져나오려는 공부만 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공부는 이 틀을 바꾸기 위한 공부와 실천이 필요하다."

 

- 최근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똘레랑스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똘레랑스에 대한 비평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난해 웬디 브라운 저의 <관용>이라는 비평서가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다. 새로운 통치전략으로 관용이 이용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일각에서는 다문화라는 가치가 노동시장 개방을 통해 서민들을 국제경쟁으로 몰아넣는 신자유주의의 논리라고 지적받고 있다. 똘레랑스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한가?

"똘레랑스는 어떤 사회에서든,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도 지배세력에 의해서 이용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름이 있는 곳에서는 똘레랑스, 차이, 관용을 보편적 가치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현재 한국 사회는 똘레랑스라는 가치를 지배세력이 지배를 위하여 이용한다기 보다는 '엥똘레랑스 intolérance'를 이용하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똘레랑스가 부족한 점 때문에 지역주의, 반공법, 국가보안법, 사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출생지의 차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러한 '엥똘라랑스 intolérance'가 오히려 더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그럴 단계에 가진 못했다."

 

- 그간 발표한 책과 여러 칼럼에서 '앙가주망'을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지식인의 사회, 정치 참여는 학자 또는 지식인의 임무이다. 현실과 유리된 고답적 학문을 하는 것을 죄악시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교수 본연의 역할인 연구와 강의를 도외시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둘 사이에 항상 존재론적 긴장이 있는 것 같다. 폴리페서와 앙가주망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한국교수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지금 프랑스에서는 대학 내에서만 담론이 이루어지고 자신들의 섬을 쌓아 사회와 격리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는 사회와 계속 소통하고 사회운동과 연개 되어 있었다는 점을 반증한다. 우리는 이러한 프랑스의 우려가 이미 고착되어있다.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몇몇 대학이 자본에 의해 지배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의 기업화가 우리에게는 조금 더 심각한 문제이다."

 

- 최근의 여러 칼럼에서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대학사회에서는 운동하는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다. 홍대 미화노동자들의 농성에 홍대 총학생회가 시끄럽다고 내쫓는 상황도 이러한 대학생들의 인식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대학생들이 연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가?

"홍대 총학의 주장은 학습권이었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란다. 너무 시끄럽다는 거다. 그렇게 공부해서 뭐하나? 뭐하려고 그렇게 공부하나? 그렇게 힘없는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지 못하고 싸우는 것이 고작 시끄러워서인가? 그런 정도의 마인드로 공부해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어렵지만 88만원 세대가 같이 연대해야 할 대상인데도 그러는 것이 슬프다."

 

- 지난달 대학생 주최 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의 강연이 있었는데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활발하고 효과적으로 연대가 가능하다고 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최근 이집트에서 일어난 변혁적인 상황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이 되었을 때 그것에 불을 지르거나 확산시키는 역할은 하겠지만, 어떤 상황을 이루는데 과연 그것이 역할을 할지는 아직 의문이다. 다시 말해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확산 시킬 수는 있지만 임계점에 이르게 하는데 까지 소셜미디어가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는 아직 의문이다."

 

- 과거 운동했던 학생들이 자라나서 386세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들은 어린 시절 '치기어린' 행동을 고결한 희생으로써 살리기보다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쓴다. 얼마 전 동사무소에서 성질 부린 민노당 시의원, 그리고 지난 예산안 날치기 통과의 주역인 이재오 의원이나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까지 운동권 출신이다. 박종철이 죽음으로 지켜주었던 선배가 김문수 의원이다. 좌파에서 철저한 기득권이 된 이들의 행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소위 운동하는 대학생들도 이들의 행보를 따라가진 않을까?

"운동을 그 시기에 하게끔 한 추진력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따질 필요가 있다. 정치권에 운동안 한 사람 없다. 다 모습이 바뀐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운동을 추동한 힘의 절대적인 부분은 권력지향이다. 권력지향이 운동을 하도록 이끈 것이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 운동이 이렇게 변질되는 것을 학생들과 시민이 통제할 수 있느냐가 과제다."

 

- 9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혜성같이 등장해 대중화되었던 '똘레랑스'가 15년이 지난 지금 과연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이루어졌다고 보는가?

"역사가 진보하는 흐름과 마찬가지로 나선형이다.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계속 발전하는 것이다. 직선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는 그래도 좀 나아가는 개선되는 쪽이었다면, MB정권에서는 후퇴하고 있다. 그것은 똘레랑스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도 그렇고 경제적 평등문제, 민주주의 신장 등 다 마찬가지라고 본다. 똘레랑스는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완벽은 있을 수 없다."

 

- 마지막으로 젊은 대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너무나 일찍 한국 사회에 휘둘려 기름진 생존을 목표로 하여 자아실현의 목표를 너무 쉽게 포기하지말길 바란다. 그렇다고 생존조건을 무시할 순 없다. 생존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아실현을 유보할 수는 있다. 유보하되 절대로 포기하지 말길 바란다. 죽는 순간까지 절대 포기하지말자. 젊은 여러분에게 한국 사회를 조금 일찍 산 선배로서 간곡하게 드리고 싶은 말이다."


태그:#홍세화, #삼육대, #똘레랑스,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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