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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평화 역사 여행,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사키마 미술관을 소개하는 첫 번째 기사에서 잠깐 언급하였던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 강연을 소개합니다.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를 처음 알게된 것은 녹색평론을 통해 국내에 출간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고 하는 긴 제목의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책은 전쟁과 평화, 평화헌법, 경제성장 그리고 빈곤과 발전,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경제민주화, 국가의 폭력성에 관하여 새로운 지식과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특히 과잉발전을 중단하고 '대항발전'을 추구하자는 그의 주장과 선거보다 제비뽑기과 훨씬 더 민주적이라는 주장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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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는 쓰지 신이치로 교수와의 대담집이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미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살아온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살아온 이야기(어린시절, 해병대원, 베트남 반전운동, 반전평화운동 등)와 오키나와에서 살면서 체험한 헌법 9조(평화헌법) 이야기, 그리고 환경과 평화의 교차점에 관한이야기입니다.

"아동노동은 강제적이고 부당하다고들 말하는데, 그럼 어른들이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위해 일생의 대부분을 낭비하는 것은 과연 강제노동일까요?, 아닐까요?"

당시 서평기사에서도 소개하였지만,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이라는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입니다. 평화와 행복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도록 해주는 책이었지요.

전쟁의 기억을 다음세대에게 전해야 한다

두 권의 책을 통해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오키나와 여행을 앞두고 현지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의 1순위는 바로 '러미스' 교수였습니다.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강연회는 2011년 1월 16일(일) 오후 3시 30분부터 오키나와에 있는 '사키마 미술관' 강의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저희 일행이 사키마 미술관에서 <오키나와 전도(戰圖)>를 비롯한 오키나와 전쟁을 담은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을 때, 훤칠한 키에 약간 구부정한 백안의 노신사가 나타났습니다. 한 눈에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지요.

그는 먼저 역사적으로 오키나와를 이해하려면 사키마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오키나와 전도(戰圖)>를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많은 증언을 듣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아마 그들의 꿈에도 나타났을 것이다. 저 그림을 보면 현대의 오키나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루키 부부가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은 전쟁의 기억을 다음세대까지 남겨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에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데, 6학년 아이들이 소풍에서 오키나와 전쟁을 표현하는 진지한 연극을 공연하였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계획이 담긴 근대 지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 계획이 담긴 근대 지도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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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키나와를 찾아 온 한국인들에게 이런 강의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오래된 책을 한 권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일본 지도>라는 책인데 절판된 책이라고 하였습니다. 책 제목은 최근인데, 책은 이미 절판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이 책에서 말하는 최근은 바로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던 무렵이라고 합니다. 이 지도에는 일본, 조선반도, 오키나와, 사할린, 북해도, 류큐가 모두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이 조선반도 침략하기 30년 전에 류큐제국을 먼저 점령하였답니다. 당시 지도를 보면 일본이 만주도 정령할 것이라는 기대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러미스 교수가 보여준 지도는 일본이 류큐, 타이완, 조선을 모두 식민지 지배하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키나와에서도 창씨개명과 언어말살 정책이 이루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조선반도와 타이완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실패하였지만, 오키나와에 대한 지배는 성공한 것이지요.

"지금 학교에서는 오키나와 말을 가르치지 않는다. 중년과 노년의 사람들만이 오키나와 말을 할 줄 안다. 목수, 건축일을 하는 현장에는 오키나와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일을 배우는 젊은 사람들만 아직도 오키나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1945년에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지 못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오키나와와 비슷한 처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오키나와 사람들 사이에는 자신들이 '일본인이다, 아니다'하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였습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 신문을 읽는다

러미스 교수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가진 정체성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어떤 신물을 보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세계관이 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일본 본토 사람들은 주로 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신문을 읽는다. 오키나와 사람들 중에도 이 세 개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오키나와 타임즈와 류큐 신보를 읽는다. 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 신문을 읽는 사람들과 오키나와 타임즈와 류큐 신보를 읽는 사람들은 세계관이 전혀 다르다."

일본류큐 지배를 시작할 무렵, 류큐 정부는 언어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본토가 원하는 대로 양보했지만 군사기지 설치는 반대하였다고 합니다. 오키나와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 것은 일본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군 기지가 있으면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믿지 않는다. 군사기지가 있어서 더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지금도 일본정부와 언론에서는 중국과 북조선의 미사일이 오키나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사일이 오키나와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것입니다.

"본토에 있는 일본인들은 미군이 주둔하고 주둔하고 있으면 더 안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키나와 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강연을 듣는 YMCA 회원들
 강연을 듣는 YMCA 회원들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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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군사기지가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미군기지가 왜 오키나와에 있어야 하는가 물으면 미, 일 정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만 그 또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아시아의 지도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오키나와는 타이완이나 필리핀과 가깝다. 그렇지만 일본이 타이완이나 필리핀과 전쟁을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말이 베이징이나, 평양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오키나와보다, 큐슈가 더 가깝다. 진짜 가까운 것은 나가사키가 더 가깝다. 오키나와가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장소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미군 해병대원으로 오키나와에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해병대에 근무할 때 배운 전략으로 보면 군부대는 한 곳에 집중하면 안 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고 하더군요. 미군은 진주만 공격을 받았을 때 뼈져린 경험을 하였다는 것이지요.

군사전략적으로 보았을 때 오키나와에 군사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바람직한 군사 전략도 아니라는 겁니다. 러미스 교수는 미군기지가 세계적으로 많이 있는 것은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제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오키나와는 미 해병대의 '전리품'이다?

"오키나와에 있는 카데나기지는 무기와 군사시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집, 교회, 슈퍼, 카운슬링센터, 골프장, 리조트, 호텔, 교도소까지 있는 하나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와 있는 것이다. 카데나 기지는 그냥 미국이다. 사용하는 돈은 달러다. 기지 안에는 세 가지가 없다. 노숙자, 고령자, 생산노동자가 없다. 막대한 소비를 하고 있지만 생산은 하지 않는다."

러미스 교수는 카데나 기지나, 후텐마 기지는 미국의 작은 도시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미군에게 오키나와 기지는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 여러 있는 기지와는 다른 특별한 곳이며, 바로 이 점령지라고 하는 특별한 점 때문에 미군이 오키나와 사람들을 대하는 생각이나 의식도 많이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2차 대전에서 미군이 침략해서 뺏은 땅이 오키나와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1972년까지 오키나와는 미국 식민지였고 미군에 의해서 지배당하였다. 해병대입장에서 보면, 오키나와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1972년에 닉슨 대통령과 사토 총리의 회담으로 오키나와가 반환되었지만, 기지 밖을 반환하였을 뿐 기지 내부는 여전히 미국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군은 전리품을 일본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한편, 오키나와 문제와 관련하여 본토 사람들의 태도는 이중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일본 본토 사람들은 평화헌법과 미일안보조약(미군 주둔)을 동시에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반 정도는 평화헌법을 지지하지만, 다른 반은 '일미안보조약'을 지지한다는 것이지요. 러미스 교수는 본토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오키나와 때문이라고 합니다.

"평화헌법도 지키면서 미군기지가 있으면 안심할 수 있다는 이중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본사람들의 의식에서는 오키나와는 어떤 때는 해외라고 생각하고 어떤 때는 자국영토라고 생각한다. 자기들이 편리한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므로 일본의 영토 내에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일미안보조약 의무사항을 이행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본토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해외인 오키나와에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 본토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 겁니다.

후텐마 기지이전 문제는 일본 사회의 최대 쟁점 중 하나입니다. 이 기지문제 때문에 하토야마 총리가 사임하였고, 다음 총리도 사임 당할지 모르는 뜨거운 현안이라는 겁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때 현외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하였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총리가 사임하였지요.

저자 사인을 해주고 있는 러미스 교수
 저자 사인을 해주고 있는 러미스 교수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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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미안보조약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토야마 총리가 그만두고 난 후 미일, 방위조약에 대하여 여론 조사를 하였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일, 미 안보조약을 지지하는 사람이 7%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토에서는 60%넘게 찬성이 나왔다더군요.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 때도, 후보 2명 모두 기지이전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는 별로 대안이 없다. 어디로 옮기더라도 결국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만약에 본토 사람들이 기지 이전을 반대하면 설치하지 못한다. 그런데, 오키나와에서는 93%가 반대하는 기지를 그대로 두고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제 이런 정부의 정책을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경제 붐이 일어났을 때 본토 여기저기에 공항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기지 이전을 검토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이전할 수도 있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곳에 가서 주민들의 의견을 듣거나 찬성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키나와에는 정치인들이 찾아와서 현외 이전이 불가능하니 그냥 오키나와에 두자고 주민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결국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전에는 차별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차별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현 지사 선거 결과를 보면 오키나와 주민들의 이런 의식이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합니다.  현외 이전을 주장한 후보는 당선되었고, 국외(괌) 이전을 주장한 후보가 낙선하였다는 것이지요. 오키나와 사람들의 민의가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였습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오키나와 현외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선택한 것은 본토에 대한 분노가 담긴 것이다. 국외 이전을 선택하지 않고, 현 외 이전을 선택한 것은 대단한 각성이 일어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본토의 평화지지자들에게 반발을 살 수 있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러미스 교수는 오키나와도 한국도 제국주의의 피해자이지만 자신이 보기에 오키나와와 한국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미군의 입장에서 볼 때 오키나와는 상륙해서 매일 매일 전투를 치르면서 뺏은 땅이기 때문에 전리품으로 여기지만 한국을 '전리품'으로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강연 말미에는 질의응답도 이어졌습니다. 후텐마 기지 현외 이전에 찬성하는 93%중에서 오키나와에서 현지인과 본토인의 비율? 오키나와는 일본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오키나와에 본토인의 비율은 대략 10%정도 된다. 93%에는 본토에서 온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오키나와 사람들일 것이다. 미군이 지배할 때는 일본 식민지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미군의 식민지배가 강압적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고 일본인이 되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본토사람들과 같아지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일본의 평화헌법이 사라지지 않고 오키나와 사람들도 똑같은 일본 사람으로 취급된다면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를 없앨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 말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만,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오키나와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20%가 오키나와 독립운동을 지지한다."

일본의 전쟁능력은 어디까지인가? 자위대의 전쟁수행 능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평화헌법이라고 하지만 방어만 하는 평화헌법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자위대는 첨단 장비는 많이 가지고 있지만, 60년 동안 전쟁을 하지 않았고 직업군인이기 때문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다. 미군은 세계 도처에서 늘 전쟁을 수행하고 있지만, 자위대는 전쟁을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다. 자위대는 전쟁 수행능력이 떨어질 것이다."

헤노꼬 기지 이전 반대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헤노꼬 주민들의 반대운동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생명을 지키는 모임에서 2000일 이상 현장을 지키고 있다. 헤노꼬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주민들 중에는 찬성하는 분들이 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대부분 반대한다.

시장 선거에서 과반수 이상이 반대표를 던졌다. 비폭력주의 운동을 하고 있다. 작업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못을 치면 못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방해운동을 하고 있다. 수년 동안 제자리 상태를 보고 있다."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의 강연은 해질 무렵까지 이어졌습니다. "아사히, 마이니찌, 요미우리 신문을 읽는 사람들과 오키나와 타임즈와 류큐 신보를 읽는 사람들은 세계관이 전혀 다르다"는 러미스 교수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일본 영토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오키나와와 일본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그의 당부를 많은 한국 사람들이 꼭 기억해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5일부터 18일까지 제가 일하는 단체 회원들과 3박 4일 일정으로 오키나와 평화, 역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태그:#오키나와, #더글러스 러미스, #대항발전, #경제성장,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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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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