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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으로 지난 2009년 3월부터 오는 2012년 3월까지 이집트 카이로 아인샴스 대학교 한국어학과에서 한국어 교육을 담당할 예정이었으나, 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격해지자 지난 1일 출국했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9일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반 무바라크 시위 중에 사망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촛불 시위가 열렸다.
 지난 9일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반 무바라크 시위 중에 사망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촛불 시위가 열렸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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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 관광의 중심지이자 종합정부청사가 있는 타흐리르 광장. 잘 보도되지는 않지만 그 곳에서는 원래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난다. 야권 단체들이 작은 규모로나마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작년 라마단 시즌부터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물가 안정 대책을 요구하는 '밥그릇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타흐리르 광장의 정부청사 앞은 이집트 국민들의 요구 사항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다.

이 광장에 튀니지에서부터 시작된 민주주의 혁명의 바람이 불었다. 지난 1월 25일은 이집트 국경일인 경찰의 날. 야권단체들은 이 날 대규모 민주주의 시위가 있을 것이라 발표했고, 타흐리르 광장뿐만 아니라 카이로에 있는 주요 대학 앞의 경계도 삼엄해졌다.

학교 앞에 평소보다 많이 배치된 전경 차들의 분위기가 여느 때와 같지 않았다. 그 날 시위 장소뿐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외출하는 것도 자제하고 주거지역을 떠나지 말라는 안내도 받았다.

전화도 인터넷도 안되는 밤... 날이 새기만 기다렸다

경찰의 날에 시작된 민주주의 시위는 25일 하루에 끝나지 않았다. 정부는 지하철을 타흐리르 광장이 있는 '사닷(sadat)'역에 정차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나 한 번 시작된 시위는 멈출 줄을 몰랐고 CNN, BBC 등 외신들은 26일 저녁부터 속보로 이집트 상황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외신들보다 더욱 빨랐던 것은 이집트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시위 현장을 전세계로 내보냈고, 이에 더욱 많은 젊은이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집트 정부는 시위 시작 다음 날인 26일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 접속을 차단했다.

여기에 27일 저녁 엘 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이집트 입국으로 그 시위는 상징적인 큰 동력을 얻게 됐다. 이집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는 금요일이 휴일이다.

엘 바라데이의 입국은 휴일을 하루 앞둔 목요일 밤이었고, 그가 시위가 더욱 커지느냐 아니냐를 가늠할 수 있는 금요일 시위에 참여할 것이라고 선언한 이후 시위대와 정부의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목요일 밤부터 인터넷 접속이 전면 차단됐고, 금요일 새벽부터 전국의 통신망도 두절됐다.

보통 금요일 낮 12시부터 1시 반 사이에 있는 대예배도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2시까지로 연장됐고 최대한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를 줄여보려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다. 통신이 두절된 길거리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현지인들도 알 자지라 방송이 보여주는 생중계 화면으로 시위 현장을 지켜보았다. 나일 강변을 따라 조성된 빌딩과 주거지역에는 광장 앞의 시위대와는 별도로 강변을 따라 걸으며 시위하는 시위대가 꽤 큰 규모로 지나갔다.

28일 금요일 저녁 6시부터 29일 아침 8시까지 14시간의 통행금지가 발표됐다.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 금요일 밤, 처음으로 총성을 들었다. 총소리는 밤새 간헐적으로 들려왔고, 최루탄 화약 냄새도 맡았다. 사방이 고요했다. 타흐리르 근처의 호텔에서 투숙했던 한 지인은 밤새 들리는 총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타흐리르 광장에 탱크가 들어왔다

지난 1월 25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위자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포스터를 찢고 있다. 이날 이집트에선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과 정치ㆍ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려 시위대와 경찰 등 3명이 숨졌다.
▲ 무바라크 대통령 사진 찢는 시위자 지난 1월 25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위자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포스터를 찢고 있다. 이날 이집트에선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과 정치ㆍ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려 시위대와 경찰 등 3명이 숨졌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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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 주택가의 아침은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시장으로, 마트로 달려갔다. 먹을 거리와 생필품을 사재기했고 흉흉해진 틈을 타 약탈자들이 늘어났다.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젊은이들이 각자의 도구를 들고 나와 민병대 형식으로 가게와 아파트를 지키기 시작했다. 대형 마트와 패스트푸드점도 약탈당했고, 치안을 살필 수 있는 경찰은 없었다.

타흐리르 광장에 탱크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주택가에도 주요 로터리마다 탱크가 주둔하기 시작했다. 약탈자들이 더욱 늘어나고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탈옥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골목마다 차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도로를 엎거나 나무를 쓰러뜨려 길을 차단했고, 지나가는 모든 차들을 민병대가 일일이 검문했다.

문을 연 가게도 거의 없거니와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어 살 수 없었다. 은행 ATM도 여러 개가 부서졌고 대형 마트들도 약탈의 위협 때문에 영업을 한시적으로만 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이었지만 그 긴장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오후 4시부터 통행금지가 시작되었다.

집 근처 재래시장에 가기 위해 현지인 친구를 불러야 했다. 그 친구에게 이 시위를 왜 하느냐고 물어보니 "무바라크가 떠나야 하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다. 가말 무바라크(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아들)도 마찬가지냐고 물었더니 "무바라크 가족은 모두"라고 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물가가 너무 올라 살기가 어렵다는 말을 했다.

치솟은 물가·실업률에 튀니지 혁명이 기름 부어

이슬람국가는 라마단(작년엔 8월 11일 - 9월 9일)이라는 이슬람 명절을 지킨다. 해가 있는 동안은 금식하면서 가난한 자의 아픔을 느껴보는 기간인데 라마단은 명절과 동시에 이슬람 최대의 쇼핑 시즌이다. 특히 식료품 소비가 급증하고(밤에 세끼를 다 먹는다) 백화점과 마트가 세일에 들어간다. 이 시기에 일년 장사 절반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소비가 집중되는 기간이다 보니 부작용도 발생한다. 소매점들은 라마단 석 달 전부터 물건을 사재기하고 기업들은 라마단 즈음하여 물건 값을 올린다. 값이 올라도 안 먹을 수 없으므로 서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다. 보통은 이렇게 라마단 때 치솟은 물가가 라마단이 끝나고 나면 진정국면으로 들어서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난 라마단은 그렇지 않았다.

라마단 시작 전부터 밀과 설탕 등 주식류의 가격이 급등했고 서민들의 불만이 높아진 상태였다. 거기에 실업률도 10%에 육박해 사회가 점점 흉흉해지고 있던 차에 튀니지 민주혁명의 열기까지 더해져 큰 시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사실 사람은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정치는 누가 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인구의 절반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이집트에서 주식류의 가격 인상은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번 이집트 민주시위는 민주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결합된 것이다. 

탱크와 군인들을 지나 도망치듯 떠나오다

30일 이집트 카이로의 반정부 시위 현장에 군인과 탱크가 투입되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62명이 사망했다는 정부발표와 달리 전국적으로 적어도 89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이고 25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전해진다. (EPA=연합뉴스)
▲ 이집트 시위 현장에 투입된 군 30일 이집트 카이로의 반정부 시위 현장에 군인과 탱크가 투입되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62명이 사망했다는 정부발표와 달리 전국적으로 적어도 89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이고 25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전해진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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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0일 일요일에 비상연락을 받아 급히 약간의 짐을 챙겼고, 2월 1일 출국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이렇게 도망치듯 이집트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모두들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휴가 중에 카이로로 돌아오던 한 단원은 열 시간이면 오는 거리를 통행금지 때문에 사흘 걸려 카이로에 도착했고, 카이로 인근 지방에서 올라오는 단원은 평소 교통비의 다섯 배를 주고서야 겨우 카이로에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카이로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 역시 쉽지 않았다. 곳곳을 탱크와 무장 군인이 막고 검문하여 시간이 지체됐고 공항 안에서도 출국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위 발생 8일 만에 이집트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시위가 일어난 지 20일이 가까워온다. 지난 일주일간 과도정부를 구성하는 방안이나 시위대와의 대화 등 시국을 안정시키려는 많은 방안들이 나왔고 이집트는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이번 가을 대선이 있기 전까지 정국은 안갯속일 전망이다. 튀니지에서 시작해 이집트, 예멘, 알제리 등 중동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민주주의의 열풍이 어떤 열매를 맺게 될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태그:#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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