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팔당유기농단지 생명평화미사 1주년 기념미사'에 참석한 최덕기 주교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팔당유기농단지 생명평화미사 1주년 기념미사'에 참석한 최덕기 주교
ⓒ 최지용

관련사진보기

"신부님들께 편지를 쓴다니 닭살 돋을 일이지만, 신부님들의 마음이 항상 고맙고 힘이 됐습니다. 그냥 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소송에 이기고 보니 신부님들의 '영험한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최요왕 팔당유기농민의 말에 미사에 참석한 신도들이 한바탕 웃었다. 천주교 신부들의 '영험한 힘' 덕분에 팔당유기농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농담'이었지만, 팔당에서 보여준 신부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떠올리면 그리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팔당유기농단지 보존을 위해 '4대강사업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천주교연대) 소속 신부들이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열어온 '생명평화미사'가 1주년을 맞은 17일. 팔당유기농민들은 미사 중간 천주교연대 신부들과 신도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낭독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365일을 꼭꼭 채워 미사를 드려온 신부들과 신도들, 팔당유기농민 모두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두물머리 일대에 체육공원, 자전거 도로 등을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농민들의 하천점용허가를 취소했지만, 지난 15일 법원은 '하천점용허가취소 처분이 부당'하다며 농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유기농이 강을 오염시킨다'는 증명되지 않은 정부의 주장에 상처 받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강제철거 압박에 시달려 온 농민들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정부의 첫 패배이며,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던 '4대강 사업'이라는 철옹성에 균열 생기기 시작했다.

12가구 밖에 되지 않던 팔당유기농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그들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함께 했던 천주교연대 사제들의 힘이 컸다. 1주년 기념 미사가 진행된 이날, 두물머리에는 작은 축제가 열렸다.

"두물머리의 승리를 바탕으로 4대강 사업 반대운동에 나서자"

양수리를 가로지르는 45번 국도 다리 아래 차를 세우고 500여m 걸어서 비닐하우스 성당이 있는 두물머리 강변까지 가는 길. 지난해 12월, 생명평화미사 300일을 맞아 두물머리를 찾았을 때와는 기분부터가 달랐다.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 강바람이 찼지만, '여기도 곧 허물어질 것'이라는 걱정은 사라졌다. 대신 이곳에 다시 푸른 싹이 돋고, 빨갛게 익은 유기농 딸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가 생겼다.

당시 팔당농민들의 상황은 매우 암울했다. 함께 싸우던 12가구 가운데 7가구가 경기도와 합의하고 이주를 결정했고, 또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정진석 추기경(서울교구장)의 발언으로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유영훈 팔당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팔당유기농민의 싸움은 생존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4대강 사업이라는 총체적인 모순과 맞서는 것"이라며 "우리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운동을 중단할 수 없다"고 투쟁 의지를 밝혔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4대강 예산이 날치기 통과됐고, 두물머리는 오는 3, 4월 강제철거 당할 위기였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나, 팔당유기농민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재판이 열렸다. '4대강 사업 목적이 점용허가를 시급히 철회할 만큼 공익적으로 우월하기 않고, 오랫동안 유기농을 한 농민들의 신뢰이익이 쌓여 점용허가 철회권이 제한되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은 기적과 같았다. 개발이익보다 농민들이 쌓아온 농사의 가치가 인정받은 것이다.

팔당 두물머리 생명평화 1주년 미사에서는 법원의 판결을 반기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100여 명의 신도들이 비닐하우스 안을 가득 채웠다.

강론을 한 천주교연대 대표 조해붕 신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간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생명력을 얻었다"며 "작지만 중요한 재판에서 승소했다. 무분별한 4대강 사업에 맞서는 작은 움직임의 기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는 그동안 천주교 내 4대강 사업 반대 여론을 이끌어 온 최덕기 주교(수원교구장)도 참석해 기쁨을 같이 했다. 최 주교는 "팔당농민분들, 천주교 사제들과 이곳에서 기도해 주시는 신도들에게 감사하고 앞으로도 좋은 일이 더 있기를 기도한다"며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팔당유기농민 서규섭씨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까지 고통속에서 2년을 지내왔다"며 "팔당농민만의 승리가 아닌 천주교 사제분들, 신도들, 여러분 모두의 승리다. 두물머리의 승리를 기반으로 4대강 사업 반대운동에 힘차게 나서자"라고 말했다.

생산자인 팔당유기농민들의 싸움을 함께 해온 소비자들도 함께했다. 양정순 팔당생명살림생활협동조합 이사장은 "생명평화미사 1년을 맞아 정말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신부님과 농민들, 신자들과 응원해준 시민들의 마음이 재판부를 움직인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팔당유기농단지 생명평화미사 1주년 기념 미사를 마친 천주교연대 조해붕 신부(왼쪽), 이용훈 주교, 서상진 신부가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팔당유기농단지 생명평화미사 1주년 기념 미사를 마친 천주교연대 조해붕 신부(왼쪽), 이용훈 주교, 서상진 신부가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 최지용

관련사진보기


"정부, 판결 무시하고 사업 강행할 가능성 있다"

이어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시간이 계속됐다. 천주교연대 사제들은 1년 동안 쉬지 않고 미사 진행을 도운 신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팔당유기농민들은 편지와 노래 공연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미사 진행을 도왔던 로사리아(세례명)는 "지난해 여주 신륵사 앞에서 강이 파헤쳐진 모습을 보고 여기로 오게 됐는데, 이제 여기 계신 모두를 사랑하게 됐다.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유영훈 위원장이 숨겨 놨던 기타 솜씨를 뽐내며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라고 노래하자 모두가 따라 부르며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면 팔당유기농단지의 싸움은 승리로 끝난 것일까? 유 위원장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며 지나친 승리감을 경계했다.

유 위원장은 "승리의 축하는 하루로 충분하다"며 "정부와 경기도는 여전히 3, 4월에 강제철거를 진행할 예정이고 재판 결과에도 불구하고 사업진행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천점용허가 취소처분은 부당한 것으로 판결났지만 소송대상이었던 양평군이 즉시 항소에 나섰고, 정부는 강제철거집행 허가 등 이미 공사 진행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마친 상태다. 정부가 이번 판결을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팔당공대위는 이번 판결을 바탕으로 정부의 하천점용허가 취소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공사 진행을 막는다는 계획이다.

유 위원장은 "항소심, 대법원 판결까지 가야 한다"며 "농민들에 대한 압박도 더욱 심해질 것이고 마음을 놓을 없다. 더욱 긴장된다"고 말했다. 그는 "농사를 지으실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농사짓는다"고 답했다.

유영훈 팔당공대위 위원장과 농민들이 노래공연을 하고있다.
 유영훈 팔당공대위 위원장과 농민들이 노래공연을 하고있다.
ⓒ 최지용

관련사진보기



태그:#4대강, #4대강 사업, #팔당, #팔당유기농, #이명박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