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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가게
 돈키호테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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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달루시아를 떠날 시간이다. 세비야에서 시작한 안달루시아 여행이 론다, 말라가, 코르도바를 거쳐 그라나다에서 끝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A4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하엔(Jaen)을 거쳐 톨레도로 갈 예정이다. 톨레도는 현재 카스티야-라만차의 주도이다. 그러나 톨레도는 과거에 더 화려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톨레도는 서고트 왕국(418-721)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16세기 잠깐 동안 에스파냐 왕국의 수도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톨레도가 역사 속에서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펠리페 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긴 1561년부터다.

톨레도 가는 길에 보니 처음에는 올리브 농장이 지천이다. 그런데 시에라모레나 산악지대를 넘자 올리브 밭보다는 밀밭이 나타난다.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 위에 푸르른 싹들이 자라고, 그 사이로 가끔 포도밭이 보인다. 발데페나스(Valdepenas)를 지나면서 길가로 포도주 공장이 여럿 보인다. 이곳을 지나 우리는 휴식도 취할 겸 기념품도 살 겸해서 푸에르토 라피쎄 근방의 돈키호테 가게(Venta del Quijote)를 찾아간다.

카스티야-라만차에서 만난 돈키호테

돈키호테 동상
 돈키호테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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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돈키호테의 고장하면 콘수에그라(Consuegra)를 생각한다. 그것은 세르반테스(1547-1616)의 소설 <돈키호테(Don Quijote de la Mancha)>가 출판된 1600년대부터다. 소설 속에 보면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풍차가 가장 많은 지역이 라만차의 콘수에그라이기 때문이다. 에스파냐 관광청에서는 최근 돈키호테 관광코스를 만들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부터 풍차들은 가동을 멈추고 관광용으로만 전시·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돈키호테 가게 입구에 차를 세운다. 마당 한쪽에 있는 돈키호테 동상이 우릴 반긴다. 그런데 청동으로 만든 제대로 된 동상이 아니고 철로 만든 조금은 빈약한 동상이다. 어떤 면에서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가 과대망상에 걸린 볼품없는 기사였으니까. 긴 창을 들고 방패로 앞을 가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조금은 처연해 보인다.

포도주 양조장
 포도주 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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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니 레스토랑 겸 주점도 있고, 기념품점도 있다. 먼저 이곳 라만차 지방 포도주를 한 잔 마시고, 옛날 양조장을 이용한 레스토랑도 구경한다. 포도주용 술독과 압착기 등이 그대로 놓여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하다. 벽에는 마늘, 옥수수, 고추, 조롱박 등이 걸려 있다. 기념품 가게에는 돈키호테와 관련된 도자기, 그림, 우산, 미니어처 등이 전시·판매되고 있다.   

타호 강가에서 먹은 점심... '이게 고기야 가죽이야'

타호강 위에 놓인 알칸타라 다리 너머 톨레도
 타호강 위에 놓인 알칸타라 다리 너머 톨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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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가게를 나와 다시 버스로 한 시간쯤 달리니 톨레도에 이른다. 톨레도 입구에 있는 기차역을 지나 타호강에 이르니 강 건너 언덕 위로 우뚝 솟은 도시가 나타난다. 톨레도는 동쪽에서 흘러들어와 남쪽을 돈 다음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타호강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북쪽에 성만 쌓으면 외적이 침입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톨레도는 일찍부터 정치적인 수도로, 요새로, 종교적인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우리는 톨레도의 동쪽에 있는 알칸타라(Alcantara) 다리 건너에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천천히 톨레도를 둘러볼 예정이다. 알칸타라 다리는 타호강에 놓인 가장 오래된 다리다. 로마시대 처음 만들어졌으며, 무어 왕조의 압달 라만 3세에 의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알칸타라라는 이름도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알칸타라는 아랍어로 다리를 의미한다.

알칸타라 다리의 문과 탑
 알칸타라 다리의 문과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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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는 1257년 홍수로 인해 또 다시 크게 파손되었으나, 알폰소 10세(1252-1284) 때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알칸타라 다리는 도심 쪽으로 요새처럼 만든 견고한 방어탑이 있고, 강 건너 외곽 쪽으로는 1484년 건축가 고메스 만리케가 만든 르네상스양식의 탑이 있다. 르네상스식 탑의 상단부에는 가톨릭 국왕부부였던 이사벨과 페르디난드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알칸타라 다리를 건너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에 바로 라 쿠바나라는 레스토랑이 있고, 이곳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다. 자리에 앉으니 먼저 야채 샐러드가 나오고, 조금 있다 소고기와 감자가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소고기였다. 어찌나 질긴지 도저히 자를 수가 없다. 나만 그런가 봤더니 모두가 그 모양이다. 나는 그래도 힘들게 고기를 썰어 씹고 또 씹으면서 넘겨보려고 했다. 그런데 도저히 넘어가질 않는다. 나는 참을 수 없어 종업원을 불렀다.

"이 소고기 한 번 잘라보세요." 그 종업원, 나이프로 잘 안 잘라지자 다른 칼을 갖다 주겠단다. 그러면서 과도를 가지고 온다. "그럼 한 번 잘라 보시죠." 그나마 그 칼로는 조금 잘린다. 그런데 그게 가죽 자르듯이 힘이 든다. 그러면서 잘라 먹으라는 표정이다. 하도 화가 나서 우리말로 "그럼 먹어봐"하고 눈을 부라렸다. 그제서야 종업원이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를 한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라 쿠바나 식당
 우리가 점심을 먹은 라 쿠바나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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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가이드를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리들의 불만사항을 전달했다. 그제서야 가이드가 레스토랑 사장에게 문제점을 얘기한 모양이다. 나는 가이드에게 우리들은 이런 소고기를 먹었지만, 다음에 오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 가만있으면 안될 것 같아 이렇게 컴플레인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한마디로 무척 기분이 나빴다.

나중에 인솔자와 가이드가 와서는, 레스토랑 주인이 음식을 다시 만들어 제공하겠다는 것을 시간이 없어 사양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주인이 사과의 뜻으로 포도주를 12병 주더라는 것이다.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처음부터 좋은 고기를 사용하지. 우리는 바로 톨레도 시내를 구경해야 하는데, 그 놈의 포도주를 들고 다닐 수도 없고, 포도주를 버스에 갖다 놓느라고 인솔자만 이래저래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그 포도주를 먹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걸 새옹지마라고 하나. 포도주를 따다 서호석 선생이 손을 다치고 말았다. 포도주 코르크 마개를 따는 오프너가 완전하지를 못해 힘을 주다 보니 병의 상단부가 깨진 것이다. 그 바람에 손을 베어서 병원에 가서 서너 바늘을 꿰매야 했다. 제대로 된 소고기 구이를 내놓았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 텐데, 정말 질긴 소고기 때문에 이래저래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왼손에 책을 들고 서 있는 세르반테스 동상

쏘코도베르 광장 동쪽에 있는 파사드
 쏘코도베르 광장 동쪽에 있는 파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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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 후 알칸타라 다리를 다시 건넌 우리는 강변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걷다가 왼쪽의 미라데로 길로 들어선다. 이곳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언덕 위 도심까지 순식간에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에스컬레이터 왼쪽으로는 산타페 박물관과 산타크루즈 박물관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리니 남북으로 이어진 아르모스 큰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남쪽으로 올라가면 톨레도 도보여행의 출발지 쏘코도베르 광장(Plaza de Zocodover)에 이르게 된다.

쏘코도베르 광장은 많은 사람이 모여 행사와 축제를 열고, 필요에 따라 시장이 열리기도 하는 공공의 장소다. 1500년대 후반 카스티야 양식의 마요르 광장으로 바꾸려 했으나 교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현재 광장 주변에서는 여러 가지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건물이 광장 동쪽에 있는 5층짜리 파사드이다. 이것은 무어왕조 때 성벽을 따라 지어진 건물로, 정면이 광장 쪽을 향하고 있다.

세르반테스 동상
 세르반테스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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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파사드 한 가운데 있는 문을 통해 광장 반대편(동쪽)으로 나가면 타호강으로 내려가는 비교적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이 길 한가운데는 세르반테스 동상이 서 있는데, 2005년 <돈키호테> 발간 400주년을 기념해 시당국에서 세웠다고 적혀있다. 청동주물로 아주 정교하면서도 예술성 있게 잘 만들었다. 세르반테스는 왼쪽에 책을 들고, 조금은 오만한 자세로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여기서는 길 아래로 타호강이 잘 내려다보인다.

사자의 문
 사자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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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바리오 거리를 지나 대성당으로 간다. 가는 길에 로하스(Rojas) 극장을 만난다. 이곳에서는 연극, 음악, 무용 공연이 열리고 있다. 극장을 지나 대성당을 동쪽으로 돌아가면 사자의 문(Puerta de los Leones)이 나온다. 그러나 이 문이 만들어졌을 때 이름은 성모승천을 기뻐한다는 의미에서 기쁨의 문(Puerta de Alegria)이었다. 그래서인지 문 위 고딕식 아치 안에 성모가 승천하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그러나 1646년 문 앞에 사자상이 조각된 철창문이 만들어지면서 사자의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사자의 문은 청동으로 된 두 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문 사이 위쪽으로 마리아상이 있고, 양쪽 문 밖으로는 세 명씩 여섯 명의 사도가 호위하고 있다. 이 문을 지나 성당의 남쪽으로 가면, 관광객들이 들어가는 출입문이 나온다. 이 문이 평탄한 문(Puerta Llana)이다.

평탄한 문
 평탄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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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문은 이름이나 조각이 전혀 종교적이지 않다. 평탄한 문이라는 이름도 계단이 없이 평탄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붙여졌다. 이처럼 계단이 없게 만든 이유는, 과거에는 건축자재를 실어 나르기 위해, 현재는 성체현시대를 옮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 이 문으로는 마차나 수레가 지나다닐 수 있다. 평탄한 문 입구에 보면 1800년이라는 라틴어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1800년 이그나시오 한에 의해 최종적으로 보수되었음을 말해준다. 문은 이오니아식 석주를 한 그리스 신전 양식으로 종교적인 조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돈키호테 관광코스

돈키호테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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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관광코스는 마드리드와 톨레도 중간쯤에 있는 에스키비아스(Esquivias)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세르반테스가 1584년 12월부터 이곳에 살면서 <돈키호테>를 구상하고 썼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가 살던 집은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다. 돈키호테 관광코스는 톨레도를 거쳐 씨우다드 레알과 알마그로까지 내려간다.

돈키호테 관광코스는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쿠엔카까지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간다. 그리고 중간에 만나는 도시가 푸에르토 라피쎄, 캄포 데 크립타나, 엘 토보소, 벨몬테 등이다. 이들 도시에서 돈키호테는 객주집을 전전하며 가상의 모험을 펼친다.

일반적으로 돈키호테 관광코스는 라만차 주 쿠엔카에서 끝난다. 그러나 돈키호테의 모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라곤과 카탈루냐까지 이어진다. 아라곤의 몰리나, 싸라고사, 바르셀로나 등도 돈키호테가 모험을 펼친 중요한 도시다.



태그:#카스티야-라만차,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쏘코도베르 광장, #톨레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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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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