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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가 울렸다. 어? 낯선 전화번혼데... 받을까 말까, 몇 번 망설였다. 혹시 주문했던 책이 온건지도 모르지, 얼른 전화를 받았다. 낯선 목소리, 상냥한 젊은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여긴 CBS 부산 라디오방송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아가씨는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를 했다고 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그것도 부산도 아닌 이곳 양산까지 인터뷰하러 오겠다고 참... 어쨌든 나는 감사하다고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얼떨결에 약속을 하긴 했지만 어떻게 한다지? 난감했다.

 

내 인생에서 방송을 타 본 일이라고는 수년 전, 교회 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방송부에서 얼떨결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30주년을 맞이한 것을 축하 합니다'라고 한 마디 하라고 해서 앵무새처럼 따라서 해 본 것이 처음이었고, 그건 순전히 교회방송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라디오방송 인터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뭐 어때 인생은 늘 새로운 도전 앞에 서는 것.

 

저녁시간에 이메일로 질문지를 보내왔다. 질문은 6가지. 주어진 시간은 6, 7분 정도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다 말할 수 있을까. 남 인터뷰는 해봤어도 내가 그 대상자가 되어보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어쨌든 새로운 도전을 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기왕에 하게 된 일,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이 프로가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작은 일에도 최선을!

 

지난 11일에 광명역에서 발생한 KTX 고속철도 탈선 사고는 선로작업 과정에서 '너트' 하나 제대로 안 조여서 일어난 사고였고, 대부분 내가 했던 일을 좀 더 잘했더라면, 충분히 준비했더라면, 하고 후회하게 되는 일들은(글 쓰는 것이든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였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완벽하게 준비하자 하는 마음으로 양해를 구하고 밤늦도록 책상 앞에 앉아서 질문에 대한 답변을 궁리했다.

 

아무리 써보왔으나 촌철살인의 명문장도, 명쾌, 유쾌, 통쾌한 한 마디의 멋진 표현도, 한 마디로 핵심을 꿰뚫는 말이나 마음에 드는 말이 떠오르지 않아 불만족스러웠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니 분량만 점점 늘어갔다. 어쩐다지... 밤늦도록 앉아 있다가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머리가 맑을 때 다시 생각하자 싶어 침대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 출근배웅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어제 정리하다 만 글을 제차 정리했다. 내 마음에도 드는 시원한 답변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내게 없는 것을 만들어내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실하고 명쾌하게 대답하고 싶은 욕심은 있건만. 갑작스럽게 받은 인터뷰 요청, 그리고 평상시에 염두 해 두고 있던 생각이 아닌 생각을 짧은 시간 안에 명쾌하게 표현하기란 내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아... 생각의 게으름은 인생의 게으름이라고 했거늘, 좋은 답변 하나 제대로 준비 못하는구나, 자책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나는 오늘 있을 인터뷰에 온통 신경이 쓰여서 다른 일을 도무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뭐람, 하루 일과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은 멈춰버렸고 내 시간만 빼앗기고 있으니, 과연 인터뷰를 하기로 한 게 잘 한 일일까. 매도 빨리 맞는 것이 좋다고 머리는 지끈지끈, 뒷목이 뻐근하고 눈이 쓰라리고 머리가 무거웠다. 앞이마엔 돌덩이 하나 올려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오후 4시 30분에야 지하철을 탔다고 연락이 왔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어느새 저녁시간. 키가 껑충한 아가씨가 택시에서 내렸다. 집으로 와서 잠깐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심성도 연한 새순처럼 부드러운 아가씨였다.

 

곧 인터뷰를 시작했다. 내가 너무 열심히 준비했나 보다. 분량이 너무 많단다. 대부분의 내용을 삭제하다 보니 중요한 게 다 빠져 나간 듯한 느낌이었고, 말을 끊었다 이어갔다 하기를 여러 번(?). 자연스럽지 못한 말을 이어가다가 막히고 또 막혀서 다시 해야 할 땐 앞에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도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녹음기를 내 앞에 대고 말하는 것이 신경 쓰여 평상시처럼 목소리나 말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눌변이라도 이정도로 버벅거리진 않는데 왜 이러지?! 아, 이건 아닌데... 다시 연습을 해 보고 시작하면 작은 녹음기가 내 앞에 오면 다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마치 원래 언어를 전혀 몰랐던 사람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지면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고 혀는 굳고 머리는 허옇게 비워지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팠다. 난감했다. 이러다가 인터뷰를 끝낼 수는 있을까 깜깜했다.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다. 도무지 끝마무리가 안 될 것 같았던 인터뷰가 끝났다. 에고 에고~

 

멀리서 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서 함께 시내 나가서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동행해 세 사람이 함께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지하철역까지 태워주고 사진 한 컷 찍고 돌아왔다. 역시 난 방송체질이 아닌 모양이다. 온 신경을 거기다 쏟고 있어서 있는 대로 진이 다 빠져버렸다. 탈진상태로 침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뻗어버렸다.

 

내 생전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 인터뷰라는 것을 해 보았다. 아으~ 뭔가를 자연스럽지 않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하다는 것은 내 몸에 맞지 않는 갑옷을 입은 것처럼 거북한 일이라고 느꼈다. 역시 난 글로 사람을 만나고 글로 나를 표현하는 게 더 자연스럽고 훨씬 편한 사람임에 틀림없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드디어 때는 토요일(2011.2.19), CBS 라디오 방송 전파를 타는 날이었다. 평소에 TV도 잘 안보고 라디오는 더더구나 안 듣던 나는 구석진 곳에 처박아 둔 라디오를 꺼내 먼지를 훌훌 털고 전기 코드를 꽂고 CBS 채널을 찾아 주파수를 고정시켜놓았다.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드디어 낮 12시 5분이 되자 '행복한 초대석'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한 목사님이 책을 소개하고 아나운서와 주거니 받거니 함께 책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다.

 

낮 12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 이 프로의 2부 순서를 막 시작하기 전 '크리스천 책을 만나다'에서 나의 인터뷰 내용이 나왔다. 나는 방송으로 듣는 내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을 것 같은 예감으로 지레 질려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끔찍할 정도는 아니었고, 낮게 깔린 저음의 차분한 목소리가 듣기 싫진 않았다.

 

좀 다듬어지지 않아서 거친 곳이 몇 군데 있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괜찮았다. 또한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그 짧은 시간 안에 다 하려고 하니 오히려 꼭 해야 할 말들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내용 없는 인터뷰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대충 할 말은 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무엇보다도 편집을 깨끗하게 잘 해준 리포터 덕분이다. 어쨌든 인터뷰에 신경 쓰여서 녹초가 됐었는데 보람은 있는 것 같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모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태그:#라디오방송 인터뷰, #CBS라디오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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