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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복판에서도 이북식 순대를 맛볼 수 있게 됐다. 북한 출신인 김철씨와 김정희씨 부부가 작년 12월, 한인타운에 순대 전문 음식점을 열고, 상호명을 '유향순대'로 내걸었다. 유향은 성경에서 동방박사들이 예수께 바쳤다는 선물 중 하나다.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김철 씨는 90년대 초반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 1세대다. 당시 외화 부족에 시달리던 북한은 '외화 벌이'를 위해 노동자를 러시아나 동구권으로 파견했다. 90년 초반 하바로프스크로 파견됐던 김씨는 러시아 주재 한국 영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2001년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김씨 부부가 거의 10년 만에 미국에서 손수 가게를 장만한 것이다.

김씨 부부가 미국에서 거쳤던 직업만 줄잡아 20여 가지라니 김씨의 거친 손마디가 고됐던 지난 시간을 짐작케 했다. 다행히 그간의 고생이 든든한 사업 밑천이 됐다. 김씨는 한국에서부터 음식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고, 김정희씨는 미국에 와 줄곧 식당 종업원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유향순대의 순대국은 우거지와 선지가 들어가 해장국처럼 시원하다.
 유향순대의 순대국은 우거지와 선지가 들어가 해장국처럼 시원하다.
ⓒ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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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호기심으로 한두 번 찾아오게 만들 수 있어도 맛없으면 붙들어둘 수 없는 곳이 음식점이다. 유향순대는 이북식이라 독특하다.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전통적인 양념만 사용해 국물을 우려내는 북한식 조리법을 고집한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일까. 료리차림표(메뉴의 북한식 표현)는 단순하다. '순대국'이 기본이고 순대만 나오는 '순대접시', 순대에 머릿고기, 내장, 간 등이 함께 나오는 '모듬순대' 이렇게 세 가지다. 얼마 전부터 곱창전골도 추가했다.

남한 순대는 당면으로 속을 채우지만 북한은 찹쌀과 내장으로 속을 채운다. 유향순대는 북한식 찹쌀순대에 한국사람 입맛에 맞게 당면도 넣어 부드러우면서 쫄깃함을 더했다. 직접 도매상을 찾아 구입한 신선한 돼지 대창에 15가지 재료로 만든 속을 채워 넣어 만든 순대다.

순대국은 돼지고기와 부산물을 넣고 밤새 고아 만든 육수가 기본이다. 순대국 특유의 텁텁한 맛이 적고, 우거지와 선지를 넣어 해장국처럼 시원한 맛을 더했다. 여기에 신선한 부추무침을 넣고 먹으면 아삭아삭한 부추의 식감과 시원한 국물맛이 어우러진다.

유향순대의 순대국은 우거지와 선지가 들어가 해장국처럼 시원하다.
 유향순대의 순대국은 우거지와 선지가 들어가 해장국처럼 시원하다.
ⓒ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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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음식은 한국 음식에 비해 덜 자극적이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덜 맵고 덜 짜다는 말인데, 김씨는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고 자극적이어서 처음에 한국 음식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겨울이 긴 북한은 남한에 비해 젓갈을 적게 쓴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젓갈과 고춧가루, 설탕이 많이 들어가는 한국 김치와 달리 유향순대의 김치는 훨씬 말갛고 담백하다.

음식 재료의 명칭도 남북이 많이 달랐다. 김씨는 북한에는 '찌개'란 말이 없다고 했다. 된장찌개도 장국이라고 하고 생선 매운탕도 그냥 생선국이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누룽지를 북한에선 가마치라고 하고, 주스도 과일단물이다. 설탕은 당가루고, 양파는 동글파라고 부른다. 한국에선 음식과 집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의식주'라고 말하지만 북한에서는 '식의주'라고 표현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정 탈북'(가족 전체가 함께 탈북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김씨는 "자녀 교육 문제로 미국을 찾는 새터민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들도 새터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심해지는 한국 사회를 떠나고 싶은데다, 자녀들마저 한국 교육 과정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니 차라리 미국 행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교과 과정이 다른 학과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치열한 생존 경쟁에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코리안드림에 실망하고 아메리칸드림을 찾았지만 힘들긴 마찬가지. 기술도, 지위도, 인맥도 없는 건 한국이나 다름없고, 오히려 언어 장벽과 불안정한 체류 신분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가중된다.

김 씨 부부(오른쪽)와 쉴만한물가교회 교우(맨 왼쪽). 개업 이후 한동안 김 씨 부부가 다니는 쉴만한물가교회의 교인들이 자원봉사로 서빙을 도왔다.
 김 씨 부부(오른쪽)와 쉴만한물가교회 교우(맨 왼쪽). 개업 이후 한동안 김 씨 부부가 다니는 쉴만한물가교회의 교인들이 자원봉사로 서빙을 도왔다.
ⓒ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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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부부가 미국에 온 2000년대 초반은 새터민이 거의 전무하던 때라 생활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었다. 몇 년 동안 씨름한 덕에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김씨는 뒤늦게 미국을 찾는 새터민들의 맏형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운전을 못하는 후배 새터민들을 위해 쇼핑을 같이 다니기도 하고 직접 일자리를 알선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김씨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던 새터민이 유향순대 개업을 앞두고 직접 마감 작업을 거들기도 했다.

유향순대를 꾸려가는데 교인들의 도움도 컸다. 개업 이후 한동안 김씨 부부가 다니는 쉴만한물가교회의 교인들이 자원봉사로 서빙을 도왔다. 김씨 부부가 빨리 자립할 수 있도록 인건비를 줄여주려는 교회 식구들의 배려였다. 김씨는 유향순대를 통해 자신이 도움을 받은 것처럼 더 많은 새터민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 유향순대(YU HYANG SOONDAE) 954 S.Norton Ave. LOS ANGELES CA 90006 / 323- 934-5677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주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유향순대, #새터민, #탈북, #미국,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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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갈등전환센터 센터장 (서울시 이웃분쟁조정센터 조정위원, 기상청 갈등관리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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