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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 태백산맥문학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 태백산맥문학관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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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백산맥>의 감동이 살아있는 벌교

바람이 차다. 차창 밖으로 을씨년스런 풍경들이 스쳐지나간다. 순천을 지나 벌교로 향한다. 벌교라는 도시는 참 특이한 도시다. 보성군에 속한 읍이면서 독립된 행정구역처럼 불려진다. 작은 도시지만 규모가 있다. 고흥반도로 들어가는 길목이면서 보성과 순천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다.

벌교가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등장한 덕도 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벌교는 당시 조정래 작가가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곳이다. <태백산맥>은 남도의 작은 도시 벌교에서 시작되는 이념 갈등에서 시작된다.

한국전쟁이 있기 전 여수지역에 주둔한 군인들이 일으킨 여순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갈등이 대립으로 치닫는 상황으로 변해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소설 <태백산맥> 원고 첫 페이지
 소설 <태백산맥> 원고 첫 페이지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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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탄생되던 80년대는 당시로부터 30년이 지났지만 사건의 해석은 여전히 일방통행이었다. 반공만이 옳은 것이고 나머지는 부정되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는 양방향 통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니 우익은 교활하고 악랄하며, 좌익은 고뇌하고 이상을 꿈꾸며 힘든 여정을 떠나는 것으로 묘사를 한다.

거기다 전라도 사투리를 진하게 구사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비주류지만 정감이 갈 수밖에 없었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소설이 끝나갈 무렵 빨치산 투쟁을 하던 등장인물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갈 때는 마치 아주 친한 사람들을 잃을 것 같이 마음이 아팠다.

작가 조정래의 열정이 살아있는 태백산맥문학관

벌교터미널 못가서 커다란 입간판이 도로가에 섰다. 태백산맥문학관 150m. 늙은 벚나무가 힘들게 겨울을 보내느라 길가로 비스듬히 기울어 있는 포장된 길을 따라 올라간다. 태백산맥문학관은 검은색 외벽에 하얀 유리창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문학관으로 들어선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전시실로 들어서니, 조정래 선생님이 산을 배경으로 앉아있는 흑백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고뇌에 찬 시선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 <태백산맥>속 등장인물처럼 다가온다.

태백산맥문학관 전시실 풍경
 태백산맥문학관 전시실 풍경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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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백산맥> 초안 원고 16,500매를 쌓아 놓았다. 사람 키보다 높다.
 소설 <태백산맥> 초안 원고 16,500매를 쌓아 놓았다. 사람 키보다 높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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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은 <태백산맥>을 쓰기 위해 4년간 준비과정을 기록한 작은 노트와 벌교 시내 지도,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관계 등을 도식으로 정리해 놓은 도면부터 만나게 된다. 이러한 철저한 준비과정이 있었기에 10권의 소설이 태어날 수 있었는가 보다.

6년간 집필한 1만6500매의 초안 원고지를 만나고, 선생님이 입었던 옷이며 쓰시던 물건들을 볼 수 있다. 전시물 중에는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보수단체와의 긴 싸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찰서에서 온 편지와 언론에서 기사로 다뤘던 신문스크랩을 전시하고 있다. 그 중에는 박원순 변호사가 조정래 선생님께 보낸 법률자문 편지도 눈길을 끈다.

전시물 중 눈길을 끄는 편지
 전시물 중 눈길을 끄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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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제작된 <태백산맥>에서의 하대치, 염상구 소화의 생생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영화로 제작된 <태백산맥>에서의 하대치, 염상구 소화의 생생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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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준비, 6년간 집필, 그리고 10권의 책으로 태어난 소설. 이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문학관에 전시된 전시물들을 보면서 소설 <태백산맥>은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한 벽을 허문 투쟁과정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소설로나마 이런 기록을 남겨놓지 않았다면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당시의 고통과 아픔을 돌이켜 볼 기회마저 없었을 지도 모르고, 역사를 편협 된 시각에서만 바라보아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생님이 밝게 웃는 캐리커처를 보면서 살며시 웃음이 배어나온다. 저런 밝은 모습이었기에 현대사의 격동기를 소설로나마 다시 되새길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소설 속 풍경과 겹쳐지는 벌교 시내 한바퀴

문학관 맞은편으로는 <태백산맥>의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현부자네집'이 있다. '현부자네집'은 전통가옥에서 변형된 모습을 보여준다. 솟을대문 위에 유리창을 낸 누각을 만든 것이나, 본채 입구가 일본식으로 변형된 것 등등. 바로 옆에 '소화의집'도 있다. 소설 속에서 정하섭과 소화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느껴진다.

현부자네 집 풍경. 대문에 유리로 창을 낸 누각이 인상적이다.
 현부자네 집 풍경. 대문에 유리로 창을 낸 누각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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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좌판을 벌인 벌교시장 풍경
 인도에 좌판을 벌인 벌교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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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터미널 앞 도로는 '조정래길'이라는 도로이름이 걸렸다. 벌교의 조정래 사랑은 대단한 것 같다. 터미널에서 벌교역 쪽으로 내려오면 부용교가 있고 철교가 있다. 소설 속에서 염상구가 벌교 주먹패의 패권을 놓고 벌인 싸움 장소다. 철교를 건너본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무척 춥다. 하천도 얼었다. 소설 속 무대인 선창은 흔적만 남았다.

벌교(筏橋)라는 이름은 뜬 다리라는 말이다. 지명이 다리라서 그런지 작은 벌교읍에 다리가 무척 많다. 기차가 다니는 다리, 차가 다니는 다리가 세 개, 차를 못 다니게 개량한 소화다리, 그리고 문화재로 지정된 홍교까지. 아마 우리나라에서 같은 거리 안에 가장 많은 다리를 가지지 않았나 싶다.

부용교를 지나면 벌교시장과 만난다. 가는 날이 장날(4일, 9일)이라고 무척 북적인다. 인도를 점거한 할머니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좌판을 벌여놓고 있다. 군것질거리로 강정도 사서 먹어보고, 집에 가서 먹으려고 키조개도 산다.

소화다리에서 내려다본 풍경
 소화다리에서 내려다본 풍경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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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나와 시내를 한바퀴 돌아서 소화다리를 건넌다. 한 때 벌교를 건너는 대표 다리였는데 이제는 사람만 다니게끔 개량을 했다. 소화다리 중간쯤 다리를 장식한 사진 한 장이 걸렸다. 홍교주변 옛날 벌교 모습이다.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다리 위에서서 벌교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본다. 춥다.


태그:#벌교, #태백산맥, #태백산맥문학관,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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