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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신공항 유치 문제가 지역 민심을 흔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3차례나 입지 발표를 연기한 가운데 경남 밀양을 지지하는 경남·대구·경북·울산과 부산 가덕도를 지지하는 부산의 감정 싸움이 날로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남권 신공항은 정말 필요할까? 지역민들은 신공항 유치에 사활을 건 지역 정치인들과 언론의 유치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오마이뉴스> 가 9~12일 부산·대구·밀양을 돌며 지역민심을 살펴봤다. [편집자말]
동남권 신공항 최적지는 부산 가덕도일까, 밀양 하남평야일까. 각 지자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누가 맞는지 헛갈리기 일쑤지만, 두 곳 모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생계에 큰 걱정을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부산 강서구 대항동 새바지부락 앞바다. 부산시는 이 바다를 메립해 신공항을 짓자고 주장하고 있다.
 부산 강서구 대항동 새바지부락 앞바다. 부산시는 이 바다를 메립해 신공항을 짓자고 주장하고 있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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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덕도 "어자원 고갈이 뻔한데, 뭐 묵고 살겠는교?"

부산시가 동남권 신공항의 최적지라고 주장하는 있는 가덕도. 강서구 대항동 새바지부락 앞바다를 매립해 해상공항을 만드는 게 부산시의 복안이다. 대항동 어민들에 따르면, 공항 활주로가 들어설 바로 그곳이 어민들이 항상 나가서 고기를 잡는 어장이라고 한다. 

지난 11일 오전 새바지포구에서 정치망을 손질하던 40대 어부는 "공항이 들어온다면 이쪽은 아무래도 고기 잡는 것도, 여기 사는 것도 힘들지 않겠느냐"며 손놀림을 쉬지 않았다.

신공항을 가덕도에 짓게 되면 닥칠 상황에 대해 그는 "아직 결정이 안 됐다매, 우리가 반대한다고 해서 할 거를 안 할 것도 아니고… 뭐 모르겠다"면서도 "이 동네는 다 반대다"라고 말했다.

새바지부락에서 왕바지식당을 운영하는 구문자(55)씨는 5대째 가덕도에 살고 있다. 구씨의 남편은 "공항이 들어오면 아무래도 대항동 쪽은 계속 남아 있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어자원이 고갈될 게 뻔한데 이제 뭐 묵고 살겠는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씨는 "원래 여기 고기가 임금 수라상에 올리던 고기"라고 했다. 예로부터 대구와 전어가 많이 잡히고, 잡힌 고기도 최상품이 많아서 낚시꾼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구씨는 "원래 육지 쪽하고 가덕도 그 사이가 참 고기도 많고 해삼도 바글바글하고 했는데, 신항만이 들어서고 나서는 물 조류가 바뀌어서 거기뿐 아니라 여기도 이젠 안 나온다"며 "신공항을 한다면 이제 이 근처에는 고기 잡기 힘들다고 봐야지"라고 말했다.

구씨의 남편은 "그렇게 주지도 않겠지만, 보상을 10억 원을 준다고 해도 고기 잡던 사람이 사업 같은 걸 할 수 있겠나. 여기는 거진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하고 고기 잡아서 사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다 어디 가서 어떻게 생계를 하라고 그러는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2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새바지부락에서 임도를 타고 산비탈을 넘으면 대항동이고, 새바지보다 훨씬 큰 대항포구가 나온다. 어업이 주요 생계수단인 이곳 주민들도 새바지부락 사람들과 의견이 비슷했다.

막 포구에 배를 댄 50대 어부 최아무개씨는 "마을이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공항 짓는다고 매립을 하게 되면 고기잡이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대항동 쪽은 거의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섬 안인데 "대항동 피해 많아도 감수해야 발전"

꼬불꼬불한 임도를 타고 연대봉 능선을 넘어 가덕도 서쪽 해안으로 가면 천성동이다. 공항은 가덕도 동편에 지어질 예정이어서 섬 서편에 있는 천성동은 공항을 건설해도 마을을 비울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인지 같은 섬 안인데도 이곳 사람들의 분위기는 대항동과 많이 달랐다. 이곳 사람들은 어업권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향후 개발 이익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원래 가덕도에서 육지로 나가려면 배를 타야 했지만 거가대교와 연결되는 가덕대교가 지난 2009년 놓이면서 4차선 고속도로가 섬을 지나게 됐고, 이 도로 중간에 천성동과 연결되는 나들목이 생기면서 개발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부동산 업체가 많이 생겼고 천성동쪽 부동산은 이미 많이 올랐고, 호텔 등 위락시설이 지어질 거란 소문도 파다하다.

천성동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정종복(76)씨는 "거가대교를 놓으면서 가덕도가 많이 좋아졌다"며 "아무래도 대항동 쪽은 피해가 많이 있을 거라서 걱정도 되는데, 그런 피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여기가 발전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경남 밀양시 하남읍 백산리에서 바라본 하남평야. 동남권 신공항이 밀양으로 확정되면 화훼와 채소를 키우는 비닐하우스들이 대량 철거될 가능성이 높다.
 경남 밀양시 하남읍 백산리에서 바라본 하남평야. 동남권 신공항이 밀양으로 확정되면 화훼와 채소를 키우는 비닐하우스들이 대량 철거될 가능성이 높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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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하남평야 "이 좋은 땅에 공항을?"

경남 밀양시가 신공항을 짓자고 주장하는 곳은 남쪽으로 낙동강 물줄기를 끼고 있는 밀양 남쪽 하남평야다. 신공항이 밀양으로 확정되면, 각종 채소·화훼 재배 비닐하우스가 길게 펼쳐진 하남읍 수산리·백산리·명례리 등이 공항부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11일 오후 비닐하우스 안에서 농사일에 바쁜 하남평야의 농부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1시간여 사람을 찾아 기웃거리다가 백산리의 한 교차로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70대 노인 5명을 만날 수 있었는데, 신공항 얘길 꺼내기가 무섭게 이들 노인들의 '10분 토론'이 벌어졌다. 

A 노인 : "젊은 사람들은 다 신공항 하면 나쁘다고 하는데, 우리 같이 늙은 사람들은 뭐 크게 나쁠 게 없지."
B 노인 : "뭐가 좋노? 땅 갖고 있는 사람들이나 좋지. 남의 땅 농사짓는 사람들은 보상도 쪼매 밖에 안 된다 아이가."

A 노인 : "빌어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원래부터 자기 몸뚱이 하나 믿고 하는 거니까 아쉬울 것 없고. 거의 다 영감들이 농사짓고 있는데, 공항 지으면 정부에서 다 먹여주겠지."
B 노인 : "되도 안 한 소리 하지 마라. 내 장담하는데, 보상받고 해도, 100에 70은 거지 될 꺼라."

C 노인 : "공항 들어오면 좋을 끼 뭐 있노."
B 노인 : "이 좋은 농토를 와(왜)? 그냥 내삐리두면(내버려두면) 사람들이 잘 사는데 암만 보상 준다캐도 지금만큼 살 수가 없는 기라. (C노인 가리키며) 이 양반도 양배추 하고 딸기 농사지어서 자식들한테 부담 안 주고 자기 용돈 벌어서 안 사나, 비행기장(공항) 짓는다고 보상받고 여기 떠나면 결국 갈 데가 자식들 집밖에 더 있나."

D 노인 : "여기 땅 보상받고 나중에 자식들한테 가면 돈 푼 좀 쥐고 있을 때야 '아버님 예 예' 하면서 좋아하지 돈 떨어지면 바로 찬밥이라."
C 노인 : "밖에 나가기만 하면 퍼뜩(얼른) 다 까무삔다(까먹어버린다) 아이가. 아이고 젠장. 여기 고추농사 짓는 사람들,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 우짤라고."

기자 : "젊은 사람이라면 한 몇 살 정도…?"
C 노인:  "40대 50대."

B 노인 : "내가 몬 배워서 그래도 내 말 함 들어보래이. 도시에 지금 실업자들이 얼매나 많노. 또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서 빈 땅도 얼매나 많노. 실업자들 농촌에 다 불러가지고 특수작물 숭가라(심어라) 이기라(이거다). 비행장 같은 거 지을라 하지 말고. 지금 옆에 4대강 살리기 한다고 밭을 수용을 해가지고 채소가 많이 줄었다 아이가. 하남평야 싹 밀어뿌면 채솟값 안 오르겠나."
E 노인 : 내는 반반이라. 공항이 들어와도 그뿐, 나가도 그뿐. 근데 공항 들어오면 하남 밖에 사는 사람들은 좋아질 수 있어도, 우리한테 좋아질 건 없지. 그래도 여기가 비행기가 뜨고 내리기가 좋고 다른 데서 오기도 좋을 거다. 대구도 30분, 울산도 30분, 창원도 30분."

C 노인 : "아이고, 이 앞에 산을 다 밀어뿌야 비행기가 앉지."
E 노인 : "하여튼 공사한다면 막을 수는 없을 끼고…."


"정치인들은 정치생명이지만, 우리는 진짜 생계 달려 있어"

노인들의 토론을 뒤로하고 길을 나서 명례리에 접어들어 마주 친 한 50대 농민은 "도시 사람들이 다 공항 지어야 된다고 난리치고 있고…, 어차피 여기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우째 생각하는지는 별로 안 중요하다 아입니까"라고 푸념하듯 말했다.

"그런 건 와 묻소"라면서 신공항 건설에 대한 찬반을 밝히지 않은 이 농민은 "뉴스 보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빡터지게 싸우던데, 그 사람들은 정치 생명이 걸려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진짜 생계가 달려있다 아입니까"라는 말로 심경을 표현했다.


태그:#신공항, #민심, #가덕도, #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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